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탄생 기념일

E. H. 카의 비평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예술 세계가 가르치는 삶 이해하기

by Rootin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인으로서 그의 시대를 살았다. 그가 지은 [죄와 벌]이라는 유명한 소설은 50년이 지난 뒤에도 다른 국가에서도 읽히는 책이었다. E. H. 카는 영국인으로서 또 그의 시대를 살았다. 20세기의 눈으로 [죄와 벌]도 읽고, 도스토옙스키라는 사람에 대한 역사적 관점의 평전을 썼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지 200년이 지난 지금은 지금의 시대가 있다. 지금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도 읽을 수 있고, E. H. 카의 [도스토옙스키 평전]도 볼 수 있다. 과거든 현재든 인간에게는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 그중 지나간 과거에 대한 평가와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의 틀을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는 일단 기억과 관련이 있다. 많은 과거들 중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과거를 정립하고 싶어 하는 '현재'의 판단을 들춰서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의도가 담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에 대한 판단을 들추는 역사가의 책과 저서는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문장을 썼다. 모든 판단 속에 존재하는 일말의 진실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노력으로 본 것이다. 그 통찰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돌아보고 많은 메시지들의 근원을 이해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도스토옙스키 평전]의 경우에는 19세기 러시아와 당시 예술가인 도스토예프스키와의 대화를 시도한 셈이다. 러시아 역사를 통해 세상에 퍼져있는 어떤 인식의 틀을 탐구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원적으로는 20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인식을 전달했다. 그가 러시아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러시아 역사를 쓰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가능하다. 하필이면 그중에서 도스토옙스키라는 인물이 필요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정치와 사상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논평을 내놓은 이력이 있다. 돈을 받고 시사평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편의 소설 작품을 남겼다. E. H. 카는 그의 예술가적인 면모에 초첨을 가져간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서구권의 문학, 문화적 배경을 모두 토대로 삼는다. 도스토옙스키를 둘러싼 공식 전기, 편지 기록, 가족들의 증언들을 모두 역사 서술의 사료로 참고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평가나 판단, 추론, 합리적 의심은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딸이 남긴 기록은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하거나 러시아 주류 비평계의 합의점에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신감은 역사가로서 자의식이나 자존심을 과시하려는 것보다는 그가 생각하는 진실을 나름대로 관철시키려는 시도라고 보인다. 의견의 총합이 도달하는 것은 하나의 결론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구조 속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E. H. 카는 정치와 밀접한 삶을 살았고 직업도 관련이 깊었다. 도스토옙스키도 마찬가지로 급진적 단체에서 글을 쓰고 모임을 갖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하지만 평전에서 E. H. 카가 지키는 원칙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를 둘러싼 정치적 사건은 자세하게 다루되, 그의 이념이나 사상이 무엇이었고 왜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석을 달고 있지 않다. 일종의 침묵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 이목을 집중시킨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민이나 에피소드는 도스토옙스키의 삶에 어떤 지점에서 시작되었는지 파고든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예술 세계를 미리 경험하고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대사와 허구적 경험들을 중심으로 삼은 것과 같다. 궁극적으로는 도스토옙스키의 인생과 당시 러시아 역사는 예술 세계 속의 좋은 질문과 토론을 이끌어내는 최상의 재료로 쓰인다.


예술과 작품이 삶보다 앞서서 비중이 있다는 것은 뒤 따라오는 질문의 내용의 방향을 암시한다. E. H. 카의 경우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이미 하나의 역사적 진실이자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삼았다. [도스토옙스키 평전]을 통해서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시간 순서대로 다루고 있지만 관심은 다른데 가 있었다. [죄와 벌]이라는 가장 중요한 소설이 탄생한 때와 사건이 삶의 연대기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 이전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과 토대인 셈이고 그 이후는 확장되고 심화된 흐름이었다. 즉, 역사가로서 도스토옙스키의 구구절절한 일생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작품으로 남겨진 논의의 체계를 불러오는 것이 훨씬 중요한 임무로 여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제목은 [죄와 벌 비평]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평전]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말은 [죄와 벌]에 쏠려 있었지만 해당 주제는 당시 글을 쓰는 시점과 관련이 깊었다. 책이 발간된 1930년대에 만들어지는 당시의 판단에 보충과 완충 그리고 투사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50년 전에 각광을 받았던 러시아 예술가 도스토옙스키가 적절한 안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삶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예술가에게 생각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삶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E. H. 카는 1930년대 영국과 세계에 삶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기회로 도스토옙스키의 예술을 선생님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삶을 가르친다는 건 세상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미 이해한 의식이 틀이 [죄와 벌]과 같은 소설에 담겨 있었다. 작품 속 윤리에 대한 질문의 크기와 깊이는 매우 유용한 의제였다. 이 의제 설정은 결국 메시지다. 가르칠 수 있는 교실과 권한을 만들고 배움을 통해서 실천까지 이르게 하는 작업 과정을 펼친 것이다.


이로써 E. H. 카가 과거와 대화를 통해 얻어낸 결론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해진다. [죄와 벌]은 윤리에 대한 서구권 인식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얻어 낸 하나의 사건이었다. 인간의 이중성, 대립 안에서의 모순, 개인적 권리 추구의 허망한 결말, 고난과 속죄의 과정 등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윤리 이야기였다. 이 소설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인간 윤리에 대한 화두를 꺼내는 일이고, 소설 작가인 도스토옙스키를 포함하는 건 작품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실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건 잘 모르는, 관심이 없는, 훈련을 통해 성장이 필요한 대상이 있다는 말로 통한다. 즉, 윤리를 하나의 시선으로 만 제단 하는 경향,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판단들에 대한 항변으로 읽어낼 수 있다.


E. H. 카는 윤리적 아이디어의 제시를 위해 역사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19세기 러시아 정치적 움직임, 문학적 사조, 서구 문학과 러시아 정신사와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엄밀하고 정밀하게 자료를 분석하고 취사선택함으로 지금도 읽힐 수 있는 책을 만들었다. 이로써 가르침의 장소, 시간,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연장했다. 1930년대에 심고 싶었던 인간관계 속 윤리 문제는 2022년에도 유효한 화제로 넘어왔다. 1866년 기고된 [죄와 벌]은 역사가를 통해 삶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1821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도스토옙스키는 [도스토옙스키 평전]에 의해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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