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징영 탄생기
가끔 영화 평론가 GV를 보러 갑니다. '같은 영화를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해석을 들으며 감탄하죠. 그러면서 '아, 나는 언제쯤 저렇게 심도 깊게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나 같은 엉터리가 영화 팟캐스트를 해도 되는 거냐' 뭐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기자로 일한 10년 동안에는 일부러 영화를 끊었던 터라, 그동안 본 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지난해 초 쓰던 브런치 영화리뷰를 포기했더랬습니다.
뭐 어차피 돈 받고 연재한 것도 아니었고, 제 리뷰를 즐겨 보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티도 안 났습니다. 사실 브런치 영화리뷰는 일종의 자기 최면 같은 거였어요. 매일 영화리뷰를 올리는 루틴, 끈질기게 한다는 대견함을 느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해봐야 어느 평론가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마침 그때 김프로쇼를 다시 시작하기도 했지만, 솔직히는 내심 찜찜했습니다.
내가 왜 평론을 잘해야 하지?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 '평가하고, 지적하고, 훈수두는 게 싫어 기자를 그만 뒀는데. 내가 왜 영화 평론을 잘하려고 안달인 건가?' 물론 영화는 상품인 동시에 예술이니까 그에 맞는 평가와 평론은 꼭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잘하는 분들이 하시면 되고요. 저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니까, 제 수준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고, 참고하면 되는 거죠. 괜한 강박에 시달렸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더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감독이 의도한 상징과 기호를 읽어내고, 수많은 레퍼런스를 떠올리며 영화를 보는 것만이 꼭 정답은 아닙니다. 사실 배경 지식 없이 느낌으로 영화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런 방법이 하찮거나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 방식으로, 본인 깊이만큼 즐겨면 그만입니다. 해설 좀 못하고 없어 보이면 어떤가요. 재미있는 게 중요한 거죠.
없는데 뭐. 솔직히 까자
그리하야. 브런치 매거진 이름을 바꿨습니다. <짧고쉬운 영화리뷰> 말고 <엉망징창 영화평>으로. 내 수준이 엉망징창이니까. 밑천을 드러내고 없음을 인정하되, 그대신 성실하게 자주 쓰자. 그리고 최대한 즐기자. 그게 제 원칙입니다. 영화에 대해 해박한 사람 보다는, 영화를 좋아하고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제가 진짜로 그런 사람이면, 보는 사람들도 그걸 느낄테죠. 제 성장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이도 있을테고요.
생각을 한 끗 틀었더니 갑갑한 마음이 설렘으로 바뀌더군요. '세상에 좋은 영화가 이렇게 많은데, 남들보다 볼 영화가 2~3배는 더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이야기가 탄탄한 영화, 삶과 사람을 충실히 담아내는 영화가 지천에 널렸습니다.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좋은 영화를 만드는데 밑거름으로 삼을 작정이예요.
그러니까. 부담없이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