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게 아니라 어려운

미디어 공론장과 BBC 100년의 신화, 공영방송의 모델 BBC를 읽다

by Rootin

대중 미디어가 탄생한 건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약 100년의 시간 동안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고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한 미디어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때로는 상업주의에 의해 광고와 기업에 의존하고 때로는 정부와 권력과 함께 붙어 지내기도 했다. 완벽하게 기업의 경제적 논리나 국가의 이익을 벗어난 미디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BBC라는 영국의 공영방송 모델은 무결점은 아니지만, 대중 미디어의 역사 속에 가장 상징적으로 공공서비스의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받는다. BBC도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면모도 있고, 국가에 이바지하거나 정치를 대변하는 시기도 있었다. 지난 100년이 대중 미디어가 실험된 역사의 첫 시작이라고 본다면 BBC의 아쉬웠던 점을 감안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살펴볼만한 점을 갖추고 있다. 영국을 포함한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한 이벤트나 문화적 사건을 공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의 시초로서 무엇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 무엇이 성공적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BBC의 초석을 다진 존 리스는 기독교 이념을 반영하고 시민에게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는 사명이 있었다. 1922년부터 1938년까지 BBC와 함께한 존 리스는 33세의 나이로 국장으로 입사했다. 지금까지도 유지한 BBC의 뼈대라고 볼 수 있는 원칙의 상당 부분에 그가 관여했다. 상업적 이윤논리에서 벗어나서 교육적인 방송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 바로 핵심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르치려 들거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자세로 방송을 만드는 우월감을 보이는 태도는 지적되어 왔다. 그럼에도 자본과 국가라는 가장 큰 권력의 직접적인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독립성을 지킬 수 있었다. 공공서비스라는 명분으로 오락적인 성격은 최소화하고 교양 프로그램을 고집했다. 1927년 영국방송협회로 전환되는 시기에 존 리스가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꼭 뉴스와 교육을 우선시하며 부유하거나 가난한 계층이 상관없이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미디어를 강조했다.


강경한 입장을 통해 국가가 프로그램 제작이나 보도 내용을 방해하지 못하는 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BBC가 늘 독립성을 깨뜨리지 않은 사례들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시도보다는 BBC 그 자체로서도 악습을 유지한 경우도 있었다. 설립 초기에는 전쟁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해군 제독이 부사장 자리에 앉아 군대식 조직문화를 심기도 했다. 영국에는 처음부터 BBC 만 있던 것이 아니라 맨체스터, 버밍햄, 뉴캐슬, 카디프, 글래스고, 애버딘, 본머스, 벨파스트 등의 지역 방송 사업이 존재했다. 초창기에는 런던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만 주도적으로 방송을 운영했지만, 결국에는 중앙 독점 방식으로 지역방송을 폐쇄했다. 이와 다르게 독일이나 스웨덴은 주와 지역별로 방송사가 설립되고 다원적으로 존재하는 방향이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BBC 간 오고 갈 수 있는 경로가 더욱 간단해지는 빌미가 생긴 지점도 있다.


결국 1980년대에 들어 정부는 노골적으로 프로그램의 방영 문제를 놓고 BBC와 논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정치 리더였던 대처 수상은 BBC가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BBC가 수신료 인상을 노리는 것에 비판했다. 때에 따라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정권을 교체하고 유지하고 했지만 늘 정부와 기성 권력에게서 독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역사가 있다. 각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실만을 전달하는 입장은 누군가가 보기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는 방향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BBC가 특별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배경에는 영국 국왕의 특허장이 있다. 이 특허장을 받은 법인은 손안에 꼽힌다. 입헌정치 기초를 만든 대헌장, 아시아 식민지 경영 허가받은 동인도회사, 그리고 잉글랜드 은행 정도다. 특허장으로 운영되는 제도는 시민이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강력한 힘을 만들었다.


시대에 맞게 초창기의 설립 원칙을 잘 해석한 경우, 방송의 독점보다는 공생을 택하고 중앙 지향보다는 지방 다원을 추구하고 엘리트 성향보다는 시민참여를 넓혔다. 때와 사람의 변화를 인식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민감하게 수용한 결과였다. 그 결과로 수많은 뉴미디어의 등장과 미국의 플랫폼 비즈니스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고 품위 있는 모델을 꼽을 때 BBC가 언급된다. TV 채널, 라디오 채널, 지역 및 로컬 라디오, 쌍방향 서비스 및 온라인 서비스는 현재도 BBC가 지금의 시청자의 부응에 답하고 있는 점을 보여준다. 국가의 통제와 상업적 선정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비결에는 영국 시민이 지불하는 수신료에 있다. 따로 광고를 틀지 않아도 시민들이 직접 낸 수신료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를 생산하는 프로듀서 집단이 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경영에 개입하는 위원들은 시민들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구성된다. 경영의 논리보다 생산자의 독립성이 보장된 BBC는 내부 경쟁을 통해 콘텐츠의 질적인 면을 신경 쓸 수 있다.


BBC에는 앞서 언급한 중앙집중형 방송이나 정치에 영향을 받는 위기의 때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실패가 아닌 가능성으로 치부된 건 BBC가 100년간 보여준 흐름으로부터다. BBC도 언젠간 상업주의나 기술과 기업과 손을 잡고 또 다른 길을 모색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점점 더 많은 미디어의 변화나 시도에 있어 같은 자리에 만 머물기에는 새로운 시청자의 요구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 지켜낸 평등하게 시청할 수 있는 미디어라는 가치는 앞으로 바뀔 요구에 있어서도 결코 후진적인 모습으로 비치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과학, 교육, 인문 등 다양한 차원에서 교육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방향은 충분히 기억할 만한 역사다. 그 과정에서 생겼던 부작용이나 폐해 역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고쳐지고 반성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지점이다. 방송은 원래 나쁜 게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는 BBC의 10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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