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와 융 심리학 분석으로 무의식 들여다보기
심리적 문제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실질적인 삶의 영역과 연관이 있다. 흔히 언급되는 우울증이나 심각한 질병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본능과 무의식을 받아들이는 데 심리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은 수많은 검증을 통해 일상 도처에 깔린 지 꽤 되었다. 교육의 영역에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태도라든지, 대중문화 작품에서 인물의 심리묘사에 따라 관객이 느끼고 반응하는 데 깨달음과 메시지를 담는다든지, 직업 세계에서 각자에게 맞는 성향과 유형에 따라 여정을 준비한다든지. 결국 자기를 이해하고 발달하지 않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선택이 된다. 기예모르 델 토르 감독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는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재능을 가진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소홀히 했을 때 추락하는 아찔한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기초 지식과 해설을 가능하게 하는 융 심리학을 통해 주인공에게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스탠턴 칼라일'에 대한 사전 정보는 스스로 너무 미워한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 안에 부친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끔찍한 일을 벌이고 과거와 단절하고자 떠나서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축제를 운영하는 마을이다. 새롭게 일을 배우고 적응하는 찰나에 자신이 호객과 사람의 마음을 속이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주변 관계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그는 그곳에서 만난 연인과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에서는 많은 돈을 받고 상류층에게 마음을 읽는 묘기를 부리는 쇼를 펼치는 일로 성공을 거둔다.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유독 '스탠턴 칼라일'이라는 사람 자체에게 관심을 보인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릴리스 리터'가 제안하는 일을 수락하면서 사건이 생겨난다.
이미 많은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의 상당수는 심리학과 캐릭터의 멋진 조화를 차용해왔다.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생하던 주인공이 개인의 선택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여 극복하거나 결정적인 엔딩으로 이동하게 되는 패턴은 익숙한 흐름으로 관객에게 인식되어 있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순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해당 테마와 주제 자체를 뒤집어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정말로 무의식이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인간이 있다면 어디에서 미끄러지는지, 나이를 먹은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서는 왜 공허함과 미신을 믿는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욕망에 휘둘리는 청년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20세기 이후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였던 칼 구스타프 융은 자신의 경험에서 발견된 기억과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면서 얻은 통찰을 합하여 주요 개념을 창설했다.
융의 유년시절에도 부모와 관련된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병에 걸렸을 때 겪어야 했던 무력감, 소년 시절이 되어 깨달은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연민, 본인 스스로 겪어야 했던 청소년기의 우울한 시절이 있었다. 학생 시절 자연과학을 배우고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과 생계의 문제로 의학을 학습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현실이 있었다. 더군다나 남에게 살갑게 영업할 만한 성격이 아닌 탓에 어쩔 수없이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처음부터 정신의학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관심분야가 생기고 그 안에서 호기심을 키워가다 보니 프로이트도 만나고 좋은 연구의 기회도 만들게 되었다. 그가 적은 자신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렸을 때의 경험, 외부세계와의 적응 문제, 자기를 발견하고 이해하여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은 그가 쌓은 심리학의 본질적 개념이었다.
융의 심리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는 인간은 이미 전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분과 부분이 아닌 하나의 전체성을 일관되고 조화롭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체성은 '퍼스낼리티'라고 부르는 개개인의 '자아'와 관련이 있다. 영화 캐릭터 상으로 따지면 겉으로 드러난 모습 외에도 인물이 보이는 행동, 언어, 표정, 습관, 제스처 밑에 숨겨진 하나의 캐릭터로 볼 수 있다. 사건의 발단에 의해서 보이는 주인공의 반응과 대응은 그 인물이 어떤 무의식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시간을 가지고 더 깊게 영화를 탐구해보고 싶은 경우에는 겉으로 드러난 캐릭터의 면모, 어렸을 때 경험했을 것 같은 부모와의 경험, 밖으로 내비치지 않은 동물적인 본능, 그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명령 체제와 같은 것을 분석한다.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스탠턴 칼라일'의 돈벌이 역시 이러한 특징을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하여 상대방을 홀리는 언변으로 '사람을 잘 안다'는 인상을 심는 것이다. 그 정확성과 실제와 일치할 확률보다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취약한 점을 공략하여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악몽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는지를 원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사회에서 적응을 해야 하고 어린 시절 겪은 부모와의 갈등이나 콤플렉스에서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또 대다수의 중년들은 이미 이룩한 사회적 적응과 성공 앞에서 가족으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이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혼란을 겪는다. '스탠턴 칼라일'의 영업 비밀은 콤플렉스를 이해하거나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후벼 파서 좌절시키는 데 있다.
융은 '스탠턴 칼라일'이 알지 못하는 콤플렉스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가르쳐준다. 앞서 말한 한 인물의 '퍼스낼리티'가 하나의 개성으로 일관되고 조화롭게 발전되는 동안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무의식에 머물게 된다. 한 사람의 생각, 기억, 감정, 지각이 되지 못한 경험은 괴로움, 갈등, 딜레마 등으로 남게 된다. 이것은 또 하나의 '퍼스낼리티'이자 콤플렉스인 것이다. 그래서 콤플렉스는 나쁜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여러 경험을 거치다 보면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한 개인의 일부인 것이다. 문제가 되는 순간은 일부가 아니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거나 전체가 되는 경우이다. 영화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저지르는 인물들은 보통 콤플렉스의 영역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자신과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볼 수 있다. 콤플렉스는 막으려고 해도 생길 수밖에 없는 개인의 일부이면서 관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풀어올라 문제가 되는 표현인 셈이다.
콤플렉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면 어떤 요인으로 인해 자극되고 조절할 수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회적 역할이다.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에 따라 관계 맺는 사람들에 의해 또는 자신의 욕망에 의해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만들게 된다. 착한 아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직장인,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려는 가장과 같은 역할은 집단적으로 형성되고 공유되는 하나의 무의식의 발현이다. 자기 내부에 있는 본능과 욕구를 무시한 체 이러한 '페르소나'에 압도되면 긴장감이 생기고 심한 경우에는 집단에 사회적 역할 만을 강요하게 된다. 또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열등감과 자책감을 느낀다. 대다수의 콤플렉스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사회의 신호와 명령 속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압력은 '페르소나' 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역할도 어느 정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융은 이에 대해 남성과 여성은 다른 존재이지만, 남성은 남성의 여성성을 가지고 있고, 여성은 여성의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성별답지 못한 것뿐 아니라 상대적 성향을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했을 시에도 콤플렉스가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위축된 남성의 여성성, 여성의 남성성은 예상치 못한 감정의 극단적 표출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많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제들을 끊어내고 절단하고 지워버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과 본성을 이해하고 욕구를 인정하며 골고루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자기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방치하거나 정해진 '페르소나', '성역할' 등을 고집할 시에는 남에게 그 불만과 초조함을 표출하고 전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융이 가르치려고 했던 콤플렉스를 묻어두고 무의식을 방치한 주인공의 결말을 충격적으로 묘사한다. 영화의 가장 첫 장면을 콤플렉스가 과잉된 순간에서 시작해서 마지작에 그 비극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교훈적 내용에 속한다.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는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일로 돈을 벌고 성공한다는 소재를 사용한 점이다. 가짜와 속임수가 들통나는 주인공의 쇼는 역설적으로 진짜와 의학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조명하는 효과를 얻는다. '스탠턴 칼라일'은 첫 번째로 자신이 하고 있는 속임수가 하나의 역할이 아니라 스스로의 본성이자 개성으로 여긴 실수를 범했다. 두 번째로 어린 시절부터 경험 한 부친과의 갈등을 화해의 방법이 아니라 억압과 회피해버림으로써 진짜 충동을 남들에게 투사해버렸다. 세 번째로 적절하게 발달시키지 않았던 남성의 여성성의 취약함으로 인해 자신이 성숙해질 기회를 제공했던 아내를 몰라보고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맞이했다.
현대사회는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어려움에 호소하고 또 신음한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탠턴 칼라일'은 심지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오만방자했다. 기예모르 델 토르 감독은 아무래도 그냥 심리적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스탠턴 칼라일'의 문제를 역사나 우화로 만 볼 것이 아닌 이유다. 지금 현재에 무의식과 의식에 대해 힘들어하는 관객들을 돌아보게 만들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스탠턴 칼라일'에게 나타났던 콤플렉스는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현상들이다. 그에게 진짜로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말라고 했던 스승이 있었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 전에 알코올 문제로 사망했다. 기예모르 델 토르 감독 역시 자신이 사람을 속여서 돈을 버는 영화 예술을 하고 있지만 그릇된 선택을 하는 인물이 망가지는 장면을 믿게 만드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소개하고 있다. 콤플렉스와 심리적 상처가 있는 관객들이 '스탠턴 칼라일' 이야기를 경험 삼아 자아를 단단히 하길 기대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