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닮은 영상을 만드는 일
바쁘고 할 일 많은 현대 일상 속에서 가치로 환산하기 애매한 일은 환영받기 어렵다. 취미로 택하고자 하는 바마저 성과를 내거나 인증을 해낼 만큼 그럴싸하지 않으면 그 일을 둘러싼 공기가 왠지 모르게 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이만큼 어렵고, 여유를 가진다는 것 자체에 비용과 결심이 서야만 가능한 흐름은 안타까울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심코 좋아하게 된 무언가가 스트레스도 받게 만들고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주고 그 일을 할 만큼 여유가 없는 상황도 겪은 적이 있다. 업으로 삼아야 하거나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스스로에게 눈높이를 높게 잡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 대상에게 나의 솔직한 민낯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겉으로 괜찮은 척하는 풋내기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좋아하는 대상의 화려한 면 만 보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진짜배기 매력을 알지 못했다. 그것을 진정 즐길 수 있기 시작한 건 여러 가지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지켜본 후였다.
영상 기획, 촬영, 편집과 관련된 활동은 어린 나이의 시선에서 끝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 TV쇼, 영화 등은 언제나 눈을 뗄 수 없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영상 기기를 끼고 보냈던 유년시절의 일상은 어렴풋이 영상제작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만들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띄워지는 걸 보고 많은 역할 중에 하나 정도는 꿰차서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방송이나 영상제작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밝히지도 않았다. 그 일은 딱딱하게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서 같이 좋아하는 걸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성장기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재미있으려고 참여하고 있고 하루하루 즐겁게 만 보내면서 놀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일과 사회에 대한 분별을 하는 나이가 아니기도 했지만 그만큼 영상제작이라는 활동에 대해 극적인 매혹을 느끼고 있었다.
학생이 되고 점점 직접 영상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 동아리 활동이나 수업의 과제로 주어졌을 때는 아이디어를 내고 몰입하려고 노력은 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좋아하던 감성과 완성도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상적인 놀음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인정했다.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늦은 나이까지 믿으려고 하는 학생처럼 말이다. 그때부터 영상 관련된 작업에 대해선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갖춰야겠다는 결심을 가졌다. 한 번쯤은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서 자신에게도 보여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질의 영상을 뽑아내 보자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 덕분에 실제로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될 때까지는 꽤 긴 시간이 지연되어야 했다. 편리한 편집 도구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발전하는 시기에도 쉽사리 촬영을 나서지 못했고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맴돌기 시작했다.
전문성이라고 스스로 칭했던 기준조차 인터넷 블로그와 도서관에서 찾아보면서 겉핥기로 익힌 간단한 용어들 몇 개가 있었다. 짧게 주워 배운 지식은 카메라나 편집 화면 앞에 섰을 때 점점 더 주체성을 잃게 만들었고 누군가에게 손을 넘기거나 마우스를 건네고 옆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잘 만드는 사람 옆에 있으면 뭐라도 배우겠다 싶은 연약한 심리였던 것이다. 결국에는 방송 경력이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정말로 현직에서 일하는 매뉴얼과 가이드대로 만들 수 있는 환경에 도달하기 이르렀다. 현직자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도록 말하고 다니고 듣기 위해서 노력한 것도 사실이었다. 영상 안에 어떤 내용을 담고 싶은지보다, 영상을 얼마큼 잘 다룰 수 있는지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생각보다 많은 걸 배우지는 못했다.
전보다 조금 자랐던 자신감 덕분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지인 커뮤니티의 짧은 영상을 제작할 수 있었다. 직접 프로그램도 설치하고, 이미지와 음악도 고르고 자막의 위치까지 정하고 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놀랐고 진땀 흘리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사람들 앞에서 보일 영상이 초라해 보여서 보여주는 게 민망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영상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고, 만드는 즐거움보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계기였다.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즐기지는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또 다른 테스트를 거쳐보길 원했다. 진짜로 좋아하는 게 맞다면 그 테스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주에 걸쳐서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 대해서 알려주는 수업을 신청하고 수강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학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혼자서도 뚝딱거리면서 만들어보고 하는 게 정석이라고 여기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제대로 익혀보고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은 심정도 존재했었다.
커리큘럼이나 제공하는 내용이 전문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영상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오래 가질 수 있었다. 수업의 책임자는 현란한 테크닉이나 효율적으로 촬영하고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최대한 간추려서 설명했다. 대신 본인이 처음 영상제작을 접하고 초기에 만들었던 습작들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현직자로서 경력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지금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이 아닐라 초심자였을 때 가장 경력이 없는 상태일 때 만들 수 있는 최고를 느끼게 해 준 것이다. 일상에서 날 것을 가져온 듯했지만 화면과 삶이 겹쳐지는 걸 보면서 영상 하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사람으로서 노력하는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모습에서 영상을 잘 만든다는 게 결국은 잘 살고 있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누군가와 경쟁해서 더 창의적인 소재를 가져오지 않아도 되고, 자극적인 아이디어를 기획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왜 만들고 싶고, 그 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강조된 지점이었다. 그 수업의 마지막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에 대해서 정의 내릴 수 없었고 어떤 삶이 담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세울 수 없었다. 결국 수료할 때까지 영상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찰하는 사이, 마지막 과제였던 영상제작은 완성하지 못했다.
너무 어렵게 만 생각했던 영상제작을 다시 꺼내 들어 즐길 수 있었던 건 지인들의 순간을 담은 영상을 기획할 때였다. 그전까지 대여섯 번 정도의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한 편의 짧은 영상을 만드는 법은 이미 익히고 있었고, 가장 중요하다고 깨달은 영상의 주제도 쉽게 정할 수 있었다. 이색적인 연출도 군데군데 시도해보고 카메라의 위치나 편집의 흐름도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구상할 수 있었다. 그 치기 어린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기꺼이 내 시간을 들여서 임했고 완성 때까지 몰두했던 것을 생각하면 짜릿함이 다시 떠오른다. 전보다 더 가볍게 만들 수 있었던 건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제작이라는 것을 좋아하고 동경도 했지만, 긴 시간 동안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카메라 조작법을 익히고, 그 안에 담기는 이미지의 해상도를 맞추고,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는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대신에 그 안에 담겨있는 일종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주제, 주제를 통해서 느껴지는 영상 제작자의 삶의 형태를 좋아했던 것이다.
좋아하는 대상의 모습의 중심부터 외곽까지 구석구석 살펴보고 그 본질에 대해서 처음부터 꿰뚫고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판별해서 맞출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자꾸 그곳에 서있고 마음이 끌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그 일이 좋아서보다 다른 이유들이 섞여있을 수 있다. 자위를 위함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일수도 있고, 또 다른 욕망이 충분히 개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어렸을 때 봤던 환상에 젖어서 그 황홀함에 대한 집착으로 긴 시간 동안 나만의 사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번쯤은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는 정도의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억지로 그 꿈을 연출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보다 더욱 호되게 자신을 평가하고 다그치기도 했었다. 그 마음을 놓아주고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걸 담았을 때 즐거움을 만들었다. 그릇에 좋아하는 것이 담겨있는 것만큼 전체적으로 좋아 보이는 게 또 있을까. 그 그릇이 조금은 들기 버겁거나 완전히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좋아하는 감정과 마음이 담을 수 있을지를 떠올리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영상 안에는 지인들의 행복한 순간과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의 이유 없는 신남이 담겨 있었다. 그 영상을 볼 때마다 우리는 늘 웃을 수 있었고,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분량이었다. 좋아하는 순간과 인상이 남겨져 있는 영상을 나는 좋아한다.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일이 아닌 놀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던 아이는 그 영상 안에 담겨 있는 순수한 감정이나 따뜻한 가치에 대해 공감했을 것이라고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