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와 '풋라이트'로 찰리 채플린이 선택한 망가뜨림에 환호하기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예요. 그것에서 벗어날 만큼 오래 살지를 못하죠." 자신과 관객들을 웃음에 빠뜨린 인생을 살던 중 내뱉은 한 프로 희극인의 대사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은 숨기고 싶어 한다. 잘나 보이고 완성된 것 만 보여주고 싶은 당연한 마음은 아마추어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때, 자신의 쓰라리고 부끄럽고 창피한 과거를 공개하는 건 선뜻 내리기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는 무대에서 치부를 통해 관객들이 웃음을 얻도록 꾸미는 일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큰 박수와 환호를 얻어내기 위해선 무대 위 연기자 역시 자신의 큰 부담을 내어줘야 만 한다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이었다.
찰리 채플린은 미국에서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고 직원들을 고용해 원하는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는 성공한 제작자 겸 배우였다. 하지만 1947년 '살인광 시대'라는 영화를 시사한 이후, 미국 연방수사국의 괴롭힘에 계속 시달려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미국 정치계에서는 '매카시즘'이라는 낙인 전략이 매섭게 몰아쳤다. 실제로 한 이념을 추종하건 그렇지 않건 일단 그 인물이 주류 정치와 반하는 이념을 가지는 순간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다. 낙인으로 선정된 인물들은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경제적 자산을 한 순간에 잃을 만큼 커다란 광풍에 휩쓸렸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영화산업과 함께 성장한 찰리 채플린은 그동안 코미디 장르의 살아있는 전설로 구축한 지지를 모두 잃게 되었다. 특히 재판에 의해서까지 죄인으로 취급받아야 했던 사건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하는 낭떠러지 체험이었다.
실질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만든 건 정치적 생태계의 논리였지만, 채플린이 잃어버린 건 예전 같지 않은 관객의 반응이었다. 영화를 만들고 무대에 서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일을 했던 이유가 그의 자유로운 목적이었다. 더 이상 같은 현실은 사라지고 없었다. 예술가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억울함을 퍼 먹는 시기를 맞이해야 했다. 채플린은 이 굴곡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첫 데뷔를 갖기 전 불행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다. 무대에 서기만 하면 무시당하고 외면하고, 자신의 이름이 붙은 것 만으로 경멸을 당해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를 견디며 깨달은 희극인의 본질과 열정을 꺼내온다. 중요한 진실이 사라지지 않도록 가장 바닥에 있을 때 새로운 공연 하나를 기획한다. 1948년부터 그는 '풋라이트'라는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채플린이 잊지 않으려 한 진실은 간단했다. 관객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처음 영화계로 진출하고 중요한 배역을 맡으며 성공과 아마추어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얻은 진수는 하나였다. 연기하는 사람의 슬픔을 꺼내놓지 않으면 관객과 교감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1908년 즈음 흥행할 수 있는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맞기 전까지 채플린의 과거는 암담했다. 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부모님이 모두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유흥업에 종사했지만, 어머니는 그 와중에 건강 문제로 정신병원에 갇혀있어야 했다. 좋은 배역을 얻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피나는 반복된 훈련을 거쳤다. 코미디 연기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라이브 무대는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억눌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무대에 올라가고 연기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유흥업에 종사하는 삶 자체가 불안을 늘 동반하는 턱 막힌 일상이었다.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탈출구는 본인이 있는 위치에서 관객들을 웃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웃음을 만드는 것이 곧 삶과 존재를 부정하는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는 선택이었다. '풋라이트'라는 소설은 '칼베로 이야기'라는 또 하나의 짧은 가상 인물의 전기와 합쳐져 1952년 '라임라이트'라는 영화로 재탄생되었다. 극 중에서 '칼베로'는 찰리 채플린 본인과 닮아 있는 늙은 광대다. 젊은 시절에는 그의 모든 아이디어와 연기에 박수를 받았지만 이제는 모두 외면하고 인기를 잃은 인물이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젊은 발레 무용수를 우연히 구하며 적적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테리'라는 인물은 가난과 무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리가 마비되어버렸다고 믿는 병에 걸려있다. '칼베로'는 그녀 하나 만을 위해 영혼을 보살피고 다정하게 대해주어 다시 무대로 복귀시키고 성공적인 발레리나가 되도록 지원한다. 정작 '칼베로' 자신이 다시 돌아간 무대에서는 업신여김을 당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 심지어 따뜻하고 섬세하게 대했던 '테리'가 자신이 아닌 젊고 유망한 청년과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에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채플린은 '칼베로'를 직접 연기하고 '라임라이트'영화 전체를 연출하는 1인 다역을 소화한다. 연출자, 배우, 편집자, 무대 기획자, 총지휘자로서 그가 맡은 역할은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향한다. 젊은 발레리나와 사랑에 빠지지 않고 그녀를 위해 곁을 떠나는 이별이다. 극 중 '테리'는 사실상 실제로 채플린을 알고 그의 유명한 작품과 연기를 사랑했던 20세기 영화와 무대의 관객들이다. 채플린은 데뷔한 이래로 몇십 년 간 관객을 위해 열연을 펼치며 그들에게 잠에 잘 들 수 있는 좋은 저녁을 선사해왔다. 그들과 아쉬운 헤어짐을 선택해야 하는 건 찌질한 전 남자 친구의 위로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채플린 본인의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고 흐느껴서는 다시 무대에 올라서 웃음을 유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서 채플린은 '라임라이트'라는 영화로 실제 삶을 코미디에 부착했다.
웃겨 보이는 인물을 묘사하거나 따라 하는 기술적 표현은 그동안 자주 선보여 왔다. 관객들에게 다시 아마추어의 신분으로 다시 신뢰를 받고 좋은 저녁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1908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자전적 슬픔을 소재로 사용해야 했다. 영화 속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1914년은 무대 유흥업을 막 배우고 숙련해가는 시기였다. 채플린은 1914년을 실제 역사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2가지를 연기해야 했다. 첫 번째는 1950년대 모든 걸 잃은 자신을 닮은 '칼베로', 두 번째는 무대에 올라가면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어린 채플린 자신이다. 이 연기들을 예술로 완성시키는 터치는 연출자로서 내리는 2가지의 결단이다. 첫 번째는 연기자의 생생한 기억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은 것, 두 번째는 영화 속 관객들을 리얼하게 묘사한 것이다.
점차적으로 위기를 겪으며 목숨을 잃어가는 광대 '칼베로'는 모든 조건이 잘 맞아떨어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그가 '테리'와 예쁜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길을 가야 한 이유는 관객의 반응 때문이다. 본인이 그 길을 가지 않으면, '테리'를 살려냈던 용기, 열정, 욕망에 대한 수사는 거짓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녀가 계속해서 발레를 서고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선 '칼베로'의 광대 연기 역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야 했다. '칼베로'를 연기하는 채플린의 기억에는 그가 극복해야 했던 런던의 '뮤직홀'을 둘러싼 공기가 살아 있었다. 당시 분위기를 배경 삼아 재현된 무대 위에는 이 공기를 호흡하고 연기하는 젊은 채플린의 두려움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실제 관객들이 이 모든 상황과 만나고 함께 뒤섞여 아마추어라는 단어가 내내 맴돌게 된다. 채플린이 자신을 망가뜨려 연주한 '칼베로'는 줄이 끊어져도 소리를 내는 현악기처럼 관객을 또 한 번 살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