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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Dec 12. 2023

은퇴가 하고 싶어요?

<더 킬러>

데이비드 핀처가 살인청부업자 이야기를 한다고? 어딘가 어색하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에이리언3>로 데뷔한 이래, 영화 속에서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또 죽여왔지 않은가. 그의 영화들은 때로는 외계 살인 병기의 이중 턱과 산성피를 빌려, 또 때론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의 광기를 빌려 참으로 여러 사람들을 죽여왔다. 그런데 가만... 사람 죽어나가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서 그렇지, 그가 정작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니 없다. 그렇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이제와서 전문 살인청부업자 이야기인 걸까? 


그러다보니 이건 결국 데이비드 핀처의 직업 탐구기였던 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 거다. 그 누구도 <세븐>이나 <나를 찾아줘>의 살인범을 두고 직업인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초 살인범이란 직업이 될 수 없기에. 그렇다면 살인청부업자는 어떨까? 물론 이것 역시 사람을 죽이는 비윤리적인 일이고, 당연히도 일반적인 직업이라 부르기 난감하지만. 그래도 직업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란 사전적 개념으로 접근해보자면 아무래도 연쇄살인범 보다는 전문 살인청부업자가 조금 더 직업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 관점에서, <더 킬러>는 전문 살인청부업자란 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의 직업관과 그 근무 과정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더 킬러>에서 중요한 부분은 타겟을 명중시켰을 때의 쾌감보다 그를 저격하기 위해 오래도록 잠복해 있는 그 지리멸렬한 순간이며, 근접에서 멋지게 상대를 제압했을 때의 태보다 그 모든 게 끝난 직후의 피로함이다. <존 윅>이나 <테이큰>의 주인공이 멋지게 해냈던 그 이면을 <더 킬러>는 참으로 지지부진하게도 다룬다. 물론 그 지지부진함이 데이비드 핀처의 의도였던 것 같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또 생긴다. 이게 직업 탐구 영화라면, 왜 자기 업무에 실패하는 직업인이 주인공인 건데? 그 부분에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전문 살인청부업자가 임무에 실패하고, 그로인해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기관에게 쫓기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수도 없이 되풀이 되어 왔으므로 이미 익숙하다. 헌데 그걸 다룬 그 어떤 영화도, 그 임무 실패를 오프닝에서 보여주진 않을 것이다. 모름지기 주인공을 관객에게 첫 소개할 때는 멋진 모습으로 소개해야하는 것이다. 그렇담 <더 킬러>의 주인공 킬러도 일단 첫번째 임무에서는 성공했어야 했지. 그러나 데이비드 핀처는 끊임없는 자기번뇌로 임무를 준비하던 킬러가, 그 준비가 무색하게끔 참으로 어설프게 실수하는 장면으로 그를 첫소개한다. 등장하자마자 실패하는 전문 직업인. 이건 대체 또 무슨 의미란 말이냐. 


그 오프닝부터 시작해 영화의 엔딩까지를 모두 보고 차분히 복기해보니, 이 영화는 결국 핀처가 그려낸 '은퇴 희망기'가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났다. 맞다, 주인공 킬러는 은퇴가 고팠던 사람인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그 이전 시점 속에서 그 킬러는 분명 뛰어난 직업인이었을 것이다. 허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듯, 그도 어느 순간 이 모든 걸 내려놓은채 여생을 즐기고 싶단 마음이 든 거지. 고로 오프닝의 그 실수는 어찌보면 의도된 실수였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엔딩까지 보고나면 결국 그가 은퇴에 성공했고, 또 나머지 여생을 앞으로 차분히 즐기리란 게 예상된다. 결국 이 영화는 한 직업인의 은퇴 플랜이었다. 그리고 또 따지고 보면, 설사 실력이 출중했던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 주인공 킬러에게 이 살인청부업이란 직업은 적성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끊임없이 되뇐다. "예측하되 임기응변 하지마"라고. 근데 실은 사람이란 게 자신에게 없는 걸 욕망하기 마련이거든. 예측하되 임기응변 하지말라는 다짐은 곧, 그가 평소 예측하기를 어려워하거나 싫어하고 또 임기응변 하는 걸 더 선호한단 소리처럼 들린다. 게다가 임무 시작 전엔 손목에 찬 심박기로 자꾸 자신의 심장박동수를 확인하는데, 진짜 고수였다면 애초 그런 장비가 필요할 정도로 심박수가 날뛰지도 않았을 것. 


그런고로 <더 킬러>는 한 전문 직업인의 퇴사 희망기였다는 게 맞는 것 같다. 핀처는 왜 이런 영화를 찍었을까? 타란티노가 열번째 영화를 연출하면 은퇴하겠다 밝혔던 것처럼, 핀처 역시 이젠 이미 모든 걸 다 이뤘다 여기는 것일까? 이제는 다음 영화를 한 편 정도 더 만들고 은퇴 의사를 밝힐 셈인가? 우리는 아직 그에 대한 답을 모르지만, 미래에 핀처의 전체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며 찬찬히 뜯어볼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 때 <더 킬러> 속 그의 속셈이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더 킬러> / 데이비드 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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