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뒤바뀐 남자

<더 배트맨>과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로 도시 공동체 상상하기

by Rootin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역할을 가진 인물은 없다. 누구나 자라면서 영향받은 다양한 배경과 경험에 따라 감정을 가지고 선택하기도 하고 중간에 바뀌기도 한다. 사람들은 남에게는 물론이고 스스로에 대해서 단순하고 명확하게 파악되기를 원한다.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덜한 경우에는 명쾌한 결론이 담긴 다수의 견해에 쏠리기도 한다. 의도를 하든, 사회적 압력에 따르든 한 번쯤은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배트맨의 경우에는 아주 어린 시절, 범죄에 의해 부모를 잃은 슬픔에서부터 모든 삶의 기준이 만들어졌다. 범죄와 관련된 악당들을 응징하고 죗값을 치르게 만드는 심판자가 복수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얻는 방식을 만들었다. 그것이 곧 본연의 역할이자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결심하여 탄생시킨 또 다른 자아였다.


<더 배트맨>은 물론이고 또 다른 배트맨 시리즈에서 배경이 되는 '고담'이라는 도시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뉴욕에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그로 인한 주민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배트맨의 역할이 옹호를 받고 납득이 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오프라인에서 복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범죄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고도화된 기술 범죄가 급증하고는 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한 묘사보다도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선정적인 사회 뉴스들이 늘 이들을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이 배트맨이 저지하는 범죄에 공감을 사게 만든다.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인구는 밀집이 되어 있고 넓은 공간 속에서 어울리지 못해 고독이 가중되는 스트레스가 늘 존재한다. 도시의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절한 순간에 위기를 극복하게 만들고 사회적 능력을 향상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공포를 더 쉽게 느끼고 통제력을 잃어간다는 두려움을 가지기도 한다.


실질적인 위협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스트레스가 있는 반면 과도하게 사람을 자극하는 측면도 있다. 조절 능력을 상실했을 때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과 부담이 생긴다. 바로 이러한 위협을 상징하는 것이 비슷한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배트맨과 그의 숙적인 리들러라는 캐릭터이다. 도시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출신과 배경이 다양하기에 격차가 큰 부류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생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타인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 것인지 매 순간 답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의 욕구대로만 행동했다가는 타인의 욕구를 살피지 않은 이유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배척'이라는 변수가 생기면 사회적 스트레스는 극도화 된다. 이러한 강렬한 경험에 연루되거나 뜻하지 않게 휘말리면 영웅이나 악당이 되는 데 초기 바탕이 될 만큼의 강한 기억이 새겨진다.


배트맨이나 리들러나 모두 폭력을 일삼고 전선에 나서서 누군가와 갈등과 대립을 심하게 겪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온건한 성향보다 감정과 행동이 격해지는 때에는 물리적 힘을 사용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기도 한다. 더 이상 말이나 대화로 타협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 타인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제도를 통해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자신감은 무모함으로 바뀐다. 배트맨과 리들러는 모두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없이 자랐지만, 한쪽은 큰 재산을 물려받아 부유한 상류층으로 컸고 다른 한쪽은 열악한 고아원에서 성장했다. 영화 속 악당이 우주 외계인이 아니라 도시에서 태어난 가난한 고아원 출신이라는 설정은 사회적 스트레스와 강한 연관성을 갖게 된다.


도시는 도시가 아닌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게 크게 드러난다. 이 격차는 생활비, 임대 비용, 부동산 시장, 아파트 구매력, 교통편과 관련한 어려움이 사회망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단순하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사회의 조직과 시장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특정 계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떠밀려 가는 처지에 있게 되었을 때는 누군가와의 대립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수준으로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과 기관을 만나고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 수단과 방법이 마비가 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또는 이러한 어려움들이 사회와 무관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스트레스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번지면 적응해버리는 악화 현상도 나타난다.


도시인들은 제도와 정치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서 개인들이 스트레스를 혼자서 감당하지 않도록 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밀집성, 익명성, 좁은 공간에서의 사회적 갈등과 불행,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는 범죄와 폭력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수 있다. 정신이 어려움을 겪을 때는 언제든지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실질적인 위험이나 범죄 빈도와 상관없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진다는 압박감 자체가 더욱 도시인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은 도시가 크면 클수록 작아져서 관여하고 개입할 수 있는 점이 적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사회적으로 배척당하지 않고 연결된, 소외당하지 않고 공동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넓지만 그 안에서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긴장에 대한 해소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곁에 많을수록 극단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더 배트맨>이 모델로 참고하고 있는 뉴욕은 교역으로 성장한 도시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요충지로 제조업과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그중 이주민과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공간은 처음부터 문제였다. 환풍구가 없는 좁은 공간에서 쇠락한 빈민굴이 도시의 성장과 팽창의 시기였던 19세기부터 함께했다. 반면에 20세기를 맞이하면서 부유층의 공간인 고층건물과 마천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교회나 공공건물의 높이는 새로운 흐름에 낮은 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뉴욕의 고층건물이 성장한 방식은 사람보다 경제적 효과에 맞춰져 있었다. 보험회사, 신문사 등의 고층 건물은 대부분 업무를 활용하기 위한 본사 건물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업무공간의 부족 문제 해결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와 판매량 증가를 위한 홍보효과를 건축으로 활용한 셈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빈민층의 주거 문제는 고층건물이 지어지는 흐름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뉴욕의 성장 배경이 도시의 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조건을 갖추었기에 이에 대한 범죄와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스로 혼자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을 때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거나 급진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바다 건너편에는 런던에서 '셜록홈스'라는 탐정소설이 새로운 흥행 신화를 만들고 있었다. '셜록홈스'라는 가상의 인물이 소개될 때 만해도 'detective' 즉 탐정은 영국인들에게도 낯선 개념이었다. 이러한 인물과 이야기를 쓴 '아서 코난 도일'이라는 작가는 범죄자를 미화하지 않고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능력으로 범죄를 해결하는 것을 추구했다. 모범적으로 악을 응징하는 방식은 영국의 중산층 지식인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시기 역시 탐정소설이 많이 읽히고 고층건물과 도시의 폐해가 수면 위로 잔뜩 올라왔던 1930년대였다. 도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그 속에 있는 공동체와 도덕적인 구성원들은 타협을 원하고 범죄를 방치하지 않으리라는 염원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이번 <더 배트맨>에서 드러난 배트맨과 리들러의 대립은 단순히 개인들의 악감정의 대결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시 전체 내에서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생각과 두려움을 조절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유로 읽을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배트맨이 완성된 히어로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역할과 정체에 대해서 의심하고 과거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지점이다. 결국 절망적인 순간을 희망의 행동으로 넘기는 데 성공하지만 또 다른 욕망과 범죄가 침투할 것이라는 위협이 말미에 소개된다. 희망을 가져도 의미 없을 것이라는 편에 속한 '캣우먼' 캐릭터는 도시를 떠나버린다. 배트맨은 만연한 부패 세력과 무너진 공공 지도자들이 있더라도 새로운 세대에게는 또 다른 희망을 걸어보는 것으로 마음을 먹는다. 그것이 다가 아니고 타협하고 희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과거와 화해를 하며 발을 내딛는 것이다.


배트맨은 나쁜, 나쁜 사람들, 나빠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복수 대신 다른 대안을 발견한다. 더 확장성 이 있고 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진다. 누군가를 향한 복수를 성사시키려는 마음과 버려진 고아가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애쓰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와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겪은 불행한 사건에 원인을 찾거나 생각을 가두지 않고 스스로 받아들이며 도시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다. 도시로 인해서 생긴 스트레스는 통제할 수 없을지 몰라도 고통과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결정은 개인 스스로에게 달려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도 누군가는 테러를 조직할 수 있고,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희망을 찾기 위해 밤이 아닌 아침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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