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폰잡고, 벽을 넘어서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회고하며 바라보는 미래의 '소통'

by Rootin

2022년의 오늘, 인간에게는 다양한 화면과 송수신기가 곁에 있다. 한 명당 한 개 이상의 디지털 기기와 출력장치들이 하루하루를 함께 한다. 단순히 시각적 감상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활동, 사회활동, 등 모든 생활의 시작과 끝이 모두 담겨 있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를 넘어선 관습이자 문화가 되었다. 대다수의 집단과 개인들이 디지털기기와 매체를 활용한 삶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는 양식이 되었다. 예술은 예로부터 인간의 당연한 행동과 의식과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호기심을 발휘해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즉, 지금 시대의 예술은 너무나 당연해진 기계와 기술을 접목한 문명을 관찰하고 그 특이점에 주목하는 시각을 담는 그릇이 된다. 백남준이라는 분명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기술의 발전과 그 속도를 놓치지 않은 예술가였다. 기술이 없던 시기에 발전하고 쌓아온 예술의 내용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접목한 시각 제공자이기도 했다. NFT, 메타버스, 데이터, 플랫폼 등을 만난 현대인은 백남준의 행보에 다시 한번 관심을 기울이며 현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음악에서 출발한다. 독일에서 유학을 했던 백남준은 음악을 공부했다. 전통적인 음악은 고루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음악을 연주하기를 원했다. 들어보지 못했던 음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에 '존 케이지'를 만난다. 존 케이지는 침묵이나 소음까지도 연주의 일부라고 생각한 예술가였다. 이것은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백남준이 원했던 차별성 있는 음악이었다. '존 케이지'가 처음 시도할 때 만 해도 실험적이었던 방식에서 백남준은 또 다른 길을 모색했다. 들리는 음뿐 아니라 행위까지도 음악으로 포함시키는 일이었다. 무대 위에서 바이올린을 부수는 행위,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기, 머리로 피아노를 치는 기행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영역에 발을 내딛는 '아방가르드'는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의 근본이었다.


'아방가르드'를 추구한 백남준의 시작이 담긴 전시회는 독일에서 열렸다.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예술 시도는 <음악전시회>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변할 수도 있는 그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누군가의 개입이나 환경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고 결정될 수 있는 모호한 것 자체였다. 이후에 그의 시그니처가 되는 텔레비전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무엇이 나중에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결정 내리지 않는 태도는 그가 예술을 하는 이유나 작업을 지속하는 동기와도 맞닿아 있었다. 관객이 다가가서 직접 건드리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작품도 존재했다. 관객들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을 일부러 열어둔 것이다.


무엇으로 향해야 하는 것보다 예술로 이끄는 방법들을 고민한 결과였다. 그가 지향해야 하는 세상에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을 담기보다 예술이 번지고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의도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것들 속에서 공통적인 점들을 연결해야 했다. 상호 간 접촉은 소통에 의해 이뤄졌다. 각기 다른 것들이 만나서 뜻밖의 조화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고정적인 틀은 부수고자 하는 판단보다는 서로 다른 것들과의 조우를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형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예시로 삼은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과 닮아 있었다. 멈춘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생각을 흘려보내고 이동시키는 방법이 있다.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는 텔레비전과 유사하게 실제로는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음을 상징할 수 있다.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하고 보급되는 시기에는 일방적 매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명 '바보상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가진 속성에 대해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여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했다. 텔레비전이야 말로 관객들을 수동에서 참여로 이끄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으로 크게 3가지 유형이 나뉜다. 첫 번째는 수상기 이미지가 그 내부 회로 변경에 의해 특수한 시각적 이미지를 얻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여 더 현란한 이미지를 얻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폐쇄회로를 설치해서 카메라가 포착한 현장이 동시에 모니터에 거울처럼 나타나는 이미지를 얻는 방식이다.


자석TV.PNG <자석TV> 백남준 1965 조각설치, TV
달은 가장 오래된 TV.jpg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 1965 조각설치, TV


내부 회로 변경을 통해 이미지를 얻는 방식은 그의 활동 초기부터 사용했다. 1963년 부퍼탈 전시회부터 1960년대 말까지 주로 나타났다. '자석 TV'는 1965년 미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선보인 작품이었다. 관객이 직접 자석을 들고 TV에 효과를 줄 수 있었다.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추상 이미지의 패턴이 생겨난다. 가장 직관적이고 그 의미가 뚜렷하게 전달되는 참여형 전시였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조금 더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이다. 12개의 모니터를 사용한다. 각각의 텔레비전은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절기에 따른 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모습이 모두 한눈에 보인다. 이것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시각화하려는 의도가 표현된 셈이다. 인류 문명은 오래전부터 눈에 비친 달을 12개의 정도의 모양으로 분류하고 이름을 지었다. 주기에 따라서 같은 모양이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다시 차오르는 보름달은 영원함과 사라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다다익선.jpg <다다익선> 백남준 1988 조각설치, TV


비디오테이프 첨가류의 작품들은 비디오 촬영기와 비디오 합성기로 제작된 테이프를 말한다. VTR, 즉 휴대용 카메라와 비디오 영상 제작기인 신디사이저의 발명은 새로운 효과를 가져왔다. 영상의 왜곡과 변형이 가능해진 것이다. 백남준은 직접 신디사이저를 만들고 사용하기도 하면서 무한한 이미지를 창출했다. <다다익선>이라는 작품은 1,003개의 텔레비전을 반복하고 병치시킨다. 작품을 만난 관객은 시선과 사고함으로 작품에 참여한다. 세 개의 테이프를 동시에 시차를 두고 방영을 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모니터로 나누어진다는 점에서는 시각의 미시화가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대의 모니터 속에 또 다른 거대한 이미지가 생긴다는 차원에서는 시각의 거시화가 일어난다. 시각은 동시다발적으로 작아졌다가 커지는 화면들을 감상하면서 적극성을 띌 수밖에 없다.


글로벌그루브.jpg <글로벌 그루브> 1973 백남준 비디오


<글로벌 그루브>는 여러 영상들을 혼합하여 재생하는 비디오테이프 첨가류 작품이다. 무용수들이 등장해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어서는 복싱 선수, 일본 무용, 광고 방송 들이 삽입된다. 그리고 '존 케이지', '앨런 긴즈버그'등 당대 현대 예술에 영향을 끼치고 백남준 스스로에게도 영감을 준 작가들의 모습도 나타난다. 개개의 연속된 장면들이 배치되는 것 자체를 작품의 맥락으로 삼았다. 시간 순서에 따라 등장했다가 퇴장하지만, 하나의 흐름이 있는 내러티브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가정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의 습관을 모방하려고 한 것이었다. 정보가 그만큼 다양하고 분별되지 않은 상태로 과잉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려고 했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대표성 때문이다. <글로벌 그루브>는 비디오테이프 예술의 고전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후 비디오테이프들이 비슷한 문법을 가지고 나타난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TV부처.PNG <TV 부처> 백남준 1974 조각설치, TV


마지막으로 폐쇄회로 설치 방식이 있다. 거울 구조처럼 텔레비전이 피사체를 반영하는 구조를 가진 작업이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이 나르시시즘적인 상황을 만난다고 생각했다. 대상화된 자신, 실제의 나로부터 분리된 나의 분신을 만났을 때 일으키는 반응을 보고자 한 방법이다. <TV부처>는 이러한 의도가 잘 드러난 대표적인 작품이다. 동양의 종교와 서양의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것이다. 부처는 명상과 종교의 상징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은 20세기 기술의 상징이다. 이 둘이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서로가 갖는 이질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부처를 마주하고 앉은 텔레비전은 스승을 대하듯 묻는다. 텔레비전을 포함한 기술문화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건넨다. 부처는 대답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명상을 하는 중이다. 한 편 텔레비전 속에는 부처의 모습이 담긴다. 거울을 끝없이 바라보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탐닉하고 있다. 이 둘은 평행선처럼 서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며 서로를 가두고 있다.


위성예술은 세 유형과 더불어 백남준이라는 예술가의 가친관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소통을 중요시했던 백남준에게 있어서 실제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생방송은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전 지구에 중계하는 위성 생방송은 문화적인 장벽을 허물고 범지구적 소통을 실현할 수 있는 성취였다. 지구의 한편에서는 텔레비전이 가진 매체의 한계성과 언론의 부패를 지적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실제로 여론을 조작하기에 유용한 수단으로 쓰인 것도 사실이었다.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다. 여론 조작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통해 소통의 경지로 나아감을 표현했다. <바이바이 키플링>이라는 작품 역시 "동양과 서양은 결코 만날 수 없다."라는 단절적 선언을 넘어서는 시도였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동서양이 만나고 또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와 지구촌의 형성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향이 될 수 있음을 예고했다.


손에손잡고.PNG <손에 손잡고> 1988 백남준 비디오


<손에 손잡고>에서는 '예술과 운동의 칵테일'이라는 주제를 삼았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의 극복은 예술이나 운동과 같은 비정치적인 교류에 의해서 만 해소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백남준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내내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기술을 통해 소통의 장이 넓어지고 그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던 백남준의 예측이 모두 들어맞지는 않았다. 텔레비전 이후 인터넷과 데이터를 통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왔지만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아직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가 살아서 활동할 수 있었다면 이러한 비관적 관망 속에서도 새로운 긍정적 실천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은 풍자적이면서 심각하지만 익살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었다. 어둡고 차가웠던 냉전 시기에도 화합과 소통을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지금 역시도 인간을 위한 기술과 예술을 널리 전하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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