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생각해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재난 또는 생존 영화엔 종종 규율화된 거대 생존 그룹이 등장해왔다. <더 로드>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인육 사냥꾼들이 있었고,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에는 임모탄 조를 중심으로 규합된 워보이 연합이 존재했지. 생존과 안전, 번영이라는 미명 하에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철저히 규율화된 그룹. 그런데 그들은 항상 영화 속에서 안타고니스트일 뿐이었다. 소수 정예로 구성된 주인공 무리에 맞서고 또 그들에게 장애물 역할을 해주는 악당들로서만 등장해왔다고. 바로 그 지점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주 조금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관점을 옮겨보면 어떨까?-, 라는. 그렇게 규율화된 거대 생존 그룹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프로타고니스트가 되었고, 그로인해 이 영화는 기존의 재난 생존 영화들 보다 인간의 심연으로 아주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공은 원작이 되는 웹툰의 것일 테다. 하지만 리메이크된 영화로써 <콘크리트 유토피아> 또한 제 역할을 다 해냈다고 보여진다. 그렇게 옆으로 조금 옮겨진 관점은 이 재난 생존 영화에 비록 거창하게 들릴지라도 인류의 전체 역사를 다시금 상기시키게끔 만드는 에센스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니까,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항상 그래왔다. 첫 시작은 일견 논리적이고 타당해보인다. 이 아파트는 누구의 것이지? 전세든 월세든 매매든 당연히 입주민 내지는 집주인의 것이지. 그리고 그 사실은 불가항력적 재난이 닥친 이후라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저 바깥의 세력들이 같이 좀 부대끼며 살아보잡시고 우리네 아파트를 침범해 들어온다. 인간으로서는 당연히 그들을 내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본인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니까. 게다가 심지어 그 결정도 불도저 마냥 그냥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모두의 생각을 짧게나마 들으며 투표로 도출한 결과 아닌가! 아-, 민주주의! 이게 모두의 뜻이야! 우리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옳은 생각을 하고 있어!
이같은 영화의 도입부와 그 일견 타당해보이는 결정이 영화의 후반부까지 불러온 나비효과는 인류 역사 전체에 데자뷰를 드리운다. 애초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국민들이 느꼈던 생각과 감정도 그런 것이었다. 나라가 싸그리 갈려나가버린 이후, 패전국으로서 승전국에게 지불해야할 거대한 액수. 요동치는 물가. 그리고 이런 와중 눈치도 없나 싶을 정도로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온 이민자들. 그런 독일 국민들 앞에 콧수염을 기른 한 영웅이 멋드러진 연설을 하며 깃발을 흔들었다. 우리 먹고 살기 힘드니 저 이민자들을 내쫓자고. 그리고 우리만의 강대한 국가를 만들자고. 그런데 알고보니 그 콧수염 난 영웅도 100% 아리아인인지는 확언할 수 없었던 전개 또한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비단 나치 독일과 제 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이런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흐름은 인류 전체 역사의 어디에나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종류의 범용성을 갖고 있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흐름이 곧 인류의 흐름이고, 또 그게 곧 인간의 속성이란 말 또한 성립한다. 아, 결국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인류에겐 구원의 여지가 더는 없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뻔하더라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에 대한 응당 당연한 해결책 역시 제시한다. 홀로 곧게 우뚝 서 있던 황궁 아파트만이 생존의 유일한 답인 줄 알았던 사람들. 하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건 아예 옆으로 누워버린 아파트에서의 공동체적 삶이다. 꼭 혼자 우뚝 서서 배타적으로만 사는 것이 유일한 정답은 아닌 것이다. 거기엔 비록 우뚝 서지 못하고 누워버렸으나, 대신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 역시 길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극중 명화는 자신을 구해준 다른 생존자 그룹의 사람들에게 한 질문을 받는다. "황궁 아파트, 다른 사람 잡아먹는 무서운 곳이라던데 맞아요?" 그리고 이에 대한 명화의 대답은 그 질문에 대한 긍정이나 "그 곳은 지옥이었어요." 따위의 뻔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평범하도록 당연한 지옥. 특이하고 특별한 누군가가 벌인 짓이 아니라, 우리 중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일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렇게 인류의 역사와 우리네 마음 한 켠을 쿡쿡 찔러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