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모나>
그 어떤 판타지 보다도 리버럴하다. 금발의 잘생긴 백인 남성 캐릭터가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관임에도, 유색인종으로 보이는 국왕에 의해 왕국은 다스려진다. 왕국을 지킨다는 기사들 중 대부분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여성이고, 심지어 주인공인 발리스터는 동성애적 성 정체성을 가진 게이로서의 본인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마치 애시당초 '편견'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구는, 이토록 평등한 세계. 헌데 정말이지 무섭게도, 이러한 세계관 안에서 조차 계급과 그 갈등은 현실이다. 스마트폰과 공중부양 자동차가 대중화된 시대임에도 앞서 말했던 것처럼 왕과 왕족이 존재하는 군주제로써 국가 권력이 돌아가고, 평민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주인공은 기사가 되는데에 불우이웃 특채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큰 반대 여론을 직면한다. 당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심지어는 동성의 연인을 사랑한다해도 상관 없는 세계.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출신과 그 계급만큼은 꼬리표이자 족쇄가 되는 세계. <니모나>는 그런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주제로써의 재료는 '계급 갈등' 하나로 시작됐겠지만, 결국 영화는 우리가 실제 사는 세상 곳곳에 만연한 모든 종류의 혐오와 편견을 향해 그 가지를 뻗어나간다. <니모나>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혐오'와 '편견'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높디높은 '장벽'을 그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장벽 안에서조차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갈라치기 해대는 인물들을 묘사해냄으로써 현대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여기에 비록 여성으로서 상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 높디높은 장벽을 유지하고 백성들 사이를 혐오로 이간질해내는 악당이 금발을 가진 권력가란 점에서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 자리에 있었던 금발의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된다.
물론 이같은 주제는 현실 세계에 있어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신선도만 놓고 따져보았을 때, <니모나>의 주제가 이미 많이 되풀이 되었던 종류의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해당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던 영화들은 이미 많았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일 것이다. 더불어 해당 주제를 공유한다는 사실 외에도 두 영화엔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애니메이션이란 점부터 시작해 '드래곤'의 이미지를 활용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위협적인 존재로 오해받고 있단 설정 역시 똑같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면 남성 주인공이 신체적 장애를 갖게된다는 점 역시 동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모나>는 자신만의 개성있는 스타일로 관객들에게 또다른 독창적 재미를 준다. 클로이 모레츠가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왔던 이미지의 일부를 그대로 투영한채로 연기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 니모나는 그 자체로 너무나 매력적이다. 리즈 아메드가 연기하고 있는 발리스터 또한 마찬가지고. 그리고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와 그 후속작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만큼은 아니지만 때때로 팝스럽고 또 때때로 비디오 게임, 만화책 같기도 한 작화 스타일이 너무나도 재미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느냐 만큼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리느냐일 것이다. 그 점에서도 <니모나>는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그 세계관이 그렇다. 왕국을 지키는 기사들이 주인공인 만큼, 영화는 명백하게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띈다. 하지만 여기에 SF적 속성을 가미하여, 가끔은 <블레이드 러너>처럼 보이기도 하는 세계를 <니모나>는 창조해냈다. 비록 원작의 분위기를 이어받은 것이라고는 해도 그 자체로 <니모나>의 시각 스타일은 대단히 돋보인다. 여기에 이야기의 전환이 빠르단 것도 큰 강점.
언젠가 기예르모 델 토로는 말한 바 있다. 무릇 감독이란,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때때로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 요소들을 새롭게 배열해내는 사람이라고. 뻔한 이야기에 뻔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그런 요소들을 최선다해 조율해낸 개성적 스타일. 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니모나>는 썩 재미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