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Mrs Ahn.

할머니와 작별하기 3

by cinejwk

차를 타고 의료원 앞을 운전해서 갈 때마다 왠지 저 건물 병실 어딘가, 할머니가 누워계실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어. 장례식도 했고, 49제도 지냈고, 무엇보다 발인 때 수의를 입은 할머니를 봤잖아.’

그런데도 침대에 앉아 한 손에는 리모컨을 쥐고 티브이에 나온 트로트 가수의 가창에 감탄하는 할머니의 모습, 빠진 머리카락을 한데 모으는 모습, 창밖으로 보이고 들리는 정보들에 집중한 모습, 누구와 있든 무슨 얘길 하든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고, 얘기를 하고, 농담을 던지고, 사람들이 웃으면 함께 웃는 모습이 마치 조금 전에 할머니를 만나고 온 것처럼 생생하다. 아직까지는 이런 잔상들이 할머니의 부재를 착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울고 웃으며 우리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축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실컷 듣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고, 그렇게 함께 할머니의 고단한 인생에 박수를 보내고,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할머니의 죽음 이후, 나는 생각한다.


할머니는 이미 충분히 늙었었고,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할머니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늘 어딘가 아픈 상태로 할머니의 고독 요새에서 오래도록 계실 것만 같은 안일한 착각에 내가 할머니께 드릴 수 있는 애정과 배려를 외면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이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속상하다.


내가 아는 할머니는 여러모로 독특한 사람이었다. 다정한 할머니는 아니었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나를 응원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말과 말투는 거칠었지만 예쁘고 고운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그 똑똑함이 삶에 득이 된 적은 없는 불운한 사람이었다.

할머니와의 추억이랄 게 별로 없지만 할머니를 떠올리면 몇몇 장면이 사진처럼 보이는데 호탕한 웃음이 보이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 그리고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할머니를 이렇게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지금까지 여러 이별을 경험했지만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과정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슬프지만 할머니의 고단했던 삶에 대한 연민과 다시 돌아간다 한들 크게 달라질 리 없는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크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질문들이 있다. 그러니까, 보호자(가족)가 현명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병원의 방어적이고 비전문가적인 태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행되는 처방과 그것을 행하는 간호인력의 미숙함,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와 간병인 간의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 섞이고 건강과 생명을 좌우하는- 복잡 미묘한 관계, 등등.


인구소멸과 고령화의 시대에 (약자로서의) 노인들의 현실은 점점 더 처참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기형적인 인구비율 안에서 불행한 노년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 중 일부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이 나버릴까 무섭다. 그 순간이 닥치고 나서야 현실을 깨닫기에는 그 현실의 규모가 너무도 방대하다.

내가 할머니의 죽음을 글로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할머니를 전보다 가까이서 보면서 노인들의 고독한 삶, 더불어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받아야만 하는 현실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최근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쓴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을 읽으면서 노년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는데 조만간 이 책 리뷰를 쓰면서 이 짧은 글 ‘할머니와 작별하기’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는 나이와 신체적 취약성이 형틀, 사슬, ‘감옥’을 구성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그것들은 운명으로부터 탈주할 힘, 거기서 벗어날 힘이었던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린다. 의지는 있지만 권력은 없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할 수 없기에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