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과 나머지

행복을 찾는 연습 #3

by Rootin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는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옆 친구 학생들과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시도한 행동은 쪽지 쓰기였다.

핸드폰을 수거해서 조용한 교실에서 감독관 선생님의 눈을 피해야 했다.

쪽지는 부담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아날로그 차원에서 SNS의 기능을 할 수 있었다.

종이는 대화창이었고, 각자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작성하여 주고받았다.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다.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부터

작고 사소한 감정의 표현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인생의 목표까지 나눌 수 있었다.


나의 관심사는 인생이었다.

지금 여기서 하는 공부는 나에게 어떠한 의미이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과 기대효과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시간 투자 대비 효율성이 낮았고, 정말로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충분한 스스로의 근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애꿎은 인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만약 야간 자율학습시간이 없었다면,

스스로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운동을 하거나 웹툰을 봤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사유의 확장이라고 회상해본다.


알고 싶었던 질문의 답은 1년이 넘도록 풀 수 없었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질문의 크기가 너무 컸다.

두 번째로, 알려고 했을 뿐 알아내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알 수는 있었지만 다른 경로의 방법을 택하며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을 회피했다.

어쩌면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질문을 핑계로 그냥 주어진 몫을 다하지 않은 나날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묻기보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인생에 대해서 다루려고 했다.

10년, 20년 뒤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탐색해보고 싶었다면 관련된 활동이나 책에 관심을 가질 법했으나 그저 종이 위에만 끄적였을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질책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을 잘 살아내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 가졌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에 간단하게 대처하는 용기를 내볼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건강한 삶과 나머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느낀다.

건강하게 지내는 삶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삶이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 느끼다 보면

지금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을 부드럽게 밀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 건강이란 매일 밥을 잘 먹을 수 있고,

걱정 없이 집에서 잠들 수 있고,

문제없이 숨을 잘 쉴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한 삶은 오히려 복잡한 문제들을 쉽게 풀어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매일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없는 상태를 뜻한다.

돈이 궁한 상태에서도 끼니를 줄이기보다는 다른 부차적인 요소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걱정 없이 집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은 가끔씩 듣게 되는 안 좋은 소식을 제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하루 동안 좋았던 일, 안 좋았던 일 모두 있었지만 일단 잘 마무리를 했다면 잠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심장에 혈액이 공급되어 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안정된 상태에서 숨을 쉬어야 한다.

문제없이 숨을 쉬는 건 너무 벅찬 상태도 아닌 너무 안일한 상태도 아닌 편한 상태이다.


건강한 상태가 아닌 나머지라면

수행해야 하는 과업, 유지해야 하는 인간관계, 미래를 위한 투자 등의 것이 속한다.

나에게 과업은 과업일 뿐이다.

나에게 인간관계는 인간관계일뿐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투자일 뿐이다.

건강한 상태에서 행하는 과업, 인간관계, 투자의 성공은 운에 달려 있을 뿐이다.

성공에 필요한 노력과 여러 가지 요소들은 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위의 나머지가 건강한 삶을 위협한다면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나머지다.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삶을 건강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은 요소들이 건강하지 않은 삶으로 이끌 때가 돼서 나를 돌아볼 때도 있다.

건강하지 않게 지냈다는 것은 나중에 깨달으면서 다른 대체물로 위로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챙기고 싶은 하루 일과를 꾸릴 수 있을 때까지 불편한 감정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건강에 방해가 되는 일을 잠시 멈추는 것이었다.

분리된 공간에서 편안한 상태로서 나를 돌보는 것이다.

그 와중에 덜 하고 싶었던 일의 비중을 줄이는 선택을 하고,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의 비중을 늘리는 선택을 한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취업의 문턱을 밟는 순간 멈춰야겠다고 느낀 건 건강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 내에 나를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다시금 나의 건강과 그 나머지의 우선순위를 알아보고자 했다.


일 년 넘게 찾지 못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질문은 이제 궁금하지 않다.

나의 인생은 내가 용기를 낸 만큼만 걸을 수 있고, 길을 낼 뿐이다.

나의 건강한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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