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의 변명

by Rootin

돼지는 씻을 줄 알고 영리한 편에 속하는 동물이다. 세척과 이익 추구는 근대 인간 도시 문명의 상징과 연결된다. 한 데 모여서 산업을 만들고 많은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인간 집단은 여러 갈등과 대화 주제를 만나게 된다.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시에는 파괴, 가난, 죽음을 감수하고 힘을 쟁취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이기심은 이 과정에서 중독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조지 오웰이라는 두 예술가는 이러한 흐름을 붙잡고 남기고 싶었던 말과 메시지가 많았다. 한 명은 그림과 애니메이션으로, 한 명은 산문과 소설로 풀어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살았고 만난 적은 없지만, 공통된 개념을 놓고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 없는 두 사람의 궤적이 접점을 이룬 순간은 바로 '돼지'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전쟁에 반대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 여러 초월적 세계관과 마법적인 설정을 곁들인 이야기에는 비슷한 줄기의 가치관이 들어 있었다. 소녀와 소년이 함께 성장하는 모험담 속에서 단순한 이기심보다는 서로를 보듬고 자연을 사랑하는 방식이 펼쳐진다. 20세기 세계 전쟁의 비극과는 다른 세상과 삶을 아이들이 희망하고 꿈꾸기를 바란 점을 읽어낼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대중을 속이는 권력집단을 고발하는 작가였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에세이, 비평, 소설을 쓰고 읽었다. 전쟁을 평화라고 부추기는 말과 생각의 허물을 벗기는 역할을 했다. 작가 생활만큼이나 시민으로서 참여한 정치 경력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어긋나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들은 큰 틀에서 전쟁을 막고, 그 입장을 전하는 메시지를 서사화 시켜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시간 속에 탄생한 장편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와 장편 소설 <동물농장>은 돼지를 소재로 다른 주제를 다룬 각각의 이야기다. 각자의 인생 경험에서 가치 판단을 만들고 목적과 동기를 정해서 주어진 재능으로 몰두한 작업의 결과였다. 특히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십 수개가 넘는 작품 필모그래피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인 남성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감독 자신의 취향, 뉘앙스, 추구했던 낭만, 동경했던 비행으로 꾸민 자전적 이야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만큼 자신의 직접적인 세계관을 포함시켜서 애니메이션 속 돼지 인물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이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심지어는 죽음을 생각하는 태도까지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였다. 한 편, 조지 오웰은 직접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솔직하게 드러낸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발표했다. 왜 정치적 글쓰기 집중했고 글쓰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득력 있는 문체로 전한다. 두 예술가의 인생을 겹쳐 보면서 무엇이 공통되고 돼지를 상상 속에 품게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비행기 공장을 운영했다. 전쟁이 빈번해질수록 군수품을 판매한 집안은 풍족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군수 무기 공장이 전쟁물자를 만드는 곳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채감을 느꼈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나 서양 동화들의 주제에 반하는 아이러니였다. 조지 오웰은 그보다 일찍인 1903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은 외롭게 보내며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 인물들과 대화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는 시대와 대화하고 그 안에 깃들어있는 진실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영국령 인도 지역인 버마에서 제국 소속 경찰 5년을 근무하고 1935년 스페인 내전을 겪었다. 그는 "식민 통치와 정치적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라고 적었다. 두 예술가는 식민지배국, 그리고 군사적 우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 특권이 가진 본질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들이 품은 회의감은 폭력과 인간의 죽음이 힘의 출처라는 것을 알게 된 데서 출발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각자의 방식대로 가치 판단을 내린다.


1, 2차 세계 대전은 각국이 서로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었던 전쟁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이야기의 결말은 기계문명을 전쟁에 사용하는 세력의 다툼을 끝내는 방향으로 흐른다. 자연을 중요시하는 인물은 목숨을 걸고 싸움을 종결시키려 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군인은 상대 적군을 몰아내기 위해 일을 한다. 조지 오웰은 일정 부분 투쟁과 싸움에 적극성을 띄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까지 경험한 이후에는 전체주의에 맞서서 그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싸우기로 판단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것을 정당하게 여겼던 것이다. 전쟁과 평화를 속이는 자들 앞에서 내린 판단은 각자의 목적과 동기에 따라 다른 예술을 실현하도록 만들었다.


각자의 예술을 능동적이게 만든 의도는 행동을 낳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보고 들은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상상하는 능력이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진짜로 뭔가가 있다고 믿게 만들고 싶다는 인터뷰도 있다. 어쩌면 애니메이션은 그가 상상하는 대로 작품 속 존재가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매체가 아니었을까. 세상에 대한 관심은 곧 주변 사람과 사물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었다. 관찰하고 그것들을 알기 위한 노력은 일상에서의 세상을 존중하는 태도였다. 이와 정 반대로 조지 오웰은 어른이 되면서 깨닫는 진실을 '잘' 분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고자 했다. 그가 직접 밝힌 글을 쓰는 동기 네 가지는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었다. 그중 가장 힘주어 설파한 정치적 목적은 곧 남들이 들어줘야 성사되는 글쓰기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글에서는 특정인이나 정파를 두둔하기보다 유리창처럼 하나의 깨끗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밝혔다.


진실과 상상력이라는 개념은 언뜻 보면 맞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두 예술가는 어린 시절 문학작품과 서사시를 읽으면서 키운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 능력이 탁월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능력,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능력, 그리고 세상을 다시 보게끔 만드는 능력은 서로 만난다. 그들이 널리 오래 읽히는 배경에는 관찰과 통찰에서 나온 깊이에 있다. 잠시 세상에서 떨어져서 누군가 강요하는 대로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고, 경험한 바 내에서 새로운 견해를 내놓는 데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그 시간은 돼지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쓰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장편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는 원래 이탈리아 소속 군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비행조종사로 참가했다. 동료 조종사들이 모두 죽고 혼자 만 살아남게 되자 스스로 돼지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애니메이션 세계관 인물들은 그 돼지에 대해서 충격을 받거나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누군가를 죽이지도 않고 숨어서 혼자 살기 때문에 명성이 올라와 있는 인물이다. 그런 와중에도 당국은 그에게 전쟁에 다시 참여하고 군에 복귀하라는 협박을 가한다. 그는 '파시즘'에 반대하고 '비행'을 예찬한다. "좋은 놈들은 이미 다 죽었다."라는 언급과 함께 살아 있는 자신은 좋은 놈도 아님을 스스로 평가 내린다. 아마 그 대가로 돼지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돼지가 되기 전 인간의 모습을 기억하는 오랜 옛 친구이자 모든 남성들의 구애를 받는 우아한 여인 '지나'가 있다. '지나'는 숱한 청혼과 관심을 거절하고 반인반수 형태의 돼지 인간이 된 '포르코'에 대한 연정을 품는다. 먼저 결혼했던 남편들이 모두 비행 조종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까닭에 '포르코'만큼은 비행을 하지 않고 살아있기를 바란다. '포르코'는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라는 말을 남긴다.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품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돼지로 살게 됐지만, 욕망 하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선택을 내리기보다는 억압을 뿌리치고 날고 싶은 욕망 그 자체로 살뿐이라는 간단한 이야기다. 작중에서는 1차 대전 목숨을 잃을 뻔한 비행장면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말할 때 딱 한 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쟁을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하지만 뗄 수 없는 입장임을 인지한 듯하다. 그 상황에서 내린 선택이 곧 <붉은 돼지>와 같은 애니메이션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믿게 만들고 상상력을 고취시켜서 자연과 주변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을 돌리고 싶었던 것이라면 말이다. 그것이 전쟁과 비평화 속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인 것처럼 '비행'을 떠올렸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전쟁 옹호론자보다는 붉은색을 띠며 자유롭게 낭만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못나 보이고 손가락질받기 좋게 튀는 돼지의 모습이라도 그 삶을 살기로 한 이상 운명임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검은 제복을 입었을 때의 좋은 점들은 모두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겠다는 욕망을 버리지 않고 그 흔적을 남기는 것 자체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결함이 있고 외로운 사람이라도 붉은색 비행기를 띄워서 나는 건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 장편 소설 <동물 농장>


<동물농장>의 돼지들은 모습은 돼지이지만 점점 인간과 비슷해지는 이야기다. 한 농장에서 사육받던 동물들 속에서 우두머리로 군림한 돼지의 권력 쟁탈 우화로도 읽을 수 있다. 개를 호위병으로 길들이고 언론을 장악하듯 동물들의 인식을 조종하고 체제에 반하는 동물은 처형하고 독재 정권으로 다스린다. 성실히 일하던 말은 사용가치가 떨어지자 냅다 버린다. 돼지는 처음에 인간을 타도하기 위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는 문장을 교육시켰지만,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더욱 좋다"로 태세를 바꾼다. 위스키, 침대, 잡지, 라디오를 곁에 두면서 인간적 삶의 조건을 획득하려고 한다. <붉은 돼지>의 '포르코'는 정확히 같은 물건을 취급하는 인물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간 세상 속에 하나의 돼지로 삶의 특별함이나 의미를 도출하려고 했다. 조지 오웰은 인간과 매우 닮아있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인간과 닮아있는 돼지를 묘사하려고 했다.


돼지는 인간보다는 못나 보이고 탐욕스러워 보이며 이기적이고 포악한 이미지를 준다. 그러면서도 동물들 중에서 영리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을 비유할 때 몰입이 잘 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사실이다. 두 명의 예술가는 인생 경험부터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역사 속에서 발현시키려 한 각자의 목적과 동기, 그리고 이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능으로 결과물을 만들었다. 돼지는 곧 인간이 될 수 있고 그 돼지가 인간이 된다는 건 인간성의 몰락으로 그리고 있다. 그만큼 인간은 가지고 있는 똑똑한 지능과 능력을 험악하게 쓴다는 노골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오히려 돼지의 모습일 때 인간일 때보다 덜 폭력적으로 행동한다는 씁쓸한 지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 인간답게 잘 사는 것은 쉽지 않다는 식의 메시지를 의도했다는 점도 다가온다. 반대로 돼지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어떤 양심과 자격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으로, 조지 오웰은 글쓰기로 길을 정한 돼지들이었다. 완벽하게 떳떳하지는 않더라도 각자의 동기대로 돼지와 인간을 오가며 살았다. <붉은 돼지>나 <동물 농장>을 읽는 지금 시대의 인간에게는 어떤 양심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회가 또 한 번 제공된다. 그리고 흔적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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