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다음은 시작이 아닌 끝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태양은
떠오르고 진다.
영원한 것을 믿고 있는 와중에도, 무엇인가는 사리지고 지나가고 있다.
2020년은 끝난다.
12월도 끝난다.
1월이 시작했을 때,
세웠던 목표나 계획이 얼마큼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은 계획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2020년은 내가 시작한 기준이 아니다.
12월의 끝 역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끝나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 역시 나의 기준이나 목표가 아니었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 앞에서 내 계획이 모두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건강하게 지내고, 자기 관리를 잘해서 생의 주기에 관여하는 것 외에는
인생의 길이나 시간에 대해서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점은 없다.
내가 관여해야 하는 것은 나의 의지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들이다.
시작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끝낼 필요는 없겠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지만, 중간에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과정이라면,
끝낼 수 있는 것은 역시 나 이다.
시작하고자 했고, 지금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고,
내가 생각했을 때 나에게 좋은 기회가 아직 떠난 것이 아니라면,
아직 끝낼 때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2020년 12월이 다 가더라도, 나이의 숫자 1이 추가되더라도,
나에게 찾아온, 또는 내가 내 의지로 찾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만든 범인이
나 라는 뉴스를 내가 직접 알게 되는 순간의 허망함은 회복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요소이다.
허망함을 자주 느낄수록 극복하고자 다시 도전하는 의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허망함을 자주 느끼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보다
나의 소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스스로가 더해 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믿음과 확신과 비슷한 말을 해줄 수 있지만,
쌓을 수 있는 느낌을 직접 주지는 않는다.
소망에 접근하는 시간이 1년 일지, 5년 일지, 갑자기 1주일 만에 이뤄질지에 대해서
관여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관여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내가 처한 환경에 계속해서 변화를 주고자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거나
그 소망이라는 것을 매사에 구체적으로 발견하려고 하거나
여러 사람과의 교류와 대화를 통해서 처음 느꼈던 마음과 감정에 대해서 돌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면,
관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악 조건의 환경에 있거나
소망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서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거나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이 없다면,
관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많은 관여를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에 비례하는 결과를 매번 가지기 어렵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었고,
날씨와 자연이라는 것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대신 많은 관여를 할수록 내가 시작한 것을 어떻게 왜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끝내야 할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기 쉬워진다.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내가 가졌던 소망에 대해서
그것이 이뤄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면,
지금 그 소망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1년 전보다는 느낀 바가 많아졌을 것이다.
소망이 막연하거나 뚜렷하거나를 떠나,
그것과 관련해서 시작하고자 했던 시도나 마음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이유를 만들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나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난 뒤에 어떤 매듭이 좋을지 골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