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는 연습 #2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날들을 걷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배울 점도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것일까?'
불확실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건너는 자들은 확실한 목표가 있어도 목적지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
불확실함은 예측할 수 없음을 뜻하고 불안함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버티고 일어서야 할까?
삶이 전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최신식 IT기술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는 한 인간을 왜소하게 만든다.
강대국이나 기술에 능숙한 자들을 따라가기에는 벅차다 못해 다른 세계라고 느껴진다.
나에게는 기술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최신 AI 기능이 탑재된 기계도 없고,
기술과 기계를 소유한 조직에 속해있지도 않다.
결국 나는 맨몸으로 새로운 시대에 던져진다.
"자, 젊은이. 뭐든 해봐!"
근현대식 교육을 받은 또래들은 대부분 기존의 모더니즘 문화와 사회적 지식을 체험하고 경험하며 자라났다.
아주 특출 난 교육을 받지 않는 이상 새로운 세계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1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없는 이상, 불안은 당연히 곁에 머무르게 된다.
최근 '자존감'이 빈번하게 언급되고 의미 있어진 계기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 덕분인 듯하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이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높은 자존감을 지닌다는 것은 자신이 삶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며, 이는 곧 앞서 말한 대로 자신이 능력 있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자신이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잘못된 것은 이런저런 문제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 개발과 그와 함께 앞서 나간 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할 때이다.
인간의 능력, 다시 말해 지금까지 인간이 배워오고 경험한 능력이 쓸모 있고 가치 있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은 자신 있게 확신할 수 있을까?
적어도 자기 자신 때문에 뒤쳐지고 경쟁에서 낙오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 다행일 것이다.
100여 년 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이 있었다.
1917년, 무의미한 살상과 희생이 수놓은 유럽의 벌판에 섰던 각 여러 국가에서 모인 군인 청년들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두고 전쟁에 참가했다.
어렵고 무서운 임무를 용감하게 수행해내면 국가에서는 훈장을 발급해주는 모양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옆에 있는 친구, 동료가 죽어나가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러한 명예쯤은
와인 한 병보다 못하다고 느낀 남자가 있었다.
영화 <1917>의 주인공 '스코필드'는 총을 잘 다루는 명사수가 아니었다.
지리를 잘 파악하여 목표지점을 한눈에 감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전쟁에서 위대한 도전을 달성하여 영원한 존재가 되고 싶은 영웅심리도 없었다.
1차 대전 당시 공장에서 새로 개발된 무기와 기술에 해박한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러한 그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가 내려졌다.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질러서 아군의 지휘관에게 서신을 전하라!"
전쟁에 참여한 보병은 죽음에 가까운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스코필드의 미션은 한 개인에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가 원했던 임무도 아니고, 완료 시 받는 훈장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는 총알이 날아오는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것일까?'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스코필드는 온갖 위협과 목숨을 잃을 위기에 직면한다.
미션을 완수하는 목표점에 가까워질수록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그는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움직였다.
자신의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믿음은 그 어느 것도 거스르지 않는다.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확신이 생기며 불안한 마음과 불확실한 미래를 걸어 나갈 수 있다.
자신을 살게 해주는 것은 임무를 완료했다는 사실도 아니고, 훈장도 아니며, 상관의 인정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도록 하는 건 오직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100여 년 전, 유럽의 벌판에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와 그 동맹국가들의 청년들은
아무런 교훈과 이유 없이 전쟁에 희생당했다.
2차 세계대전까지 치른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쓰고 배웠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전쟁터 같은 불안함을 견뎌야 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부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무기와 훈장이 없는 자신을 탓하며 아파하지 않기를 빈다.
그리고 한 번 더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에 용기를 내길 응원한다.
그 용기가 자신을 살도록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