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시작하기 위해서, 지나가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by Rootin

같은 이야기를 읽고 듣더라도 누가 어떻게 해석하기에 따라 받아들이는 인식은 모두 달라진다. 그것이 본인 스스로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어떤 태도와 의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차갑게 정리할 수도 있고, 낙관적으로 상상하여 좋았던 점들만 남아 미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 비슷하게 고생하고 고민하고 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삶을 살지만, 그 이야기의 형상이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이야기를 취사선택하여 편집하고 저장할 수 있는 선택권이다. 과거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왜 기억할 것인지와 현재에 어떤 선택을 내려서 이야기를 해석하고 또 이어나가도록 결정하는 건 개인의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일상생활에서도 빠짐없이 사용되고,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시련 속에서 개인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주체적인 삶을 부여하기 위해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기나 과제를 통해서 나의 이야기를 쓰고 기록하고 남기는 경우가 있었지만, 제대로 생각해서 남겨봐야 한다고 생각한 건 성장에 대한 열망에 생겼을 때였다. 전보다는 나아진 모습으로 변화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만들고 성취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가 있었다.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내가 정한 가치관이나 목적에 따라서 생긴 목표들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보고 들어온 위인전이나 영화 속 영웅들 만큼 장대한 결심은 아니더라도 내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을 넘어서 전개된 사건들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결말을 맺을 때까지 나아가야 했다. 어떤 집단에 속해서 열심히 일을 수행하고 완수해서 종료하는 과정 외에 혼자서 스스로 정한 삶의 목표로 향하는 발걸음은 처음 시도하는 바였다.


실제로 일을 저지르면서 시작되었다. 삶에서 얻은 통찰을 콘텐츠에 담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고민한 바를 표현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자체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머릿속에 있는 파편들을 구조화해서 글이나 콘텐츠로 표현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수단으로써 인문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주변 동료와 함께 창립한 작은 모임에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미래의 직업도 관련된 직종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큰 두려움과 겁이 났던 나머지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될 만한 자기 계발 서적을 읽어나갔다.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거나 진행 중인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문장들로 채워진 내용이었다. 겁이 많이 났던 나머지 한 권으로 끝내지 못하고 여러 권의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읽었다.


대체로 오늘 하루와 이번 주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일상에서 원하지 않았지만 하고 있는 일들을 청산하고, 진짜로 좋아하고 원하는 일들로 채워도 위험하지 않고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설득한다. 아직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더라도 희망을 가득 안고 시작하는 것 만으로 실제로 그 사항들이 이뤄질 것처럼 묘사한다. 일상 속에서의 청소를 어느 정도 진행한 후 권유하는 방식은 모든 것에서의 우선순위를 자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후 해야 할 일은 좋아하는 일을 쥐어 짜내서 그 일을 일상과 연결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저자나 참고하기 위해 언급한 사례의 인물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자아의 통합을 이룰 수 있고 그 배경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성장 담론을 담고 있는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면서 실제로 실행시킨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저자들의 주장이 들어맞는 경우도 있었고 조금은 더 고민해볼 여지가 있는 구간도 있었다. 프로젝트의 종류와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지만, 실행을 거치다 보면 발생하는 장애물들이 언제나 늘 존재한다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찾아온 기회에 잘 마무리해내야 한다는 강박,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을 좇으려는 자기부정, 부담감 때문에 커져가는 게으름과 두려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에 대한 자책과 자기 비하, 다른 이들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피해의식, 즉각적으로 얻어지길 원하는 보상심리 등은 내면에서 생겨난 반응이었다. 자아를 통제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어떻게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읽으면서 무엇인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목표인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에 헷갈렸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내면적인 장애물이나 외부적으로 부정적인 사건들은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해서 관리할 때보다 실제로 그 어려움을 인정하고 노력 끝에 잘 지나갔을 때 튼튼한 과거로 삼을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나타나더라도 매뉴얼대로 관리하고자 하는 것보다 전에 지나갔었던 우여곡절의 시간이 훨씬 더 큰 용기와 의지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위태위태한 처지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인식했다. 그 이야기들을 모아서 자신 안에서 의미로 만드는 결단과 선택이 중요했다. 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사건의 출현을 외면하거나 자신을 강인한 사람이라고 세뇌하는 것보다 현실에 기반하여 좋은 선택을 통해 또 한 번 그 시간을 지나갈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항상 유연하고 생각대로 진행될 수는 없었다. 성장했다고 생각한 수준에서 다시 한번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났고 나이가 들었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변화를 만들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시 실패한 방법과 방향을 선택하기도 했고, 아예 다른 분야에 새롭게 시도해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실제로 1년 사이에 전혀 연관성이 없는 3가지 이상의 직군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포맷으로 접근했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최종적으로 무엇을 목적의 수단으로 삼을지에 대해서 고민의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경험을 보유했다고 하기에 경력이 짧기 때문에 한 가지 분야에서 성과를 이룰만한 시간도 부족했고, 그만큼 일과 일 사이에서 연결성과 전문성을 만들기 어렵다는 평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냉혹한 평가와 현실 역시 이전에 느꼈던 어려움들과 마찬가지로 그 여정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활용하여 블로그에 글과 영상을 올리는 것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꾸준히 업로드를 한 지 몇 주가 지났을 때 콘텐츠의 힘과 깊이에 한계를 느꼈다. 도외시했던 전공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고 나의 콘텐츠와 연결할 수 있도록 차츰 적극성을 높여 참여했다. 그와 별개로 학문의 내용이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들을 직접 보지 못해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없었다. 지역사회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그 가치를 전달했다. 1년여의 시간을 투자했지만, 단발적인 기획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껴서 지속성을 갖추고 더 긴 호흡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자격 요건과 이야기를 구성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선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삶의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어떤 일이 적합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미술관 큐레이터, 웹툰 PD, 소셜벤처기업 마케터 등을 짧게 경험하거나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저곳을 배회했던 시간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기억하고, 그렇게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자신과 기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이 있었다. 생각하지 않았던 리더 역할을 수행해보기도 하고, 사람들과 갈등을 겪을 때 드러나는 콤플렉스에 대해 더 진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경우도 있었다. 분명한 약점이 존재하지만, 그 약점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내가 효과적으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였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낯설었기 때문에 더 꼼꼼한 준비와 메모로 치밀하게 준비를 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정보와 이해도를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했고 데이터를 통해 논리적으로 입을 열어 남을 설득할 수 있도록 공부했다. 갈등이 발생하면 유독 취약하게 망설이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시가 아닌 평소에도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주변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하는 존중을 배울 수 있었다. 스스로 무엇을 잘하는지 파악하여 세상에 그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였을 때 그 목소리를 교환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바뀌게 된 삶의 원칙은 늘 더 좋은 목표를 설정해서 매번 점검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스스로 정한 삶의 목적은 보는 이야기의 관점에 따라 이뤄질 수도 실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목적에 앞선 수단으로써의 직업이나 프로젝트가 원하는 결과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에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결괏값을 유일한 절대적인 목표로 삼은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실패담으로 여겨지지만,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처음에 설정했던 목적의 관점에서 해석한 이야기는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그려진다. 원했던 바가 이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깨닫고 삶에 원동력과 풍요를 더하는 것이다. 수단으로 삼았던 곳에서 꼭 승리를 만들지 못했다고 해서 삶은 끝나지 않는다. 생명이 다 하더라도 삶 속에서 존재했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고유성을 가진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마음속에 축약된 한 문장으로 심을 수 있다. 그 문장에 따라 매일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다채로운 일들에서 언제나처럼 두려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수용하여 의미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 여정의 이름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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