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는 선택하는 거야

<바비>

by CINEKOON


여성형 장난감인 바비들이 주도하는 세상, 바비랜드. 그 바비랜드 안에서 바비들은 대법관이 될 수도, 운동선수가 될 수도, 작가가 될 수도, 대통령이 될 수도, 심지어는 그냥 전형적인 초긍정 미녀가 될 수도 있다. 이에 그녀들의 짝꿍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켄들은 정말로 그녀들의 짝꿍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 어쨌거나 모든 것이 아름답고 기쁘기만한 바비랜드에 큰 사건이 일어난다. 전형적인 초긍정 미녀 바비가 어느순간 우울감을 느끼거나 허벅지에 파고든 셀룰라이트 따위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우주의 비밀을 알아차리게 된 것. 여기에 마치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 제안했듯이, 전형적인 초긍정 미녀 바비 앞에 나타난 이상한 바비는 그녀에게 하이힐과 버켄스탁 중 하나를 선택하라 제안한다. 굳이 따지고 보면 제안이라기 보단 종용에 더 가까웠지만.


영화 <바비>는 거짓된 세상 안에 갇혀 살아가던 주인공의 탈출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트루먼 쇼>고, 선택과 각성으로 인해 삼라만상의 비밀을 깨우친 바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매트릭스>이며, 장난감을 원작으로 삼아 그 역사와 전통에 큰 절을 올리면서도 동시에 비아냥까지 댄다는 점에서 <레고 무비>이기도 하고, 장난감이 자신의 주인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조우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토이 스토리>다. 그러니까 곳곳에 다른 레퍼런스들의 흔적이 유의미하게 남아있는데, 다만 <바비>는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수용하면서도 그들을 엮어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썼다는 점에서 선배 영화들에 쉽게 묻어가려 하지 않는 후배 영화다. 여러 영화들을 그저 따라하고 베낀 것이 아니라, 그 모티프들을 주요 동력으로 삼아 자신만의 것을 해보겠다는 온고지신의 영화란 소리.


<바비>는 그 주요 제작사이자 원작사라 할 수 있을 마텔을 배려해 원작 장난감 브랜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표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체 마텔을 어떻게 구워삶았던 것일까 궁금해질 정도로 그들을 비판하고 풍자하기도 한다. 아님 반대로 마텔이 대인배였던 것일까. 뭐 어쨌든. <바비>는 그렇게 원작 장난감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들이 어떻게 현실 세계를 바꿔놓았는지 역시 대범하게 표현해낸다. 성적 대상화와 외모 지상주의, 자기불만족과 유리천장 등의 현대 사회 속 문제점들이 영화를 선명하게 가로지른다. 물론 이같은 묘사가 종종 지나치게 강한 느낌으로 튀어나와 조금 어색한 순간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간인 글로리아가 바비랜드로 넘어와 여성이라서 느끼는 삶의 모순점들을 모두 소리치는 장면. 그 내용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나, 대사 자체가 맥락 안에서 효과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노골적으로만 느껴져서 이 장면 만큼은 영화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돌출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건물 다 지어놨는데 한쪽 벽에만 철근이 튀어나와 있는 형상이랄까. 여기에 인간측 주인공 모녀인 글로리아와 사샤 사이의 관계 회복 역시 개연성 빼고 진행된 느낌이라 영화가 마음이 좀 급했구나-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영화에는 분명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낱 장난감 홍보 영화로 만들어질 구석이 있었고, 무엇보다 페미니즘의 기치를 드높이잔 명분으로 대중영화로써의 재미를 잃을 확률이 존재했다. 물론 페미니즘은 좋은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못지 않게 여성의 인권 신장도 중요하다니! 세상에 정말 이해 못할 몇몇 무지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마 대부분의 남성 여성들이 모두 공감할 만한 가치이지 않은가. 다만 여기서 걱정됐다 말하는 페미니즘은 좀 더 구체적으로, 레디컬 페미니즘이었다. 극단적 여성주의로써, 남성들의 인권엔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여성들의 인권만을 숭상하는 과격파말이다. 심지어 요즈음의 할리우드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의 함정에 빠져 이같은 메시지들을 들먹이면서 정작 영화의 대중적인 재미는 나몰라라 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러니 바비와 켄의 구도가 명백하게 느껴지는 <바비>를 기다림에 있어 이같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단 말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다행이도, <바비>의 연출자는 그레타 거윅이고 또 그 각본을 쓴 건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벡이란 사려깊은 두 필름메이커였다. 특히 노아 바움벡은 이전 선배 영화들의 장르적 재미를 굳건히 이어받으면서도 그 안에서 메시지를 적당히 드높여 자신만의 모던 컬트 클래식을 완성해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사려깊은 각본이란 생각이 영화를 보는내내 들었거든.


무엇보다 현실의 단순 미러링으로 그치지 않고 바비와 켄 모두를 존중하며 영화가 막을 내렸단 점에서, 그 메시지가 사려깊고 의미있다. 남녀 갈라치기와 그 갈등으로만 끝나지 않고 영화는 바비와 켄 모두를 포용하며 끝을 맺는다. 현실 세계 안에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살게 된다. 여자는 분홍색을 좋아해야 하고 운동을 직접 하기 보다는 그 옆에서 치어리더로서 응원이나 하는 게 더 어울리며, 무조건적으로 남자 말 잘 듣고 사는 게 상책이다. 여자는 파랑색이나 검정색을 좋아해야 하고 멋진 근육을 길러야 하며, 언제나 여자보다 더 똑똑해야하는 동시에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절대 안 된다. 하지만 <바비>는 이같은 현실의 프레임을 잠시 옆으로 치워보자 말하는 영화다. 여성성과 남성성,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 갇히지 말고 벗어나 그냥 'Myself', '너다움'을 찾으라 말한다. 그리고 <바비>는 여기에서 바비의 발명가인 루스 핸들러를 등장시켜 창조주와 피조물의 만남을 주선함으로써 그 '너다움'을 스스로 선택해내라 응원한다. 그렇다, 나다운 걸 찾고 선택하는 데에 다른 이들의 허락은 필요 없는 것이다. 설사 그게 당신을 빚은 창조주의 허락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외에도 <바비>는 시각적인 쾌감이 대단한 영화고, 호화 캐스팅으로 꾸려진 배우들 면면이 즐거운 영화다. 마고 로비는 생글생글하게 예쁜 전형적인 초긍정 미녀의 표정과 똑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의 힘을 아는 배우고, 라이언 고슬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이 나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스스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레고 무비>에 이어 이번에도 장난감 세상 바깥의 양복쟁이를 연기한 윌 패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후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시무 리우의 능청스런 연기 역시 영화에 잔재미를 더하고.


레디컬 페미니즘을 내려놓고, 마초이즘은 전복시킨 후에 스스로 선택해 얻어낸 나다움. 세상이 꼭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될 필요는 없듯이 당신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당신을 스스로 먼저 구분하고 규정 지을 필요는 없다. 분홍 자동차 이후 보트를 탄 뒤에 우주선을 거쳐 캠핑카, 2인승 자전거, 롤러블레이드로 옮기고 또 옮겼던 바비와 켄처럼, 당신도 그냥 스스로가 어디로 무얼 타고 어떻게 흘러가든 자기 자신을 굳건히 응원하시길. 그저 앞을 향해 페달만 열심히 밟으시길. 뭐, 앞이 싫다면 아무 곳이나 다른 방향으로 전진해도 되고. 


MV5BMDBkODkxMzYtZmZlOS00YjJmLWI1MDctNmRiNzZmOWQ2OTFjXkEyXkFqcGdeQXVyMTkxNjUy.jpg <바비> / 그레타 거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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