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와 우주와 외계인 경험한 후기

리들리 스콧 욕망 3부작: 올 더 머니, 라스트 듀얼, 하우스 오브 구찌

by Rootin

리들리 스콧 감독은 몇 년 전 80세를 넘겼다. 고대 로마제국, 태양계의 화성, 미래의 외계행성까지 만나고 온 영상 예술가다. 살아있는 동안 서구권 세계 속 과거와 미래를 종횡무진 누빈 이야기 탐험가이기도 하다. 영상적 장악력이 부족하면 구현하기 어려운 SF 영화에서도 질 좋은 결과를 내놓은 이력이 있다. 화려한 경험을 바탕을 두고 그가 펼친 최근의 개봉작들은 실화 바탕 역사 드라마였다. 2018년에 개봉한 '올 더 머니'는 1973년 석유재벌 회장의 손자 납치 사건, 2021년 개봉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는 14세기 프랑스의 결투 재판, 2022년 개봉한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는 구찌 가문의 살인사건을 다뤘다. 모두 각본을 직접 맡은 건 아니지만, 흥미로운 공통점을 이야기에 담아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건드린 3개의 영화에서는 주인공들 사이에 '위대함'을 지워낸 것이다.

3부작.jpg 파트리치아 레지아니(하우스 오브 구찌), 장 카르주(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폴 게티(올 더 머니)

감독 개인의 가치관이 담겨있든, 올바름이나 정의로움을 녹여내고 싶었든, 그의 전작들의 주인공은 위대함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홀로 남겨진 우주에서 살아남기, 억압된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기, 남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할 도전에 응하고 한계를 극복해내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위 3 작품에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거나 보고 본받을 만한 인물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입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욕망에 매우 충실한 인물들이 쏟아진다. '올 더 머니'에는 따라 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부자 중의 부자로 실존 기업인 '폴 게티'가 등장한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는 당시 세계관 법정상 재산으로 규정된 아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절친과 결투를 거는 '장 카르주'가 나온다. '하우스 오브 구찌'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품을 판매하는 '구찌'기업 가문의 가족들을 볼 수 있다. 이미 신화, 우주, 외계 존재, 인류의 시초를 모두 여행한 뒤에 느낀 소회와 감정을 후기로 남기고 있는 듯한 실화 이야기에는 인간의 탐욕 만이 남아 있다.


이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해당 역사와 세계가 그들을 욕심에 가득 차게 만들었다는 교훈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지나고 언제가 되어도 나타날 수 있는 추악함의 발현이 다뤄지고 있다. 다만, 근원적인 윤리의식이나 선악에 관한 본질적 문제를 꼬집어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잘 준비된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납득 가능한 과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결국 납치범들로부터 구출되는 극적인 결말, 목숨을 걸고 벌이는 중세시대의 결투 대결, 충격적인 주인공의 살해 장면은 이미 역사를 통해 밝혀지고 기록된 사실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장기를 부리는 지점은 예측 가능한 전개 속에서 사람이 가진 욕망의 실현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 지다. '어떻게'에 집중하면서 사는 법이 더욱 극명하게 묻어난다.


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만들었던 초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는 초인으로 사는 법에 대해서까지는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 극적이고 아름답다고 했을 때, 그 이후에 대한 삶이 어떠한지에 대해 질문한다. 각각의 욕망으로 한계점을 넘은 인물들의 미래는 어느 정도 예정된 길로 향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올 더 머니'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는 욕망의 화신에 의해 피해를 보거나 생명을 수호하는 인물로 여성 캐릭터가 활약을 한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모성을 가진 인물 역시 타락을 막지 못한다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단정 짓는다. 모든 욕망이 범람하는 행태를 지켜볼 수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이든 욕망을 통해 한계점을 뛰어넘은 인물은 결국 그 감정이 자신뿐 아니라 역사에 얼룩지고 번져 버린다. '올 더 머니'에서 세계 최고 갑부가 된 폴 게티는 그 이후에도 증가와 증식을 원했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두 친구는 출신과 배경에 대한 열등감과 자존심으로 인생에서 치르지 않았어도 될 싸움을 갖는다. '하우스 오브 구찌'의 여주인공 파트리치아 역시 모든 것을 혼자서 독점하려는 욕심 때문에 행복한 현재를 뒤로하고 선을 넘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들은 부족했던 것을 채운 이후,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잊어버리고 채우는 행위와 삶을 일치시킨다. 신과 같아지려고 했던 무모한 도전을 펼친 신화 속 우화가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연속으로 연출한 것은 극적이고 흥행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지만 또 다른 효과를 일으킨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충격 요법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의 경우, 지금의 감수성과 비교하면 믿기 힘든 수준의 재판의 성격을 소개한다. 아내가 남편의 재산의 일부로써 법적 효용을 갖는다는 발상도 충격적이지만, 결투에서 이긴 사람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판결 방식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감독은 이러한 사실을 조소의 시선으로 영화를 찍었다.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구찌 가문의 일화나 폴 게티의 손자 납치 사건은 웃지 못할 우화가 될 감으로 여겨질 만한 욕망의 역사인 셈이다. 현재의 상영 시점과 당시의 과거 사건을 비교하면서 욕망이 얼마나 웃기게 드러났는지 지적하는 뜻일 수도 있다. 그 웃음이 터지지 않는 것은 욕망이 그만큼 관객에게 밀접해있기 때문은 아닌지 반문하는 80대 노인의 3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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