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의 역사 읽기'로 의사소통 변화의 조건을 알고 일단 지켜보기
익숙한 환경은 익숙하지 않았던 경험을 거쳐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변화 상태에 놓여 그 향방을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수두룩하다. 눈을 잠시 들어 넓고 길게 세상을 바라보면 100년 전, 500년 전과 지금은 많은 면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말하자면 지금 익숙한 환경과 상태도 끊임없는 변화의 중간에 놓인 진행 과정일 수도 있다. 바뀌어 가는 것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기억하지 않는 것은 그 결과의 끝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과거의 사례를 들거나 연구 이론을 통해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근 10년 간 피부에 와닿게 변화하고 있다는 감각을 꾸준하게 주는 것 중 하나는 스마트폰의 대중 보급과 미디어 환경의 전환이다.
이미 많은 연구와 토의들이 진행되었고 매체 환경에 필요한 교육도 대중적으로 실시되는 중이다.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기술과 인식 경험의 속도는 대응하는 일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한 폭에 관련 현상과 전문적 견해를 내놓고 있는 찰나에도 비중이 적었던 기술은 갑자기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생긴다. AI 기술이 그러했고 블록체인이 기술 역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중이다.
처음 해당 기술들이 보급될 당시에 대중들 사이에서 믿음의 관점이 우선시되었다. 아무리 중요하고 대단한 기술일지라도 전체 인류가 구축하고 일군 문명이 하루아침에 영향을 받을 거라곤 믿지 않는 눈초리였다. 일부 컴퓨터 천재들이나 디지털 기기를 만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그림을 상상했다. 믿음이 아닌 현실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일부 컴퓨터 천재들은 산업의 지도자가 되었고, 디지털 기기를 만지기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던 청소년들은 전환의 시기에 서서히 적응하고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기존에 익숙했던 문화들은 새로운 기술과 가치의 등장으로 혼란을 겪었다. 이때 적용해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대전환적 사건으로 '인쇄술'의 발명을 꼽을 수 있다.
인쇄술 발명은 첫째로 민족주의와 개인주의 등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다. 둘째로 의사소통에 대한 확장과 인식 체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새로운 매체들의 시작을 앞당겼다. 마지막으로 온갖 분야에서 신경을 써야 할 정도의 다양한 전환들의 중심 매개체였다. 단순히 문맹률을 낮추고 같이 책을 돌려 볼 수 있게 된 모습을 넘어서 국가, 정치, 교육, 문화, 사회 등에 변화를 촉진시켰다. 일종의 강요이기도 했다. 폭력을 통하지 않고도 강제적인 행동이 성사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욕구와 기술이 허락하는 가능성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명의 유능한 지도자는 구성원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최선이다. 하나의 완전한 기술은 해당 인구에게 새로운 문제를 초래하고 그 뒤에 태어날 세대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450년 경 구텐베르크는 교체할 수 있는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완성했다. 이후부터 동일한 텍스트가 대량으로 보급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텍스트는 엮어서 짠 천이라는 뜻의 라틴어 '텍스투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어느 정도 연관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의미를 지닌 문자기호다. 통일성을 위해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텍스트의 내부는 문장, 절, 장으로 구분된다.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를 인쇄하기 전까지는 손수 복제하는 행위를 통해 보급될 수밖에 없었다. 텍스트를 손으로 복제할 때는 단순히 글씨 몇 글자가 틀리는 것보다 의도에 따른 편집이 가장 큰 문제였다. 누군가 목적을 가지지 않으면 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베껴서 쓰거나 여러 책에서 조금씩 필사하여 하나의 책이 되는 경우도 흔했다.
인쇄 기술은 각각의 입맛에 맞게 정보가 흩어지는 현상을 막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 대학, 국가 행정을 맡던 소수 엘리트들만 돌려보던 책이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두에게 책과 능력이 부여된 것은 아니었다. 읽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적었고 충분히 배포할 만큼의 텍스트도 부족했다. 문서 저작물이 알려지고 읽기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앞당긴 것은 사회 보편적 규칙들과 맞물려 일어났다. 살면서 마주치는 거래의 현장에서 부피나 무게에 대한 단위가 규정되면서 결국 사회 모든 영역은 역동의 파도에 휩싸였다.
인쇄술을 발명한 나라인 독일에서 기술을 활용한 방식 중 하나는 의사소통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 주민들끼리 모여서 책을 통해 연결되기를 원했다. 책을 전혀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었지만 사회 내부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쓰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도서 출판이 증가되었다. 책의 가격이 어느 정도 대중들의 수준에 맞게 책정되면서부터 수요와 판매시장이 활성화되었다. 1800년 경에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잠재적 독자들이 더욱 확보되었다. 책과 글은 교양, 문화, 정보를 공유하는 목적에 이바지했다.
책 생산이 증가될수록 책을 매개로 대화하는 대중의 범위도 늘어났다. 책 출판이 대중화되기 전까지 독일 대학에서는 교수가 책의 일부를 낭독하는 형식의 강의가 흔했다. 학생들은 내용을 그 자리에서 기억하거나 자필로 메모해가야 했다. 책이 널리 보급된 뒤로는 학생들도 교수와 같은 책을 읽고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통적인 토대의 개념이 대학의 핵심이 되었다. 읽을 수 있는 책의 선택지가 다양해지자 한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보다는 여러 권을 동시에 한 번만 읽는 행위로 독서 습관이 변형되었다. 주로 성경과 같은 종교 서적에서 새로운 종류의 소설, 전기, 신문, 잡지 등으로 손을 뻗어나간 것이다.
사회 전체 규범과 인식 체계의 가르침이 되었던 두꺼운 종교 서적을 내려놓고 다양한 텍스트 매체를 읽기 시작한 것은 조용하지만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정신적인 변화 과정에서 공론이라는 개념이 추가되었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허락하는 티켓이 생긴 셈이었다. 신문과 잡지는 시민들이 티켓을 들고 입장한 운동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러 정보를 제공했다. 17세기 이래로 발전한 신문은 당면한 사건이나 보도에 신속하게 반응하지 못한 책을 보완한 매체였다. 신문이 대중을 독자로 상정한 것은 점점 중요해지던 시민계급을 의식한 결과였다. 이로써 신문이라는 매체는 시민들이 동시에 같은 사안에 대해 시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성격상 신문을 읽는 독자들의 관심이나 조건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렵다. 다 함께 만들어가는 상호 소통이 아닌 일방적 메시지 전달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문사는 일반적 추세, 평균적 가치에 해당하는 사회적 규범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고 있는 것과 앞으로도 좋아할 가능성이 큰 주제와 방식을 삼는 것이다. 이러한 편향성은 변화뿐 아니라 갈등도 초래한다. 여론이라는 것은 그 사이에서 형성된다. 이로써 문자는 후세를 위한 기록뿐 아니라 당대의 시사적 문제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신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시민계급은 신문을 구독하면서 자의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동기와 신문의 발전은 함께 자라났다.
시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공론장은 사회 영역 전반에 걸쳐 자유로운 의사 표현, 비판, 의사결정 등의 의사소통 영역을 이상적으로 제시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의사소통은 구체적인 매체에 의존하는 현상을 보인다. 각각의 매체는 의사소통을 위해 특정한 주제를 허용하거나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중매체의 이러한 문지기 기능은 게이트키핑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매체는 제어하는 힘을 가지고 선택하는 주체다. 어떠한 주제를 다룰 것인지, 대중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더라도 다루지 않을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신문은 특정 정보의 중요성을 지면 배치와 기사와 분량, 노출 빈도수에 따라 강조할 수 있는 편집 권한이 있다.
인쇄술 발명부터 시작해서 텍스트를 책, 신문과 같은 매체로 발전시키면서 인간의 생애는 달라졌다. 신분에 의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봉건시대인들은 자유롭게 토론하고 정치에 의식을 표출할 수 있는 근대인이 되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독점적으로 활용했던 일방적 의사소통은 다양한 방향으로 많은 집단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운영되고 작동하는 시민사회와 국가는 모두가 주인이 되어 활동할 수 있는 운동장이 되었다. 안타깝지만 일어났던 1,2차 세계대전과 다른 민족 간 학살은 인쇄술 이전에 벌어졌던 전쟁들과 전혀 다른 성격의 움직임이었다. 한 명의 통치자의 결정이 아닌 동일한 가치 체계를 공유한 시민들의 참여로 일어난 결과였다. 해당 전쟁의 결과는 190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에 인간 문명이라는 틀로 이해될 만큼의 영향을 끼쳤다.
인쇄술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과 매체의 변혁이었다. 말과 언어가 주요했던 의사소통 시대에서 인쇄의 시대로 바뀌든, 인쇄의 시대에서 디지털 매체의 시대로 바뀌든, 의사소통의 변화는 여러 면에서 전환을 일으킨다. 정보의 전달이라는 간단한 의미의 의사소통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새롭게 규정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신문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독자의 수가 충분해지는 조건을 충족했던 시점이었다. 생산과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장사임에도 신문을 만든 것은 시대적 요구와 의사소통 활용가치에 대한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새로 생겨나는 기술 자체는 사람들의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술을 이미 충분히 존재 가치를 잠재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세상 앞에 공개되어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인쇄 시대에 익숙하고 디지털 시대가 불편한 일부 사람들은 인쇄 시대에 발전한 가치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해당 문제에 걱정을 가진 사람이라도 전통의 독일 대학에서 한 명의 전문가가 여러 군중을 대상으로 책을 낭독해가는 방식이 지금의 민주적인 교실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전문가의 책 낭독이 유효할 수는 있으나 각자 책을 가지고 학습해나가는 능력이 중요한 환경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에 대한 호불호보다는 사람들이 담고 싶어 하는 욕망과 요구가 기술에 얼마나 적절하게 반응하는지가 변화를 바라보는 각도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