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에 대하여

억울한 전문가의 지속적인 돌파구로서의 회의주의 <스켑틱>

by Rootin

전문가는 지식과 지혜를 제공하면서도 두려움과 공포의 존재였다. 살아가는 데 적용하기 불편하거나 귀찮은 방식과 사실을 세상에 내놓고 교육하러 다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연구들이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고 각종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당장 더 급한 일들이 많이 있다. 때에 따라서는 연구의 업적과 사회에 대한 기여로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그들이 지적을 하거나 모르는 것을 들춰낼까 봐 겁이 나서 피하기도 했다. 그러던 찰나에 지식의 대중화, 쉽게 학문 배우기 열풍이 불면서 지식인과 지식인의 형체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미디어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지식을 미디어로 소비하는 문화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판단해보기도 전에 주류가 돼버렸다. 심지어 개인에게 집중된 미디어 매체의 발달은 한 분야의 기능과 존재가치를 빠르고 쉽게 지워버리기도 했다.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방식이 바람직한 분야가 있는 반면, 다수결로 해결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과학 연구에는 유사과학으로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원칙들이 있다. 유사과학은 검증받지 않은 이론과 데이터에 대한 해석을 오남용 하게 된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유사과학은 전문가처럼 보이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인지도를 쌓을 수 있다. 그 이후에 기존 과학이 쌓은 원칙들은 무시되고 전문가의 역할을 하던 이들은 역할과 명성 모두 내어주게 된다. SNS 미디어나 플랫폼 기술이 발달하기 전부터 이러한 문제에 위기의식을 가졌던 마이클 셔머라는 과학 저술가가 있다. 그는 과학자가 직접 미디어에 등판하여 혼탁한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택했다. 회의주의 과학저널《스켑틱 Skeptic》을 창간하여 발행과 편집을 담당했다. 그는 실험심리학으로 석사학위, 과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심리학, 진화론, 과학사를 가르쳤다.


과학은 본래 규칙과 질서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생각 수단이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이론들이 진리라고 할 수는 없으나 확실함과 불확실함 사이의 모호한 비율을 다룰 수 있다. 아무리 서로 쉽게 믿지 못하는 사회더라도 과학의 발견 덕분에 '진짜'라고 생각하는 법칙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초 지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진짜'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의도가 있건 없건 '가짜'를 퍼뜨리는 이들은 사람들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히 정치적 당파나 종교적 신념과 결합된 영역에서는 누구의 말이 더 과학적인지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혼재 속에 과학자가 과학의 기능과 존재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는 기본적인 검증 질문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유사과학이 아닌 '과학'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진 이론과 법칙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실제 데이터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는가?', '다른 이들이 그 주장을 검증했는가?', '그 주장이 기존의 지식과 부합하는가?', '그 주장을 반증하기 위해 노력한 이가 있었나?', '다양한 증거들(최소한 여러 개의 학문에서 동시에 인정할 수 있는)이 새로운 주장으로 수렴하는가?', '기존의 논리와 연구 방법을 사용하는가?', '관찰된 현상에 대해 다른 설명, 곧 대안을 제공하는가?', '그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설명이 기존의 설명만큼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가?', '개인적 신념이나 편견이 그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가?' 실제 과학적 사실로 밝히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동료들에게 발표하고, 학회에서 공인을 받고, 세상에 내놓기 전에 동료들의 평가도 받아야 한다. 유사과학은 이토록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기존의 이론이나 인간의 지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유사과학은 혹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 귀에 흘려 들어간다. 이때 마이클 셔머는 '회의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회의주의의 장점은 이렇다. 근거와 논리가 부족한 것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에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다. 진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보면서 새로움과 기존 정설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즉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을 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분야에서 지식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사람의 경험을 통한 깨달음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지는 기능이라면, 회의하며 관찰한 바를 검증하는 사고하는 능력은 갈고닦아야 유지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회의주의는 습관적으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 지식을 타당하게 선별하기 위한 훈련이다.


회의주의가 없을 때의 불편한 점은 다음과 같다. 경험으로 발견한 단적인 예시와 사례를 비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로써 믿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서사는 강화되어 원하는 사실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가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은 강화할 수 있겠으나, 법적으로 경영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온전한 이성이 아닌 신념으로 행동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보고 들은 것에 만 의존하다 보면 점점 공인되거나 긴 절차에 의해 승인된 과학은 멀어진다. 개인의 취향과 감정의 순간적 충동들은 선입견과 편견을 강화하는 데 힘을 보태는 장치로 활용된다. 자신에게 만 맞는 데이터를 취사선택하다 보면 이를 반대하는 데이터들은 삭제되고 배제한다.


정치적 당파성이나 종교적 전도 목적이 없는 과학을 발표하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않는 이유도 존재한다. 마이클 셔머는 인간의 뇌가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과 논리가 생겨날 때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으로 변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어떤 주장을 할 때는 뒷받침이 되는 근거와 더불어 반론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까지 있어야 한다. 그 주장을 보강하는 증거만 수집되는 것은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이는 똑똑한 사람에게 더욱 쉽게 일어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똑똑하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확증편향으로 얻은 주장을 똑똑한 말과 행동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한 번 정한 자신의 의견에 치중하는 경향을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 확증편향적 주장을 지키려 들 수 있다.


과학만큼이나 다른 분야 역시 각각의 주장을 강화하는 방법들이 역사적으로 발전해왔다. 그중에서 과학이 담당한 기능은 교정적 효과였다.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검증과 검토는 확실한 것에 대한 타당한 확률을 제공해왔다. 동료 연구자들과 블라인드로 실험을 여러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몇 차례 진행해보고 또다시 검사하는 실험 방식은 지금까지 인간이 과학을 지키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체계이다. 그동안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해서 진부한 것도 아니고 보수적인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 스스로 위압감을 풍기기 위한 성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가 가지 않는 연구를 하기 위한 장치들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발견한 사실을 널리 알리게 되어 권위나 명성을 얻을 수 있으나, 앞서 연구의 결과가 온전치 않다면 모든 것은 무효다.


여러 기술의 발달로 과학뿐 아닌 여러 지식 분야에 유사 전문가들이 등장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각 분야는 유사 전문가들에게 시달리고 있고 사실과 기존 연구의 타당성을 밝힐 수 있는 활로를 모색 중이다. 마이클 셔머가《스켑틱》과 같은 잡지 미디어를 통해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하는 독자들과 만나면서 얻은 답은 과학의 본래 기능과 가치를 직접 나와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마이클 셔머의 아이디어처럼 예술, 종교, 정치 등 대중들이 쉽게 접하고 의견을 자주 보탤 수 있는 환경에서 각 분야의 기능과 존재가치가 다시 한번 설명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대중 미디어에 자주 노출돼서 전문가였던 것이 아니다. 각 분야가 인간의 지식을 발전하는 데 어떠한 도움과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들이다. 안타깝게도 관심과 미디어가 자본과 영향력이 되는 환경에서는 기존 지식인의 권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대중과 만나는 접점과 학문의 전문성을 소개할 수 있는 매체 활동을 찾지 않는다면 영향력은 줄어들고 신뢰도 역시 하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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