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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Dec 12. 2023

똘똘 뭉치는 히스패닉 수퍼히어로

<블루 비틀>

이젠 '정치적 올바름'이란 PC 요소를 대화 주제로 삼기에도 조금 지겨워진 상황이지만, 주인공의 인종적 설정이 영화의 세부 설정에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블루 비틀>은 썩 흥미로운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일 터다. 애시당초 '수퍼히어로'란 컨셉 자체가 '나' 이외에 하나의 정체성을 더하는 혼란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이 어떤 인종인지 역시 당연하게도 중요해진다. 


수퍼히어로 장르의 역사에 있어, 흑인 수퍼히어로의 개념은 <블레이드>가 포문을 열고 <블랙 팬서>가 폭발시켰다. 동양인 수퍼히어로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통해 이제야 조금씩 깨어나는 추세고. 그리고 이들에 이어, <블루 비틀>은 히스패닉 수퍼히어로를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해낸다. 물론 이 역시 할리우드의 흥행 기원용 및 생색내기용이란 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할리우드가 진정으로 히스패닉 수퍼히어로를 원했다기 보다는, 그저 그게 돈이 될 것이란 계산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블루 비틀>은 히스패닉 수퍼히어로로서 우리를 찾아왔다. 진실은 다를지언정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인종적 관점에서, <블루 비틀>은 분명 흥미로운 부분들을 우리에게 제공해낸다. 주인공 수퍼히어로의 시크릿 아이덴티티에 관한 설정이 해당 인종의 문화적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 말이다. 뭐, 이걸로 장르 전체를 다 일반화 해가며 설명할 순 없겠지만, 스파이더맨이나 수퍼맨 같은 백인 수퍼히어로는 자신이 수퍼히어로라는 사실을 보통 자신만 알고 있다. 그들은 여러 이유로 심지어 함께 살고 있는 가족에게 조차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수퍼맨 같은 경우 그냥 백인이 아니기는 하지만. 


반면 동양인 수퍼히어로인 샹치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와 숙적으로서 대립하지. 그러니까 할리우드가 보는 동양의 가족사는, 일종의 지고지순한 대립이다. 가족으로서의 정이 있되, 자식은 부모와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고로 자식에게 있어 부모, 특히 아버지는 넘기 힘들지만 언젠가는 넘어야할 태산처럼 많이들 묘사된다. 애초 아버지와 아들 사이 갈등으로 가장 유명할 영웅 신화 <스타워즈> 또한 비록 그 주인공들이 백인이기는 해도 주요 모티프가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들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역시 거시적으론 동양적 정체성에 기인하고 있다 봐야겠지. 


헌데 <블루 비틀>의 주인공인 하이메는 수퍼히어로로서 처음으로 각성하는 모습을 온 가족들 앞에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의 가족들은 하이메를 응원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함으로써 힘이 되어준다. 이것조차 인종적 선입견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가족적 문화를 중시하고 그들끼리 뭉치는 전통을 이어가는 히스패닉 사람들의 수퍼히어로로서 이는 분명 흥미로운 설정으로 작용한다. 가족 앞에서는 비밀이 없고, 온가족은 그를 위해 똘똘 뭉친다는 이야기. 우리는 그런 히스패닉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이미 봐왔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그래서 백인들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백인 수퍼히어로들은 이미 많으므로, 그 안에서 여러 설정들을 만들어볼 수 있다. 사실 아버지와 일종의 왕위를 두고 대립하는 <샹치>의 설정 역시 백인들은 이미 <토르>를 통해 한 바 있었지. 그러니까 굳이 따지면, 다른 인종들에 비해 백인들은 팔레트 내 여러 칸을 쓸 수 있는 느낌. 칸이 여러개이니 색도 여러 색을 다양하게 쓸 수 있겠지. 그에 비하면 다른 인종들은 아직 칸이 하나거나 두 개 밖에 안 되는 상태. 그러다보니 색도 일단 제일 유명한 색 밖에 먼저 쓸 수 없는 거고. 그리고 그건 여성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요즘 나누기엔 조금 지겨운 이야기로 잠깐 빠지긴 했지만, 그 외에도 <블루 비틀>엔 적당한 액션과 적당한 모험이 깃들어 있다. 이는 충분히 즐길만 했고, 그래서 더 아쉬웠다. 현재 이 영화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과 더불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니까. 새롭게 런칭될 시리즈 앞에서, 일종의 창고정리 당한 영화이니까. 다만 이랬든 저랬든 영화에 새겨진 인종적 문화가 나는 썩 흥미로웠던 것이다. 


<블루 비틀> / 앙헬 마누엘 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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