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부터 실력으로, 꾸준하게 성실하게, ROOTIN
학교, 회사, 직장, 동호회 등 기존에 존재하던 것에 속하는 것 말고는 왜 다른 선택지가 없을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던 때가 있다. 누군가 틀을 만들고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어느 정도 합의된 수준에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모임을 가지는 것이 왜 당연할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왜 각자 개인들은 학교나 직장을 스스로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공간 안에서 역할을 부여받고 또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끊임없이 소비만 줄기차게 하고 있고 무엇하나 혼자서 생산하고 있지 않다는 충격적인 순간을 문득 마주한 것이다. 문명, 근현대 사회, 산업혁명 등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실감한 때였다. 한 번쯤은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고 그 소감이 어떠한 것인지 정도는 느껴보고자 했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영원히 소비의 굴레에 갇혀서 그 내부의 시선으로 만 세상을 살아갈 것 같다는 두려움도 한몫을 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건 함께 할 수 있는 동료였다. 아직 무엇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곁에 누군가 있다면 그 속도와 방향은 자연스럽게 뜻이 모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서로였기 때문에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목표가 부합한다는 명분으로 모일 수 있었다. 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만든 그룹이어서 대화나 소통하는 데 있어서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초반에는 순조롭게 가장 최근의 생각들을 공유하면서 함께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 모임이 지속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팀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이 팀이 있는 한 어떠한 가치를 내세워서 맥을 만들지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을 하나씩 담을 수 있었다. 당시에 각자가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지향점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필요한 항목을 나열했다. 금액이나 실현 여부에 대한 가능성은 최대한 배제하고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자원부터 따져보았다. 당시에 팀원들이 가지고 있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라는 자원이었다. 그 24시간을 어떻게 낭비하지 않고 원하는 모습에 도달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공통된 답은 '꾸준함'이었다. 어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재능이 충분히 있는지, 운이 얼마나 따를지, 인맥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만큼은 매일 아깝지 않게 써보자는 합일점이었다. 꾸준함을 지키기 어렵거나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올 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주체적인 목표와 그 목표를 만들게 된 배경을 떠올리자는 약속을 하였다. 그날 팀 이름을 'ROOTIN'이라고 짓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Routine'이라는 규칙적인 일상의 뜻을 담고 있는 영어 단어와 'Root'와 'In'을 결합해서 뿌리를 심는다는 의미를 이중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름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따로 배우거나 훈련받지 않고 원하는 지향점까지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는 꾸준함과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은 나중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고 충분히 유지될 수 있을 만한 신념이 될 만하다고 판단했다. 필요한 교육은 내가 나에게 스스로 제공하고, 성장이 필요한 시점에는 그 요건에 걸맞은 활동과 행동을 스스로 이어나가기를 기대한 것이다. 각자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은 모두 달랐고, 성장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단계의 절차와 형태도 다양했지만 그 과정 자체에서 서로 힘을 낼 수 있도록 지지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든 셈이었다. 원하는 모습이라는 게 책을 읽거나 누군가를 만나서 물어보거나 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상이 아니라는 것 또한 서로가 알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뿌리가 돼서 커나가는 이미지는 선호하는 성장의 흐름이기도 했지만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기도 했다.
언뜻 우리가 가고자 했던 길과 행보가 바닥에서부터 자수성가한 성공담으로 서사화 시킬 수도 있었지만, 성공 자체를 최종 목적지로 여기지는 않았다. 성공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매력적이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도 있고 살아온 흔적에 대해 자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성공이 필요했다면 굳이 만나서 팀 이름을 짓고, 가치관이나 신념 같은 것들을 운운할 이유가 없었다. 각자가 걸어가는 길 속에 세간에서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성취하고 만들어 갈 수는 있겠지만, 그 성공이 찾아왔을 때도 놓지 않기로 했던 건 꾸준하게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이어나가는 선순환이었다.
거창한 포부를 밝히고 2017년 10월 14일 팀 이름을 짓고 활동한 지 만 4년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을 겪고 또 옆에서 서로 지켜보며 지내왔다. 팀을 만들 때 상상했던 좋은 모습에 도달한 팀원은 아직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꾸준함과 뿌리가 되어 성장하겠다는 신념 만은 지속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하나씩 축적해가며 실력이 눈에 띄게 발전하는 팀원은 누군가의 가르침보다는 스스로의 수련에 매진했다.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발을 디디기를 두려워 돌다리를 두들기기만 했던 팀원은 직접 그 다리를 건너가고 실족도 해가며 시행착오 끝에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만약 각자의 역사에 ROOTIN이라는 팀에 속하지 않고 전처럼 살아간다고 상상했을 때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어떻게든 성실하게, 때로는 지지부진하게 지내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지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ROOTIN의 역사만큼은 새롭게 생산한 우리만의 이야기로 남아있다. 스스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이어나가는 자세를 습관으로 만들고 흔적으로 남길 수 있었던 건 ROOTIN이라는 팀 덕분이었다.
알게 모르게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지는 순간들도 경험했다. 원하는 지향점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때가 자주 찾아왔고 피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어떤 방법이 맞는지에 대해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을 조합해서 결론을 내려 몸부림을 쳤던 때가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빠른 실패를 통해 얻어지는 통찰을 반영하여 결과적으로 가설과 검증을 거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다. 언젠가부터 유행어로 자리 잡은 자존감에 대해서도 ROOTIN이라는 팀이 주었던 가치와 신념은 나쁘지 않게 이야기를 곁들일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 존재할 권리가 있으며 그 존재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만드는 장본인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개념은 뜻하지 않게 유행의 성격에 부합했다. 또 언제부터 '나만의 루틴', '모닝 루틴', '데일리 루틴'등을 주제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화제가 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골자는 일상이나 업무시간 중에는 자신의 진짜 주체적인 모습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에 휴식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경험에 대해 성찰이었다. 그 경험 안에서 발견하는 자기 모습과 성장에 대한 충족에 독자들이 반응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ROOTIN이라는 팀을 운영하고 또 참여하면서 가질 수 있었던 충족감은 미디어와 시장에 부합할 때도 있었고 관련이 없을 때도 있었다. 강하게 출렁이는 시대의 파도 속에서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순항을 할 수 있었던 건 각자의 뿌리를 심었기 때문이다.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잘 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의 키를 외부에 맞기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자는 약속은 변하지 않았다. 특별한 팀원들 간의 협업이 잦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느슨한 관계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망의 실은 튼튼한 재료로 묶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