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가장 젊은 나이

<스크림>

by CINEKOON


매번 말하는 건데, 나는 공포 영화를 잘 못 보고 그래서 안 본다. 원체 겁이 많아서 그렇다. 그렇다보니 지금까지 봐온 영화들 중 장르적으로 구분하면 가장 적게 본 장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것도 들쭉날쭉임. 명작 중의 명작이라 칭송받는 <엑소시스트>는 안 봤는데 또 <나이트메어>나 <13일의 금요일>은 봤음.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J-호러 <링>이나 <주온>은 안 봤는데 또 <컨저링> 이런 건 봤음. 내가 봐도 참 알다가도 모를 기준이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래서 <스크림>도 이제서야 처음으로 봤다. 그 유명세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공포 장르의 영화였다보니 애초부터 내게는 논외의 영화였걸랑.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좀 놀랐다. 재밌고 잘 만든 영화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젊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사회에 고일대로 고여버린 어른들이 그 아랫세대 보고 MZ다 뭐다 하는 거 나도 꼴같잖아서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어쨌든 그들 표현을 빌어 요즈음의 MZ 세대에게 <스크림>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영화처럼 보였다. 수많은 장르들 중에서도 유독 그 컨벤션과 클리셰가 확고부동한 호러 장르를 비틀대로 비틀면서도 또 유머러스하게 갖고 논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전개나 반전은 영 설득력이 있다. 요즘 개봉해도 먹힐 법한 이 영화가 1996년 영화, 지금으로부터 무려 30여년 전 영화라니! 그런데 감독 이름을 보고는 더 놀라 뒤로 자빠질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뭐? 웨스 크레이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웨스 크레이븐이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앞서 말했지만, 공포 영화를 선호하지 않음에도 헤드 라이너 프레디 크루거의 악몽 페스티벌이라고 할 법한 <나이트메어>는 좋아해왔다. 완성도와 더불어 설정이 참으로 참신했었걸랑. 때문에 내게 있어 웨스 크레이븐은 <나이트메어>를 연출했던 공포 영화계의 고인물 같은 이미지였던 것이다. 한때 완성도 높은 공포 영화를 만든 웨스 크레이븐이었지만, 역사 속 세상만사 모든 것이 으레 다 그렇듯이 그의 참신했던 면모도 어느 순간 고착화되어 그는 이른바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게 사실 당연한 거지. 패기 넘쳤던 청년들도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엔 보수적인 노인들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웨스 크레이븐은 불사조 마냥 스스로를 불길 속에 던진 뒤 다시 회춘해 되살아났다. 1996년의 <스크림>이, 과연 그 불길이었다 할 만하다.


그러니까, 이토록 젊디 젊은 영화 <스크림>을 연출했을 당시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가 벌써 50대 후반이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나이트메어>를 통해 1984년에 공포 영화계의 신성으로 우뚝 선 바 있었다. <나이트메어>와 <스크림> 사이에는 무려 12년이라는 갭이 존재한다. 참신하되 왕도적인 전개로 공포 영화계의 호러마루 자리에 올랐던 사내가, 이후 거의 예순이 다 되어 장르의 기존 공식을 모두 비틀어버린 젊은 영화로 부활하다니. 이건 영화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서 실로 존경할 수 밖에 없는 행보다.


좋아하는 데에는 때때로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존경하는 데에는 보통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그래서 나는 웨스 크레이븐을 좋아하는 감독이라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존경하는 감독이라 말할 순 있을 것 같다. 본인과 선배들이 함께 쌓아온 전통을 스스로 부수고 비틀어버린 감독. 예순살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만든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젊은 영화. 대개들 공포 장르를 가장 젊은 장르라 일컫는데 아무래도 그게 사실인 듯 싶다. 


scream-1996.jpg <스크림> / 웨스 크레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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