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행복을 찾는 연습 #1

by Rootin

최근 몇 년 간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경쟁력이 부족한, 시장성이 없는 대학생이라고 정의했다.

남들보다 좋은 스펙은커녕 시작부터 인문대 학부생이라니.. 게다가 다룰 줄 아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없고,

자격증 하나 없는 사람이랑 누가 일하고 싶어 할까? 그때부터 불안은 나의 동력이었다.


시작이 불안이다 보니, 목표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열정적으로 아주 열심히 사는 것이었다.

꿈을 위해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해서 찾아가는 것도 아닌, 성실함이 목표인 인생이었다.

그냥 아주 열심히 살면 뭐라도 하는 거니까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조직의 리더나 주변 동료들이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네가 없으면 안 돼."

듣기에는 꽤 좋은 말로 들린다. 가치에 대한 인정과 신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의미로 바꿀 수도 있는 말이었다.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생한 덕분에 잘 유지돼.' 또는

'다른 사람이 있어도 괜찮긴 한데 걔 중에 네가 좋은 편에 속하지'

그렇다. 나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다른 성실한 친구 또 구해도 나쁘지 않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성실함과 조직원에게 신뢰를 인정받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뿐더러 가치가 없지도 않다.

문제는 한바탕 하고 나서 집에 왔을 때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행복하지 않은 날이 축적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야 학교나 가정에서 성실함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성실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

'뭐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누가 나에게 성실함과 인정받기를 통제한 거야?'

범인은 나의 강박적인 불안과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열심히'였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불안을 덮는 무엇인가가 아닌 용기이다.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혹사시키거나 도망가거나 두려움 너머에 있는 더욱 행복한 세상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미디어와 온라인 세상은 청년들 취업이 어렵다고 앵무새처럼 떠들고 다닌다.

나는 취업이 어렵다고 느끼기도 전에 취업이 어렵다고 학습했다.

한 번도 이력서를 써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력서를 제출하면 불합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좋은, 괜찮은, 합격률이 높은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뉴스나 미디어나 학교 관계자들 중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이런 불안감은 늘 내 곁에 머물렀고, 그 불안감이 편안하다고 느꼈다.

많이 불안할수록 나는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는지 알게 된 것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사는 게 재미 없어졌을 때였다.

이제 취업을 눈 앞에 두고서 그토록 두려워했던 입사에 성공하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불안했다.

이 불안의 끝은 취업이고 그 매듭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막상 일 비슷한 것을 했는데 왜 계속 불안하고 열심히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맴돌았다.

일을 하면서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환이 필요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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