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발은 이상에서 고백은 현실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히피'소설을 따라 '히피와 반문화' 추적하기

by Rootin

히피로 살았던 파울로 코엘료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 직접 겪은 일화와 사건을 명칭과 시간을 바꿔서 허구로 만들었다. 작가가 배경으로 한 시대는 반문화 운동이 활개 치는 때였다. 역사로서 사실보다 소설이 주는 이야기가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건 분위기와 감정이입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특한 문화를 가진 이들에 대한 설명은 그 내부를 살아본 이가 전해줄 때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세상을 어지럽힌 히피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그 불편함에 안도감을 내어준다. 문명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결함을 찬찬히 떠올려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문화라는 것의 본질을 비추고 들춰내는 근거와 연구의 도구가 된다. 왜 이상은 현실을 모두 바꿀 수 없는지, 그러면서도 현실은 이상을 필요로 하는지, 몸소 살아간 이들의 여정은 여행이라는 친근한 테마로 질문을 시작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만든 '파울로'라는 브라질 남자 청년은 방황을 삶과 일치시키고 있는 인물이다. 인생의 큰 목표를 만들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흐르다 흘러 1970년 9월 마약과 성이 자유로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도착한다. 그에게는 별다른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유럽을 횡단하여 아시아를 가로질러 네팔로 향하는 '매직버스'라는 황당한 버스에 탑승한다는 것에 납득이 간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매직버스' 탑승의 동기는 다르지만, 100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몇 박 며칠을 이동할 수 있는 조건은 동일했다. 파울로와 함께 '매직버스'에 타게 되는 '카를라'라는 여자 청년은 인생의 줏대를 점술사를 통해 결정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남성을 '파울로'로 상정하고 운명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러운 버스 탑승, 이상한 신념을 가진 여자와 동반 여행은 방황의 일부였다.


'파울로'는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전 여행지였던 마추픽추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영문도 모르고 납치를 당했다. 그를 제압한 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단체였다. 실제로 60년대는 미국에서 매카시즘이라는 정치적 낙인 전략이 종료된 시점이었다. 그 여파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자유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와 거리가 있는 개념의 사상이 지지를 얻을 수 있던 때였다. 다양함은 시대정신 중 하나였다. 마르크스주의, 흑인 인권운동 등 한 이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임과 단체는 우후죽순 생겨났다. 아시아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와 북베트남을 뒤에서 밀고 있었다. 미국은 쿠바 혁명을 겪으며 세계적인 붉은 물결을 바라보는 타이밍을 가져야 했다. 긴 혼란기에 미국 닉슨 대통령 선출을 기점으로 기존 문화에 저항하며 생겨났던 반문화 운동은 시들해져 갔다.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는 등 평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행보를 가져갔다.


'파울로'와 '카를라'는 별다른 사연 없이 가까워지는데 이때 친밀도를 높인 계기는 약물 경험에 대한 공유였다. 히피가 약물을 찾았던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성적인 욕망을 극대화하는 것, 다른 하나는 종교 행위의 일환으로 삼은 것이다. 쾌락의 정점에 있을 때, 그 기운을 성의 해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한 편에는 깨달음이나 우주의 본질에 다가가는 차원과 연결 지으려는 노력과 종교적 운동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종교의 체계는 기존 전통 종교들에 비해 체계가 모호했고 통일성이 부족했다. 결국 약물 복용자들은 깨달음이라는 영적인 부분보다 성적인 욕구의 수단으로 자주 활용했다. 그중 일부가 추구했던 종교적 깨달음은 실제로 눈에 보이는 영역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모두에서 실패했다.


'매직버스'에 탄 승객들은 기사가 멈춘 코스에서 자유롭게 관광도 했지만 노숙도 즐겨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정 중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숙소를 구하거나 음식을 거래할 수 없었다. 잘 씻지도 않는다. 실제 히피들이 씻지 않게 된 배경에는 스스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위생을 거부하려는 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잘 먹지 않고 씻지도 않았을 때 나타나는 영양실조와 질병들은 오히려 의식을 공격했다. 정신질환은 정신에 이상이 생겼을 때 외에도 몸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면 문제가 연결된다. 히피들이 자유로움을 되찾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오히려 그들의 자유를 앗아가고 결과적으로는 고립되도록 만들었다.


여전히 소설 상에서는 자유와 낭만을 품고 있는 '매직버스'의 승객들은 틈이 나면 축제와 춤을 즐긴다. 젊음과 쾌락 그리고 순간의 영원함을 믿는 이들에게는 열정이 있다. 히피들은 분장하기를 좋아하고 말 그대로 모든 순간을 연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선호했다. 무대와 배경에 대한 규칙은 없고 순수하게 그 자체를 즐기고 속에서 도취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을 끝낸 이들이 구경을 위해 찾았던 연극이나 여가생활이 히피들에게는 주된 활동이었다. 스스로 구경거리가 되기를 자처했다.


축제와 즐거움을 뒤로 '파울로'와 '카를라'는 중간에 하차하지 않고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한다. '매직버스'는 그동안 암스테르담부터 이스탄불, 테헤란, 카불, 델리를 지나왔다. 여정의 끝에서 '파울로'는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카를라'는 '파울로'와 사랑으로 완성을 맺고자 한다. '파울로'는 삶과 일치된 방황을 계속 이어간다. '매직버스'만큼이나 긴 여정을 만날 수 있는 이슬람 종교의 수피즘을 택한다.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카를라'를 떠나보낸다. 하지만 그 결심은 결국 1년 내 깨지게 된다. '파울로'는 수피즘을 떠나 30년이 넘게 지난 2005년으로 모습을 보인다. 히피들은 '파울로'처럼 동양 종교에 매료되지만, 그 깊이, 철학적 바탕을 모두 수용하기보다는 겉모습이나 도구로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2005년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파울로'는 실제 파울로 코엘료만큼이나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그곳에서도 '파울로'는 방황을 끝내지 못한 방랑자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기껏 떠나보냈던 '카를라'를 북토크 현장에서 찾는다. '카를라'는 그곳에 없다. '카를라'가 찾고 싶었던 건 점술사의 예언이 적중되는 것이었고 '파울로'가 원했던 건 끊임없는 방황이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유의 본질을 히피에서 찾는 것이다. 젊은이가 갖고 싶었던 삶의 의미는 여정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정을 떠나지 않았을 때 역시 방황의 연속 중 일부였다.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되어 결핍을 느끼고 '매직버스'에 탑승한 승객들은 그 와중에도 방황을 갈구한다.


히피는 역사 위에서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 그곳에서 만나는 자유, 환상에 젖어 사는 꿈을 꾸었다. 종교, 문화, 관계, 정치, 사회, 예술은 그 꿈에 종사했다. 역사 밑에서 입장이 불분명했지만, 퇴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사라고 일컬어지는 인간 문명은 모순을 인정하고 유지해왔다. 자유와 억압을 동시에 느끼는 역설적인 공간으로 그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문화라는 것은 모순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모순적이지 않은 형태로 구현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히피는 스스로 모순이 되었기 때문에 모순적이지 않은 문화를 가질 수 없었다. 바꿔 말하면 이상은 현실과 하나가 되었을 때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한다. 꿈꿔왔던 네팔 여행과 깨달음의 성지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영적인 궁금증은 그곳에서 생겨나지 않았던 '파울로'다. '카를라'는 예언된 사랑의 동반자를 만나서 고백을 함으로써 그 대상은 고백 그 전의 설렘을 잊어버린다. 언젠가는 '파울로'가 '카를라'를 다시 찾듯이 균형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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