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메이커>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말하는 방식 듣기
마키아벨리의 삶은 하나였지만, <군주론>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피렌체의 한 사무국에서 일하던 외교 공무원이 해고당하고 작성한 글은 500년이 지난 시간 동안 파급력을 미쳤다. 신념과 가치는 변하지만, 방법과 수단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사람과 집단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체제와 형태는 시간이 지날 때마다 여러 이름과 이념으로 묶였다. 하지만 그 생각을 행하는 태도와 전략과 이론은 누가 조금씩 변형해서 사용해도 닳거나 바뀌지 않았다. 자기 논에 물을 끌어넣는 모습에서 끌어오는 행위에 만 집중하다 보면, 결국 그 논이 어떤 논이고 누구의 논인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과연 마키아벨리는 후대의 각 대륙과 국가와 지도자들이 모두 논에 물을 끓어 넣기에 집중하는 결과를 알고 있었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는 주인공을 '킹'이 아닌 '킹메이커'를 내세웠다. 가상의 과거에서 대선후보와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동행한 파트너의 모습을 부각한 점이 바로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다. 대게 이념과 신념을 위해 싸운 영웅을 조명하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독자의 가치관에 반하는 경우 분노를 삼는 경우가 있다. <킹메이커>의 연출은 '킹'에 해당하는 '김운범'을 기능적으로 두고, '킹메이커'에 해당하는 '서창대'를 능동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내세운다. 그의 고민에 어떤 세상이 더 좋을까라는 질문도 포함은 되어 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어떻게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토론보다는 방법과 술수를 부리는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고뇌하는지 알 수 있도록 전개된다.
이미 실력과 경험이 절정에 오른 '킹메이커'를 자처한 '서창대'의 제일 첫 번째 걱정은 승패에 대한 당락여부가 아니었다. 사용가치가 떨어졌을 때에는 사람들 앞에서 비전을 멋지게 제시하는 대선후보가 자신을 언제든지 내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감정은 자신의 능력이 꼭 필요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감수해야 하는 영역이 큰 성격에서 비롯된다. 그만큼 도덕성이나 윤리적 가치를 언제든지 훼손하지 않고서는 성립이 안 되는 딜레마 그 자체인 것이다. 신의를 두텁게 쌓은 관계마저 딜레마의 부담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담보였다. 대선 성공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부려야 하는 방법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는 이익을 향한 메아리였던 것이다.
'서창대'를 통해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이 아니라 본심과 마음을 들어볼 수 있겠다. 그는 왜 <군주론>을 썼을까? 이미 널리 알려진 고전이기에 그 이유와 사유는 다양하고 깊게 보급이 되어있다. 누구는 강력한 군주를 위해, 지금으로 치면 시민이라는 계급을 위해, 애국심을 위해, 등 저마다의 설득력 있는 의견이 존재한다. <킹메이커>가 제시한 인간 '킹메이커'의 심정의 관점을 얻었기에 또 하나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보고자 한다. 그가 <군주론>을 쓰기 시작한 건 1513년, 반역 음모로 재판에 넘겨져 고문을 받고 투옥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1511년 프랑스 군대가 그가 살고 일하던 피렌체를 침략했다. 그는 그때 해고당한다. 그의 커리어가 붕괴된 건 피렌체의 역동적인 변혁의 일부였다. 마키아벨리를 몰아낸 것으로 알려진 메디치 가문도 피렌체를 장악했다가 쫓겨났다가를 반복했다. 이러한 불안정한 체제 변화는 <군주론>의 내용을 채우는 경험이 되면서 동시에 인간 마키아벨리의 입지와 존재 목적을 고민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키아벨리는 1498년, 20대 후반의 나이에 피렌체 공화국의 사무관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보좌하는 공무원은 2개월의 짧은 임기 동안만 재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능숙한 업무는 직접 도맡아야 했던 자리였다. 그의 부서는 전쟁과 관련된 외교 문제들을 조정하고 영토에 관한 보고서를 책임지는 일을 담당했다. 프랑스 등의 외세 침략에 대비해 시민군 창설에도 기여한 바가 있다. 사실상 마키아벨리 재직 시절의 가장 큰 업적은 피사를 정복한 일이었다. <킹메이커>에서 묘사한 '서창대'만큼 마키아벨리가 현실 정치에서 귀재로 보일만한 면모가 풍부하지는 않다. 오히려 보기 드물게 뛰어난 재능으로 여겨질 만한 건 일을 관둔 뒤 일이었다. '서창대'가 현실에서 오히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소개되는 현실주의적 술수를 발휘했다면, 마키아벨리는 현실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관리였던 것이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 소개된 내용들처럼 현실에서 정치에 성공하거나 승리를 위한 일반법칙들을 모두 성사시켰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아마 또 다른 경험과 인식을 통해 정치 방법론의 우수성에 대해 전혀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킹메이커> 영화 상 '서창대'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대선의 성패를 당락 짓는 결정적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이후로 현실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그사이에는 자신의 존재가치와 신의를 쌓았던 지도자와의 인간적인 갈등도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군주론>과 같은 책도 쓰지 않았다. 이쯤에서 <군주론>과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수많은 가설 중 또 하나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결국 현실에서 승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군주론>은 현실에서 극적인 승리를 창출해 본 경험이 풍성하지 않은 사람에 의해 쓰인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당사자이자 주어로 삼았던 건 피렌체 또는 넓게 보면 이탈리아였다. 그는 피렌체가 강성해지고 외세의 침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랐던 피렌체의 공무원이었다.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피렌체뿐 아니라 유럽, 전 세계 국가는 모두 자국의 이익에 맞게 강한 군사를 양성하고 외세의 영토를 침범하는 역사를 이미 만들었다. 그 장면이 현실이 되었던 건 20세기 제국주의의 범람이었다. 전쟁에 승리한 연합국은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군주론>과 같은 매뉴얼을 널리 알리거나 또는 그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를 아직 지어내지 못했다. <킹메이커>에서 선거를 승리를 이끈 '서창대'역시 이쪽저쪽의 논에 물을 한 번씩 끌어온 이후에는 잠적했다. 현실에서 실패한 이들은 <군주론>을 읽고 다시 승리를 위해 벌판으로 뛰어들 때 상대 진영에서 보이는 이들 역시 같은 심정으로 맞붙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상대는 언제나 마키아벨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