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백 권을읽어도 깨우치지 못하는 사실
책은 사람을 닮아있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를 기록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책을 닮아있다. 책을 읽고 그 세계 위에서 사고하고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 서로를 닮은 사람과 책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책 외에도 스마트폰 기기를 통해 읽을거리가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 책만큼 인간의 세계를 가장 넓고 깊게 담고 있는 매체는 찾기 어렵다.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서점을 방문한 어느 날,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충격을 받고 그동안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왜 집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없다고 생각했고, 책을 왜 읽어왔는지에 대해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책의 목록, 중고서점에 판매한 책의 목록,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까지 합하여 세어 볼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커리어나 생존을 키워드로 한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러저러한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이러저러하게 성공하는 법, 이러저러하게 성장하는 법에 대한 가이드를 담고 있는 내용에 눈길이 갔다. 읽어봤을 때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가 놓쳐서 빠트리는 정보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불안감에 책을 고르기도 했다. SNS나 인터넷 매체들을 활용해서 일별로, 실시간으로 뉴스와 정보를 파악하는데도 불구하고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새로운 이슈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읽는 책은 시간이 조금 지나 읽은 지 1년만 되어도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방법론이나 그 상황에 맞는 매뉴얼을 가이드처럼 적었기 때문에 맥락과 흐름이 변화하면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휘발성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새로운 지식에 대한 앎의 욕구였다.
서점에서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담은 책을 집기 어려웠던 이유는 앎에 대한 목표와 방향성이 애매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는 게 아니라, 알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강력한 작용에 대한 반응을 하는 무력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책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기분보다는 큰 스피커 앞에서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음량의 말을 멍하니 듣는 것 같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변화되는 속도에 가속이 붙고 전달되는 내용 자체도 배로 늘어나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 개인이 피할 수 없는 시대 속에 놓여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에 대한 학습을 더욱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알기 어려워서 생긴 막연한 부담감은 책을 읽는 목표를 다시 한번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정말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면 생존에 유리할 수 있는지는 아직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이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 마음을 먹고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입시를 앞둔 시간들이었다. 당시에 찾은 동네 도서관의 열람실은 입시생, 수험생, 각종 공부를 하는 주민들의 공간이었다. 좌석을 예약하고 지정된 자리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던 와중,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자료실이 문득 궁금해졌다. 문제집에 등장하는 정보나 지식의 출처가 자료실에 있는 책이라는 점, 교과서 내용의 근원적 토대가 전문 서적들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원본을 마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입시를 위한 공부는 잠시 쉬고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횟수가 더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에 순수한 호기심으로 읽었던 책은 출세, 자기 계발과 같은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과서나 문제집에 있는 지식 외에도 책을 통해서 알게 될 수 있는 세상에 훨씬 흥미가 갔던 것이다. 겪고 있는 현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당시 세상은 어떤 언어와 합의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가는 것이 진짜 공부이지 않을까 하면서 반쯤 정도의 정신승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비밀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 숨겨진 진실을 알아낸다면 이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한 권씩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던 입시생의 신분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정말로 궁금한 책들을 읽었었다면, 입시가 끝난 시점부터는 스스로의 성장이나 미래에 대한 준비를 늘 곁들이는 독서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모르는 세계에 대한 탐구보다는 진로 설정을 위해 참고해야 하는 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전공이나 관심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미래에 대한 준비를 잘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과제나 발표를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인문학 전공이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강의를 위한 책이 아니라면 읽으려고 하지 않았던 기간도 있었다.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1주일에도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정독해야 하는 상황도 한몫을 했다. 다행히 처음 호기심을 가졌던, 책을 읽기 전에는 도저히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에 대해 한 발 한 발 디딜 수 있었던 건 전공 수업시간에 읽은 책 덕분이기도 했다. 한 분야에 대해 깊은 연구와 실험을 마친 이들이 추천하는 책이나 사고의 틀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길이었다. 사람에 대한 공부를 호기심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만족도 자체는 높은 독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 공부가 미래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진로나 미래에 대한 부담을 덜고 책 자체에 대해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은 내면의 안정이 찾아오는 시기에 만들 수 있었다. 시기마다 큰 위기감이 들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런 여유 속에서 읽을 때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써먹어야겠다는 의식 없이, 특정한 유명 저서를 읽는데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허세 없이, 오로지 그 책과 나 자신 사이에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그 책을 지은 작가가 뒤에서 고민하고 생각한 흔적이 느껴지고, 조금 더 시간을 흘려보내면 그 작가의 삶도 같이 느껴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시대와 상황이 다르더라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감정과 사고의 만남은 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깨달은 건 그 작가들도 똑같이 누군가의 책 속에서 대화하고 생각하고 성장해서 책을 남기게 될 수 있어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책이라는 건 출판사에서 기획해서 인쇄소에서 종이를 찍어낸 물건에 해당하지만, 작가가 겪은 인생의 덩어리가 그 안에 들어가 있음을 무시하고 설명할 순 없다. 그 덩어리를 모두 수용해서 각 요소들은 흡수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시간에 가치가 있음을 확신했다. 대화를 통해서 모르는 것을 알게 되거나 지식이 자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날 수 있지만, 책을 읽을 때마다 바로 나타나는 변화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나 자신에게도 충분한 인생의 조각과 덩어리가 독서 외 경험을 통해서 누적되고 응축될 필요도 있었다.
몇백 권의 책을 읽는 다고 해서 인생의 조각과 덩어리가 축조된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거나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것 또한 절대적인 수단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과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을 전공했다는 것 역시 특별함을 의미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떤 대화를 가져왔는지에 달려 있었다. 진정한 대화는 그 안에 서로의 인생이 통한 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독서, 여행, 사람과의 만남, 또 다른 무엇이든,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읽을 수 있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대화가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나의 질문 포함 여부였다. 질문이 죽어 있는 한 대화가 지속되기 어렵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한 작가가 고민하고 생각한 인생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다고 해서 그 세계를 모두 인정하고 그 안에 있는 언어를 달달 외웠다고 해서 작가와 대화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주인공의 성격을 그렇게 설정했을지,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은 왜 그 모양인지, 결국 나는 왜 이 작가의 책을 붙들고 스스로를 거울 비춰서 돌아보고 있는지 등을 질문하고 또 대답했을 때 삶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책을 통해 작가와 대화하기를 멈추고 새로운 지식에 대해 받아 적어서 생존의 지름길을 찾으려는 태도로 접근해왔다는 것을 돌연 알게 되었다. 늘 마음 편히 이 사람 저 사람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 좋으련만 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각종 위기감과 지금 충분하지 않다는 태도는 집어 드는 책의 종류도 한정되게 만들었다. 책을 읽고 고르고 생각하는 것 역시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지고 변화하며 그 감정을 투영하게 된다. 잘 살아야 한다는 고민을 하다 보니 책에 대해서 설정하는 방향과 목표도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니 책은 잘못한 게 없다. 서점에서 읽을 책이 없다는 걸 탓해봐야 좋은 책이 눈앞에 있어도 대화할 여유가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지 않는 한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잘 사는 것, 생존해 나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이기에 그에 부합하는 책을 읽는 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얻었던 능동적인 대화로 가능했던 확장을 다시 회고해본다면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더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는 작은 질문과 대화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기회를 얻기 위해 대량의 권수보다 내 마음을 반영한 그 한 권이 의미 있음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