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 다리는 한 개의 통나무다

현실이 된 마이클 샌델의 15년 전 우려 <완벽에 대한 반론> 가져오기

by Rootin

인간의 욕망은 발전한 기술과 쉽게 손을 잡는다. 욕망이 어디로 흐르든 그 시대에 갖춰진 기술이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고 유통할 수 있다. 이 짧은 사실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소유라는 욕망으로 영토와 인구와 그 생산물을 모두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위해 발전된 기술은 전쟁으로 나타났었고, 지금도 나타나는 중이다. 윤리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억누르면서 욕망을 조절하는 정신적 대항마이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살육과 파괴가 가지는 무자비함이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모여 살고 계속해서 생명이 생명을 가꾸고 있는 한 윤리와 욕망은 계속해서 충돌한다. 쟁점에 따라서 전쟁이 아니라 작고 사소해 보이는 문제도 찬성과 반대는 늘 대립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은 15년 전 생명공학 기술이 이바지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윤리적 관점으로 반론을 제시했다.


마이클 샌델은 하버드대학교 교수 신분으로 2001년 말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 위원회에 참여했다. 유전적 강화에 대해 윤리적으로 어떤 관점이 동반되어야 하는지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부터 직접 대학에서 윤리학과 생명공학, 그리고 인간 본성의 미래라는 강의를 했다. 벌써 오래된 과거처럼 보이는 2000년대의 활동과 연구는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서 지금과 분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여전히 논쟁이 끝나지 않은,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은 사안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는 것과 생명공학의 도움을 받아 신체를 상향시키는 방법과 같은 주제다. 약물 사용은 프로의 정신이 깃들지 않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데 비해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과학의 도움을 받는 것은 건전하고 지지받고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 외에도 아이를 능력자로 만드는 생명공학 기술, 아이가 자라면서 교육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기술, 어른이 되어서 더 나은 유전자를 남기려는 기술까지 모두 연결 지어 언급하고 있다. 결국 마이클 샌델은 너무 생명공학의 밝은 면 만 보다 보면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부작용을 걱정하며 천천히 숙고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인간의 통제가 생명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점은 스스로의 힘을 과신한다는 관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이 과잉되게 나타나다 보면 그 힘을 물려주는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너무 커지게 된다고 예측했다.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처럼 여겨지는 부모들이 독점한 사회는 자만으로 이어져 재능과 운이 없는 사람들과 한 사회에서 공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그의 서툴러 보였던 예상은 어느 정도 2022년 들어맞아가고 있는 징조를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생명공학이 대두되었을 때 윤리적 관점에서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앞세운 건 '삶은 선물'이라는 아이디어다. 생명공학은 '삶은 선택'을 강조하고 추진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 삶이 우연적 요소를 걷어내고 재능과 성과를 증폭시켜 필연적으로 더 나은 인간과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생명공학을 잘 활용할 시에 얻어지는 이점이 많다고 보는 입장은 마이클 샌델의 우려가 섣부르게 내세운 기우라고 봤을 수 있다. 무엇이 더 옳은 입장이었는지, 어떤 사례들이 훨씬 더 많은 논리적 보충을 해주는지를 떠나서 생명공학은 확실히 삶은 선물이라는 관점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모든 부모가 생명공학을 활용하여 아이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으나, 자식에 대한 인적 자원의 세습과 강화에 대한 의지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아이의 재능이 발현되어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많은 부를 축적하고 또 한 번의 인적 세습이 가능해지는 위치에 도달하면 감사한 마음은 줄어드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자랑하고 그 사람의 힘과 노력을 부러워하는 분위기와 관점이 번지는 중이다. 아직까지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서 자식을 슈퍼히어로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로 태어나게 만들 수는 없으나 태어난 이후에 여러 과학의 힘을 빌리는 데 까지는 가능하다. 원래는 허약했던 신체를 가진 '캡틴 아메리카'는 공인되지 않은 기술을 통해 월등한 신체의 힘을 가진 특급 인간이 되었다. 영화와 같은 실험실과 주사기는 없지만 사적 기관의 힘을 빌리면 아이들은 누구나 사회의 특급 인간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


결국 사적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이나 공적 기관에서 만 훈련을 받은 아이는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듣고 또 받아들이게 된다. "너도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시설을 경험했어야지" 이 말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이 아니다. 약물을 복용하고 출전하지 않은 스포츠 선수가 잘못한 경우가 되는 건 아직 스포츠 정신에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점점 부모와 부모가 제공하는 약물에 해당하는 사적기관의 활용가치는 높아져가고 있다. 관련 시장의 성장추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삶은 선물'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선물은 등급이나 계급이 없다. 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중인 아이들은 등급과 계급을 선택적으로 부여받은 생명체로 삶을 시작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주장과 생명공학에 대한 입장이 논리적이었거나 충분히 보편타당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삶은 선택'이라는 관점은 가속화되고 있다.


생명공학이 가진 맹점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그 위험을 느끼는 사람들은 속도를 늦추려고 하거나 문제라고 인식하고 행동할 것이다. 우생학에 대한 아이디어에 극단을 향했던 나치는 기어코 멀쩡히 살아있는 인간을 무참히 학살했다. 행동에 대한 반작용은 역사의 사례처럼 끔찍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쪽을 옹호하든 갈등의 끝에서는 결국 서로의 자유를 지키는 입장이 첨예하게 드러날 것이다. 자유롭게 부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삶은 선택'을 택한 쪽과 인간의 본성을 자유롭게 펼치기 위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삶은 선물'을 믿는 쪽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것이다.


두 입장이 함께 가는 시대도 있지만 완전히 나무를 뒤집어 한쪽이 올라서는 시대가 다가올 수도 있다. 왔다 갔다 했던 것이 실제 역사였다. 그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나 논증을 잘하고 못하고 설득을 충분히 했는지는 첫 번째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유라는 것을 인생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는 경험과 신념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음과 습관의 영역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철학자가 백번을 이야기해도 한 번의 강렬한 경험 한 번이 관점을 만들기 훨씬 쉬운 방법이다. 생명공학은 마이클 샌델이 2007년 발표한 <완벽에 대한 반론>이라는 책이 출간된 이후 몇 번의 도약의 도약을 이미 성공했다. 그에 맞선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 역시 훨씬 더 강화되고 인식되는 중이다. 각자의 자유를 수호하는 외나무다리는 아직 단단히 버티고 있다.


완벽에 대한 반론.jpg <완벽에 대한 반론 The Case against Perfection>, 마이클 샌델, 김석운 감수, 이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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