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좋아할 수 있는 것

특선영화라는씨앗이 자라서 맺은 결실

by Rootin

부당거래는 10대 후반에 맞이한 추석 특선 심야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다가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길래 멈춰서 보게 되었다. 당시에 해리포터 시리즈가 아니면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영화를 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부패한 경찰들의 이야기는 너무 신기했다. 검사도, 양아치도, 경찰도, 착한 사람은 없고 뻔한 주인공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부조리, 악랄한 악당들의 세계를 다루고 있고 그 안에 하고 싶은 말을 감독이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첫 순간이었다. 왜 하필 그 영화를 늦은 시간에 혼자서 보게 되었고, 그 영화 때문에 다른 영화들까지 갑자기 찾아보게 되었는지 돌아보면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영화들이 있을 거라는 호기심이 왕성해졌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적극적으로 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도 대중에게 노출이 잦은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입문자였던 내가 꼭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짧게 영화 한 편을 소개하는 역할로 출연했다. 한정된 시간에 비해 당시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영화 속 세계관, 감독의 메시지, 철학 같은 걸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떨 때는 영화를 보고 오지 않아도 유식한 언변을 듣는 게 더 재미있는 회차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시청했기 때문이었는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른들의 세계를 한층씩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동진 평론가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글과 한줄평을 남기고 있었다. 높은 평점을 받은 영화를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보고 싶었다. 영화 한 줄 평과 별점이 네이버 블로그에 만 있는 게 아니라 씨네 21이라는 잡지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이들의 평점과 한줄평도 하나씩 읽어나갔다. 도서관 신문/잡지 코너에 앉아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씨네 21 잡지를 들여다보니 한줄평 외에도 김영진, 김혜리와 같은 필자들이 영화와 관련된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영화 글을 쓴다는 건 인문/교양/철학/종교/과학/예술 등 종합적인 생각에서 통찰을 뽑아내는 행위로 다가왔다.


영화 글을 영화보다 더 좋아한 이유는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그 안에 담긴 맥락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잡지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는 영화 열람 코너에 가서 책을 빌려서 읽은 기억이 남아있다. 배우, 감독, 이론 등 분야별로 잘 정리된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그다음 보게 될 영화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감상과 연결을 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주제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었다. 5권 정도 비치가 되어 있었는데, 각 책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집중한 목차가 모두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 이해하고 영화를 보는 것과 더 많이 찾아보고 애니메이션 매체를 읽는 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 캐릭터나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 근거들을 촘촘하게 엮은 글을 읽을 때는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 기분이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렵고, 공이 꽤 많이 들어간 매체가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영화나 배경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각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조직해서 만드는 또 다른 구조를 제시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 세상에서 영감을 받아서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서 관통하는 결과물인 영화에 대한 글은 하나의 연구과제로 불릴 만큼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글에 열광하는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써본다거나 좋아했던 기자나 필진들처럼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많이 보고 공부한 자들이 느끼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비슷하게 내보고 싶었던 심리는 가지고 있었다. 영화 관련 주제의 책뿐만 아니라 심리/종교/역사/철학/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매체의 내외부를 더 넓은 시야로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은 짐작에 관심 가는 개론서들을 집기 시작했다. 다른 목적보다 가지고 있었던 명확한 목표는 다양한 분야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과 프리즘과 프레임으로 세상과 진실에 다가서는 것이었다. 결국 영화 글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도 어딘가에 존재할 진실을 드러내는 요인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꼭 거장이라고 불리거나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티가 나는 감독들은 그 고민이 영화 속에 여실히 남아있었다. 그 고찰에 한 번씩 동참할 수 있을 만한 영화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취향이 있는 감독 외에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감독들도 한 번씩 알아가고 싶었다. 국가별로, 영화를 찍는 이유별로, 선택한 장르별로, 쌓아온 필모그래피 별로 영화가 담고 있는 세상은 모두 제각각이고 저마다의 가치가 달랐다. 영화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보면서도 골고루 섭취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보이는 것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몰랐던 세계관 이나 맥락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고 싶은 열망이 크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1년, 2년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넓은 세계에 아직도 머물 수 있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이야기 세계가 있고 느껴볼 수 있는 감상이 남았다는 건 좋아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큰 행운이다.


지금은 부당거래를 접했을 때만큼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고 있다. 씨네 21 잡지의 전문을 찾아서 읽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변하지 않는 건 영화를 통해 세상의 진실의 한 면에 대해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다. 시대마다, 장소마다 진실의 의미는 바뀌고 또 변화하는 만큼 언제든 촉을 세워놓고 읽어내려고 한다. 영화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이 영화가 저 영화보다 무엇이 나은지에 대해서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꿰뚫고 있는 전문성에 대한 욕심보다 복잡한 세상에 대해 나름의 통찰을 얻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 노력의 과정 속에서 운이 좋게 인문학을 전공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고, 성장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생에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좋아하는 무엇이 삶을 사는데 좋은 영감을 주고 활력을 주고 있다는 것 자체로 큰 만족이라고 느낀다. 우연히 접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을 주워 심었더니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서 많은 가지들이 생겨나서 생각지 못한 경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건 꼭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잘해야만,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을 정도로 창으로 뚫지 못하는 전문성이 있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남들도 많이 좋아하는 건 경쟁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함께 나눌 게 많다는 복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걸 10년 넘게 가지고 가는 와중에 제일 득을 보는 건 나 자신이었다. 그 10년의 시간 동안 경험한 시행착오와 체험은 나만의 소중함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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