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어 윌비 블러드'와 록펠러 이야기로 석유를 둘러싼 게임 읽기
에너지는 인간 모든 활동의 근원이 된다.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고, 결과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석유는 단연 최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이며 가치고 높은 에너지원이었다. 흥미롭게도 석유라는 에너지 원이 널리 쓰인 건 정치와 군사가 긴장 상태에 놓여 있을 때였다. 세계 1,2차 대전과 냉전 그리고 도시와 공업경제가 활성화되는 데 있어서 모든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은 석유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에너지가 지금 현재는 두 말할 것 없고, 20세기를 지탱하고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부정적 측면과 환경오염 등의 주범으로 지목될 수는 있더라도 석유 자체는 모든 편의와 평화를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에서도 쓰이는 자원이다. 그만큼 어떤 국가와 집단이라도 석유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중요한 건 석유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유는 혼자서 결정을 내리거나 감정과 메시지를 내비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고대 시대부터 석유는 중동 지역에서 종교와 의술 그리고 무기로 쓰였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한정된 지역에서 만 제한적으로 쓰였던 에너지가 전 세계의 혈맥처럼 변모하게 된 배경에는 하나의 거대한 게임이 있다. 석유를 무엇인가와 교환하고 싶은 집단과 그 집단이 추구하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한없이 동조하고 부추기는 게임의 룰이 있었다. 여러 게임 중 다층적인 이야기를 가진 짧은 50년가량의 시기를 소개할 수 있다. 185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미국 경제는 석유 산업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대 자본주의가 어떠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경제의 강국이 되었는지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볼 수 있는 사례이다.
먼저 '게임'이라는 형태가 역사와 미국 경제와 부합하게 된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 게임은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참가하여 합의된 룰 아래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놀이라고 정의가 가능하다. 석유라는 에너지원을 둘러싼 산업의 초기 발달 과정은 게임과 닮아 있었다. 당시에도 기본적인 법체계와 견제기구들이 있었지만, 법은 경제 활동의 맹점을 보완하기보다는 판을 만들고 플레이어들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에 기여했다. 한 개인이 거래와 술수에 능하기만 하면, 그 사람이 게임에 왜 참가했는지, 왜 왕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바꾸어 말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자기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아 오는데 상관이 없을 정도의 룰과 유사했다.
대표적인 예가 석유 산업의 기틀을 닦고 생산 관련한 법규를 제정할 때 참고한 포획법규였다. 이 법안은 영국에서 수입한 사례로 사냥감이 다른 사람의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을 소유한 자 만이 잡을 수 있다는 권리 규정이었다. 석유가 있는 땅의 소유자는 땅 아래에서 모두 퍼내고 뽑아낼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진정한 게임이 출발했다. 판의 전체적인 구조와 틀이 만든 행태가 곧이어 차례로 드러났다. 땅 소유자들은 1850년대부터 향유고래 기름을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인 석유를 발견하고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위의 포획법규에 따라 땅 근처에 있는 유정을 모두 가져와도 상관이 없었다. 법에 위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해서 경쟁자들보다 퍼올려야 하는 경쟁의 장이 펼쳐졌다. 돈이 되고 그 상승률이 뛰어난 석유 시장은 기술과 사람을 단 시간에 끌어들였다. 1866년 결국 첫 번째 거품이 터져버린다.
가격이 하락한 석유 시장에 입지를 다지려 본색을 드러낸 주자는 말을 소유한 운송업체들이었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도로 정체를 유발하고 독점 지위를 내세워 운송 요금을 인상해 버렸다. 이에 대응한 석유업자들은 기술을 동원해 파이프라인을 개발했다. 더욱 고도화된 기술로 마부들을 몰아낸 철도와 연계하여 유정의 대부분을 연결시켰다. 유정에 맥이 생기고 운송이 더욱 간편화 될 무렵 혼란스러운 정국에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 정유회사가 등장한다. 1865년은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해외인구가 유입되고 내수시장이 확대되며 기업과 기업, 시장과 시장 간 경쟁과 결합이 치열한 때였다. 이때를 기회로 포착한 록펠러는 공급과 배달 기능 조직을 흡수하고 통치했다. 이와 더불어 독점적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석유를 담을 통, 수송할 탱크, 자사의 도매상, 강을 건널 수송선, 혼란을 버틸 현금 등을 착착 준비하기 시작했다. 손해를 보고 있던 정유회사들을 모두 통합하여 가격을 결정할 막강한 권한도 쥐게 되었다.
가장 압도적인 권한은 철도회사와 카르텔을 형성하여 운임과 관련한 가격마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다. 정유업에서의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던 '스탠더드 오일'은 이제 생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생산업자들 간 경쟁 게임은 법이나 룰로 관리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가격은 쉽게 폭락하고, 농토와 시내에는 원유가 범람했다. 안정성이라는 것을 바랄 수 없었다. 누구 하나 산업이나 지역을 걱정하는 이들은 없었고 오로지 개인의 목표 달성 만이 시장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야생에 뛰어든 '스탠더드 오일'은 맹수가 초식동물을 잡아먹듯이 시장의 가격을 조정해 경쟁상대를 무너뜨렸다. 1870년대 말까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포식자였던 '스탠더드 오일'은 독점과 경쟁자들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석유 산업의 꼭대기에 점진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결국 펜실베이니아 대법정은 독점과 경쟁자 손실 공모에 대한 죄목으로 '스탠더드 오일'은 기소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스탠더드 오일'은 미리 다른 회사의 주식을 직접 소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주주들을 대신하여 신탁하는 방식은 법적으로 또 한 번 문제가 될 구실을 제거할 수 있는 묘안이었다. 대법정의 기소 이후 관리와 조정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의 승자가 아닌, 게임 자체의 지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스탠더드 오일'이 '게임'을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룰이 모두 설명하지 않은 취약점을 공략한 데 있다. 가격을 시장의 상황과 관계없이 마음대로 결정해버리는 방식이나 인수와 합병의 방식에서 이득은 취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방법은 게임의 룰에 공개적으로 표시된 적이 없었다. 중간중간 욕심의 크기가 만만치 않았던 철도회사, 마부회사, 개인 정유회사가 나타났지만 문제 해결 방식은 게임이 아니라 물리적 힘으로 압도해버리는 모습에 가까웠다.
록펠러 생애 가장 마지막 중대한 결정은 석유 생산업에 진출하는 방향지시였다.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는 생산업자의 삶은 어땠을까? 과연 게임의 룰은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흥미롭게 함께 다뤄볼 수 있는 사례로 '데어 윌비 블러드'라는 영화를 놓을 수 있다. 1898년 '스탠더드 오일'이 이제 막 생산업자들의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할 즈음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가상 인물은 당시의 석유 생산업자를 모델로 비친다. 그는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는 시점에도 성공을 유지한 석유사업가로 그려진다. 그 과정에 3가지 시련이 강렬하게 찍혀있다. 첫 번째는 '스탠더드 오일'에서 규모의 경제로 자신을 흡수하려고 찾아오는 경제적 현실, 두 번째는 부모 없이 버려져서 직접 키운 입양아들과의 복잡한 관계, 세 번째는 석유 생산 지역에서 마주한 원수 같은 종교 지도자와의 갈등이다.
'스탠더드 오일'은 정유회사를 통폐합할 때와 마찬가지로 석유 생산업자들의 땅도 사들이고 인수하고 흡수하는 방향을 택했다. '다니엘 플레인뷰'의 회사도 그 후보로 지목되어 거액의 계약금으로 구입하려는 시도가 이뤄진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평생 만져보기 힘든 금액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할 일이 없어진다."라고 거절한다. 이는 그동안 축적해온 석유생산회사가 많은 이윤을 남기기보다 직접 경영해나가며 느끼는 성취가 중요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더 많은 부를 쌓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운영하는 석유생산회사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또 다른 시련을 제공한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애초에 피붙이라고 할 만한 가족 없이 외로운 처지였다. 그의 동업자 중 한 명이 석유를 캐내다 사망한 까닭에 그가 남긴 갓난아기를 맡아 키우게 된다. 이 아이는 지역사회와 시민과 경제 인구들을 설득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쓰인다. 가족 비즈니스를 강조하고 천진난만한 이미지를 줌으로써 친근감과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를 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석유의 샘이 마침내 폭발하며 솟아난 그날, 아들은 귀가 안 들리게 된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죄책감인지, 사용가치가 떨어진 수단을 버리려는 결단인지 아들을 다른 지역으로 멀리 보내 버린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느끼고 늘 술병을 들고 다니며 외로워하는 장면들이 강조되어 드러난다. 단순히 쓸모가 사라져 버렸다고 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상태를 지니고 있고 그가 원했던 이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이처럼 석유사업을 벌이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인간사에는 그렇지 않아도 견디기 힘든 감정 문제들이 다수 있다. 영화에는 이러한 지역 사회인들을 설득하고 불안을 다스리는 젊은 종교지도자가 '다니엘 플레인뷰'와 대립을 펼친다. 눈에 불 보듯이 펼쳐지는 에너지를 다루는 사업이 위험한 것도 확실하지만 욕망이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과정 자체가 늘 부담과 불안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종교지도자는 이 불안이 존재할 때 힘을 발휘하는 사업가처럼 묘사된다.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사업가는 위험 감수성이 큰 사업을 운영하고 종교지도자는 그 사업으로 인해 조장되는 불안한 감정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공생관계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각각의 욕심이 심화되었을 때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사람들의 불안을 관리하는 종교지도자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하고 전진을 위한 후퇴를 감안한다.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의 욕망은 무엇 하나로 딱 떨어지는 형상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자본가나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태도가 이 영화에서 만큼은 효용성이 발휘되기는 어렵다. 그가 무엇을 추구하든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를 많이 축적할 수 있는 기회도 직접 날려버리고 아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양가적인 마음에 시달리며 종교지도자와의 유치한 패권 싸움을 중요시 여긴다.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의 목표가 게임의 지배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면 '다니엘 플레인뷰'에게 있어서 승리함이란 '내 것을 뺏기지 않고 거슬리는 상대를 제거하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을 처음에 원했건 그것은 좋은 거래의 기준이 되거나 부를 축적하는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남아 있는 것은 한 인간의 못난 결핍, 해소되지 않은 폭력성, 관리되지 않은 위험 감수성과 같은 것들이었다.
록펠러나 '다니엘 플레인뷰'의 섬뜩한 춤사위는 석유라는 것이 말을 걸고 있다는 오해에서 출발했다. 석유는 아무 의도나 목적이 없는 에너지원일 뿐이다. 다른 이들보다 앞다투어 경쟁하라는 신호를 준 적도 없다. 실제로 '리스크'의 출발은 모두 자신이 관리하지 못했거나 극복하지 못한 야수성과 오만함에서 비롯된다. 가치가 높은 에너지원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야 할 자리에 저절로 생겨난 과학적 결과였다. 서로를 불신하고 위험을 초래하고 아무도 부추기지 않은 싸움에서 묻혀 간 피와 시체마저 저절로 쌓인 결과라고 하기엔 오해를 풀지 않은 과거가 유독 아른거린다. 이 기반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고 한다면 '게임'의 언어가 정의 내리는 결핍이라는 단어다. '게임'은 석유와 다르게 하고자 하는 말이 많은 이야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