고양이 집사의 하루
나른한 오후, 내 고양이들은 침대 위, 쿠션 위, 캣타워 위, 한 자리씩 차지하고 단잠에 빠져있다. 나는 그 모습이 예뻐서 토닥토닥. 부드러운 털의 감촉에 나의 불안이 잠시 가라앉는다. 어제 빗질을 하면서 털을 한움큼 벗겨냈음에도 내가 녀석들의 엉덩이를 토닥거릴때마다 눈부신 햇살에 가느다란 털들이 리듬을 타고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내 곤색 후리스를 뒤덮은 하얀 털들에 너털웃음이 나오고, 나는 돌돌이를 들어 힘차게 옷에 들러붙은 털들을 떼어낸다.
내 하루의 적지 않은 시간을 녀석들을 위해 쓴다.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간식을 주고, 화장실 모래를 캐내고, 빗질을 하고, 눈꼽을 떼어주고, 놀아주고, 후다다닥 우당탕탕 뭔가 사고라도 치는가 싶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집 상태를 확인하고, 신나게 서로 잘 놀다가도 갑자기 하악질을 하면 혹사리도 싸울까 긴장하고, 밥을 잘 못먹는 녀석이 있으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가슴 졸이고, 특히 칼리시 바이러스에 감염 된 주리에게서 입냄새가 나면 상태를 지켜보다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에 데려간다.
오늘도 주리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올 겨울에만 벌써 3번째다. 보통은 엄마에게 동행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오늘은 혼자서 주리를 데리고 다녀왔다. 녀석을 이동장에 넣고, 담요로 이동장을 가리고, 조수석에 태울때까지 왠일로 조용하길래 ‘녀석이 고새 철이 들었나?’ 의아했지만 역시나, 이동하는 내내 녀석은 울어댔다. 가는 길에도 돌아오는 길에도 목이 아플법도 한데 쉬지않고, 얼마나 열심히 울던지. 그래도 진료를 받는 동안에는 동그랗게 예쁜 눈을 뜨고, 내 품에 안겨 발톱 한 번 세우지 않은 채 체중도 재고, 주사도 맞았다. 나는 또 그런 주리가 기특해서 녀석의 몸에 얼굴을 비빈다.
‘주리야, 제발 아프지 좀 말자.’
왕복 1시간 30분 거리를 운전하면서 나는 나의 변화를 실감했다. 옆에서 주리가 쉬지않고 울고 있음에도 나는 크게 긴장하지 않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차에 태우고 이동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건 금동이를 처음 데리고 올 때 순하디 순한 금동이가 온 힘을 다해 나를 거부하고, 이동하는 내내 전에 들어본적 없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토해내는 동안 내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기억 때문이다. 고통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울음을 바로 옆에서 듣고 있으면 그 고통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고양이들이 이동에 얼마나 취약한 동물인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대부분의 많은 일들처럼.
어쩌다보니 세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고양이를 좋아한 적도 없는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책임지는 것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아니. 상상을 해보았지만 도대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내가 세마리의 고양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주리를 구조한 때가 겨울이 아닌 봄이나 여름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공간, 고양이’들’의 존재가 새삼스러울때면 그런 질문을 해보곤 한다. 추운 겨울 숨그네를 넘던 주리를 구조하고,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밖으로 돌려보내자고 나는 말했고, 엄마는 아직은 너무 춥다고, 이 추위를 견디기엔 주리는 너무 약하다고, 있어보자고, 나를 설득했다. 시간이 흐르고, 주리의 상태는 좋아졌지만 그 사이 주리와 정이 들어버린 엄마가 주리를 입양하자고, 덩달아 주리의 쌍둥이 형제 오랑이까지 데려오자고 하는데 결국 가족이 될 운명이었던 것인지 나도 아빠도 ‘엄마 때문에 못살아…’ 하면서도 오랑, 주리 형제 입양을 받아들였다.
너무 작아서 엄마 앞치마 주머니에 쏙 들어가던 주리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건강해졌지만 여전히 재채기를 하고, 콧물에는 피가 섞여 있어 병원진료가 시급해 보였다. 집 주변에 있는 동물병원을 검색해 고양이 진료를 하는지 문의했고, 모든 병원에서 가축만 진료한다는 답에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진료 예약을 하고, 주리를 이동가방에 넣고, 차에 시동을 걸고,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이동가방을 끌어 안았다. 그날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긴장했다. 쉼 없는 주리의 울음 소리에 내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고, 엄마가 무슨 말을해도 나는 짜증으로 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일이 아닌데도 나는 내 긴장을 어찌 주체하지 못해 그 모든 감정의 과잉을 엄마에게 쏟아내버린거다. (늘 반성하지만 늘 반복되는 일들. 엄마, 미안해!!!)
주리를 진료한 수의사 선생님은 주리가 칼리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했다.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라서 면역력이 떨어지면 지금과 같은 증상(콧물, 구내염, 식욕부진, 등등)이 나타날거고 그때마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죽는 병은 아니라니 나는 안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주리는 열심히 울었지만 나의 긴장은 많이 수그러들어 엄마와 (비교적)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후로 계절이 바뀔때마다 주리는 계절몸살을 겪는다. 계절몸살을 할 일이 없도록 잘 먹이고, 집도 늘 따뜻하게 하고(난방비 걱정이 들때면 덕분에 나도 따숩게 지내고 있지 않나~ 위로한다.), 빗겨주고 닦여주고, 만져주고,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돌보는데도 환절기가 오면 주리에게서 입냄새가 나고, 입이 아픈지 식사량이 줄어든다. 내 보살핌이 부족한 건 아닌지, 어쩔 수 없는 일(칼리시 바이러스)이라고 해도 녀석에게 괜히 미안하고, 많이 속상하다.
놀아달라고, 밥을 달라고, 만져달라고 한창 작업중인 내 앞에 와서 울어대는 녀석들, 새벽 시간 우당탕탕 광란의 질주쇼를 벌이며 내 잠을 깨우는 녀석들, 며칠 여행이라도 갔다오려면 녀석들의 끼니와 배변이 제일 먼저 신경 쓰이지만 녀석들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귀찮게 여겨진 적은 없다. 매일 아침 화장실 모래를 캐내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모래를 청소하고, 빗질을 하고, 여기저기 붙어있는 털을 떼어내고, 매일 반복되는 이 일을 당연히 하고 있는게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생각했을때 좀 신기한 일이다. 녀석들로 방해받는 일상이 내 행복이 되었다.
녀석들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이 공간을 제 영역으로 여기고 뒹굴뒹굴, 배를 다 드러내고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 잔잔한 충만함으로 내 가슴이 출렁인다.
오후 해가 저물고, 저녁이 다가온다. 이제 녀석들이 잠에서 깨어나 밥을 달라고 보챌 시간, 그 전에 어서 내 할일을 마무리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