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하고 분해해야만 보이는.

<데몰리션>

by CINEKOON

주인공 데이비스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는다. 딸을 잃었다는 당연한 슬픔에 빠진 처갓집 사람들과, 며느리를 잃은 동시에 홀로 남은 아들 또한 걱정되어 역시나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닌 친정집 사람들. 예컨대 당연한 슬픔. 헌데 이상하게도 데이비스는 눈물 한 방울이 나질 않는다. 내가 지금 슬픈 건가? 아니면 슬프지 않은 건가? 슬픈 내색을 보이지 않는 데이비스를 보며 사람들은 그 역시 가까스로 울분을 참고 있는 것일 거라 예단한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생각한다. 정말로 슬프지 않은데 대체 왜지?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물론 데이비스처럼 아내를 잃었다거나 교통사고를 경험했다거나 하는 등은 아니다. 누가 봐도 슬퍼야할 순간, 또는 명명백백하게 기뻐야할 순간 등에 나 혼자만 유리되어 있는 듯한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데이비스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아녔지만 다들 울고 있는데 나 홀로 눈물은커녕 슬픔이 느껴지지도 않아 다소 어리둥절했던 순간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 설마 내가 소시오패스는 아니겠지-하며 말이다.


다행히 난 소시오패스가 아니었고, 이후 예전의 그 경험들 속 나 자신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 때의 난 그저 이해가 안 됐던 것 같다. 그 때 내게 벌어졌던 누군가의 죽음과 또 누군가의 희소식이, 그 당시의 내겐 아직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헤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엔 슬프거나 기쁠 수 없었지. 하지만 조금씩 시간의 품을 들여가면서 그 상황을 천천히 이해하게 된 이후에는, 다소 뒷북이더라도 그 슬픔 또는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더라.


<데몰리션>의 데이비스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이 응어리지고 미스테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주변 사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해체하기 시작한다. 고장나있던 냉장고부터 시작해 회사 화장실의 칸막이 문, 그리고 끝내는 잘 먹고 잘 살던 자신과 죽은 아내의 집 역시 불도저까지 동원해 모조리 다 해체해버리는 데이비스. 처음엔 그저 감정 분출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싶었다. 화가 나면 야구방망이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 부숴버리고 싶어지는 충동이 들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냉장고와, 그 화장실 칸막이 문과, 호의호식하던 그 집 등은 대타 선수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부수고 싶었던 대상이 아니라, 불가능한 시도를 대체해보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데이비스가 그토록 해체하고 분해해 그 안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인간의,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데이비스는 끝끝내 자신의 마음을 해체하고 분해해 그 안쪽을 보기에 이르고, 더불어 사별한 아내의 가장 밑바닥 아래에 있던 비밀까지 모조리 알아내게 된다. 더 이상의 레이어가 없는, 가장 순수한 안쪽과 밑바닥을 직접 목도 해야지만 해탈할 수 있었던 일종의 경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데이비스는 그 경지에 다닿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고 싶다.


영화로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와일드>, TV 드라마로는 <빅 리틀 라이즈> 등의 작품들을 통해 여지껏 흔들리고 부유해 불안정한 마음을 지닌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 해온 장 마크 발레. 슬프게도 재작년 그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데몰리션>은 영화 한정으로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그렇게 전부를 해체하고 분해해 가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었던 여러 인간의 여러 마음들. 장 마크 발레가 부디 그 가장 안쪽과 가장 밑바닥을 잘 품어냈길 바란다. 영면하시길. 


AAAABTicm3aBQDdtX0iiex3_41RLcQnndhpEfeUtIUYxkOSPwUNqDPc9mT3roxKFtd5ceBMwL3MtTasVye3acZlyjpW6TA0BIYKdeGy-.jpg <데몰리션> / 장 마크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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