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논문이 아니예요

<유 피플>

by CINEKOON

영화는 이미 수도 없이 확대 재생산 되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에 지나지 않다. 물론 그런 이야기 구조를 차용 했다고 해서 <유 피플>을 마냥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옛날의 셰익스피어가 어찌 이토록 대단한가-를 느끼는 것에 더 가까움.


어쨌든 이번 영화의 로미오는 유대교 집안의 백인이고, 줄리엣은 이슬람교 집안의 흑인이다. 종교와 인종의 차이만으로도 이미 벅찰 지경인데, 두 주인공인 에즈라와 아미라는 결혼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 그 이상의 난이도를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흑인에 대한 백인의 무지와 동정심에 같잖은 정치적 올바름을 곁들인 형태, 그리고 백인에 대한 흑인의 피해의식과 고집이 완성한 형태로 이원화 된다. 아, 백인과 흑인 모두를 비판하는 듯한 이런 문장이 불편하다고? 그랬다면 미안하다. 다만 나는 아시안이니까 중립적 위치 취할만도 하잖아.


당연히 두 집안 사람들이 각각 느끼는 불편함 모두 일견 이해는 간다. 최근까지 벌어지고 있는 흑인에 대한 탄압적 행태를 나라고 전혀 모르겠는가. 또, 그런 흑인들을 대할 때 백인들이 느낄 조심성을 내가 또 이해 못하겠는가. 물론 내가 실제 백인과 흑인인 것은 아니니 그들 입장을 100% 다 이해한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거대한 뻥이지. 그러니까, 다는 이해 불가능해도 어느 정도는 눈칫밥으로 알겠다고.


이런 점들 덕분에, <유 피플>은 몇 백년에 걸쳐 내려온 뻔한 이야기를 동어반복하고 있음에도 강력한 시의성을 얻는다. 에즈라의 백인 어머니는 예비 며느리와 그 가족들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이 아닌, '흑인으로서의 그들'로 대한다. 이는 원론적인 형태에서 한참을 벗어난 듯한 '요즈음의 정치적 올바름'이 가진 스노비즘과 은근한 우월주의 모두를 건드려 관객들의 공감을 산다. 또, 인종간 결혼과 그에 따른 혼혈 자식들로 인해 흑인들의 피부색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아미라의 흑인 아버지는 그저 백인이기에 예비 사위를 나쁘게 보고 골탕까지 먹여 곤란하게 만든다. 이 또한 다른 의미의 배타주의이자 인종 분리라는 점에서 역시 관객들의 마음을 찌른다. 이토록, <유 피플>은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갖고 있다.


웃긴 건, 갖춰 놓은 재료가 이토록 좋으면서도 정작 그 결과의 맛은 밍숭맹숭하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최고의 기치로 내세운 요즘의 장르 상업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유 피플>도 그 메시지를 드높이느라 장르적인 쾌감과 이야기의 완결성 면에서는 한참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인종간의 갈등을 기초로한 현대 미국 사회의 커다란 문제들을 메시지로 끌어들여온 거? 아까도 말했잖아, 당연히 좋지!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거 드높이느라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재미까지 모조리 거기다 투자하면 어떡해? 에즈라와 아미라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그토록 강조하는 피부색 차이를 빼면 볼품 없을 뿐더러, 또 제대로 묘사 되지도 않는다. 특히 두 집안 사이의 문제 때문에 잠시 헤어졌던 두 사람이 결국 다시 만나는 썩 로맨틱 코미디스러운 그 막판 전개!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가? 3개월이 지난 두 사람의 의견은 다시 묻지도 않은채 양가 부모가 알아서 결혼식을 준비해놨다고? 내 기준엔 그게 더 폭력적인 것 같은데.


여러 생각해볼만한 거리와 소재들을 제공하지만 정작 한 편의 영화로써는 별 재미가 없는 작품. 심지어는 조나 힐과 에디 머피의 코미디 감각마저 볼썽 사납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재부터 코미디의 재료까지 너무나 미국적이다. 미국으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져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살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이러나 저러나 흥미가 동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2108744515_NY4FaJpe_f9bbdfd036357f7b8188500483d2e19dcf35ac7c[W578-].jpg <유 피플> / 케냐 배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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