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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May 27. 2022

지금 소설을 만든다는 것

김영하 장편소설 <작별인사>, 정세랑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

소설은 예전보다 많은 관심을 받지 않고 있다. 소설이 종이 매체라서 온라인 콘텐츠보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겠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매체 환경 변화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소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과 특징이 지금 시대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일까. 현실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서술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소설을 대체하는 듯한, 관심을 나눠가지고 있는 듯한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는 기존 소설들과 무엇이 다른 걸까. 질문들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 소설이라는 매체의 의미를 살펴본다. 


한국어로 된 소설이든, 외국어로 된 소설이든, 사람들은 소설을 읽기 전에 신화, 전설, 민담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읽고 있었다. 소설은 다른 이야기들과 다르다고 구분된 최신 이야기 매체인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현실을 아주 가까이에서 묘사하고 서술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영웅보다는 한없이 연약하고 세상 앞에서 고통받는 개인이 주인공이 된다. 소설의 세계와 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세계는 모두가 거대한 구조 안에서 허덕여 가는 걸 고민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하늘의 별을 보며 세상의 전부라고 믿던 시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인간들끼리 서로 약속하고 합의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이 하늘의 별보다 무한하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무한하게 확장되는 세계는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상황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발을 붙이기 힘든 장소에서 각자의 삶의 중심을 찾거나 땅에 내려가기 위해 애를 쓰는 지향적인 태도가 소설 안에서도, 독자들의 현실에서도 나타난다. 과정이 험난하게 되는 건 시도하는 순간부터 여행이 끝날 때까지 뜻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만들어가야 살아갈 수 있는 일상에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소설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겪는 고단한 여정에서 발견하는 의미를 진실과 연결 지으려는 행위가 된다. 


연결 짓는 것은 단순한 스토리가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꾸는 노력이다. 앞에 일어난 사건과 뒤에 일어난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관련이 없었던 시간의 관계를 꾸며내는 일이다. 행위는 이토록 의도가 다분하게 포함된 표현이다. 실제로 소설의 인물들보다도 인물들의 행위는 소설 내에서도 독자의 세상에서도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흔히 말하는 선택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도 달려있지만, 마음을 결정하는 것 역시 행동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소설에서 주인공이나 인물들이 직접 벌이는 행동, 벌려야 하지만 하지 않는 행동,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한 행동은 모두 결과적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하게 된다.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와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역시 각기 다른 세계에서 같은 한국 언어를 통해 다른 방향의 행동으로 다른 생각을 나타낸다. <작별인사>의 경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한 소년은 길고 긴 여정을 끝내고 어떠한 최종적 선택을 고른다. 그 결말은 이전 사건들과의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도달한 주인공의 의식이 만들게 되었다. 장면은 독자마다 해석하기에 나름이겠으나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별을 의미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경우 스스로의 정체성이나 역할과 더불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상대와의 관계가 의미심장하게 다뤄진다.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주인공의 정체 속에 타인과 관계를 맺는 자아가 자리를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운명인지, 선택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것은 새로운 만남이자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을 남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소설의 결말이 끝난 뒤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소설가의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을 왜 쓰게 되었는지, 소설을 쓰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누구에게 가장 고마운지 등을 나름 상세하게 적어 놓는다. 그만큼 소설가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된다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러한 형식은 15세기 유럽, 16세기 조선에서는 낯설 수 있는 이야기 방식이다. 각자의 스토리는 정해진 규칙으로 둘러싼 세계를 뚫고 나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이 그만큼 현실을 반영하고 투영하는데 최적화된 이야기 매체라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 


스토리, 인물, 서술자 등을 요리하고 조리한 뒤에 나온 결과물은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처음부터 허구 세계를 만들고 과장과 비약을 시도하는 건 독자가 실감하는 순간을 위함이다. 어떻게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끊임없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개인들은 늘 남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지금 소설을 만든다는 것은 구체적인 이름과 장소와 시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남'의 이야기를 통해 달라 보이고 조금은 더 내 것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는 역시 소설가가 풀어놓은 서술의 목소리다. 늘 구체적인 것으로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들은 <작별인사>처럼 헤어지기도 하고 <보건교사 안은영>처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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