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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Oct 19. 2023

억지 비극으로 내몰린 사람들

<화란>

궁지에 몰린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까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그래도 저것보단 나을텐데-라고 혀를 끌끌차며 정작 그 누군가의 뒷사정엔 별 관심 없는 이들이 우리 사회엔 엄연히 존재한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나아질 것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옳은 말이고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와 '성실하게' 살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래, '내몰린다'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화란의 연규가 딱 그렇다. 동급생 머리를 돌로 찍어서 학교에 못 나가게 된데다 합의금으로 300만 원까지 갚게 된 건 연규 탓이 아니느냐고? 물론 맞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동급생이란 녀석은 연규와 함께 사는 여동생 아닌 여동생을 괴롭혔지 않은가. 아, 그럼 학교 말고 집에서의 사정은 좀 낫냐고? 집안은 가난한데 새 아빠랍시고 들어온 남자는 낮엔 괜찮다가 본인이 지킬 박사라도 되는 것인지 술만 마시면 하이드 같은 괴물이 되어 야구 방망이로 연규를 때린다. 여기에 엄마는 그걸 무기력하게 지켜만 볼 뿐이고. 그러니까 연규야말로 그 내몰릴대로 내몰린 누군가다. 이럴 때 연규가 유일하게 가진 재산이랄 건 젊음 밖에 없지만, 그 젊음이란 것도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젊잖아!'의 활기와 '앞으로 오랫동안 더 이런 식으로 살아야만 하는 구나'의 탄식 사이 그 어딘가. 


그리고 그 앞길에 선 선배로, 치건이 있다. 치건 역시 무심하다 못해 자식을 방치하기까지 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한 번의 죽을 위기를 거쳤으며, 그나마 귀인인 줄 알았던 남자는 그를 자신의 수족 부리듯 하며 어둠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현실에 순응하며 잔뜩 웅크린채 살아가곤 있지만, 치건은 그 누구보다도 죽고 싶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하다 겨우 살아나온 걸 두고 다시 태어나 두번째 삶을 사는 거라 여긴다고 했으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나. 어쩌면 치건은 차라리 그 때 그냥 일찍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라 여기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시키면 해야 하는 세계가 있다. 기성세대가 하라면 그저 해야만 하는 세계. 그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새 아빠면 그냥 가만히 맞고만 있어야 하는 거고, 또 그게 조직의 큰 형님이라면 시키는대로 누군가의 복부에 칼도 쑤셔넣어야 하는 거다. 삶의 의지를 애저녁에 잃은 치건은 그 세계에 가만히 복종했지만, 연규는 그게 잘 안 됐다. 복종하려고 노력하다가도, 끝내는 그 모든 걸 끝내기 위해서 발악해봤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것은 함께 화란으로 떠나고 싶었던 누군가의 죽음 뿐이었지만. 


영화의 묵직한 분위기가 좋고, 주연을 맡은 홍사빈과 그 옆의 김형서가 좋다. 정재광은 더 좋고! 더구나 송중기는 지금까지 보여왔던 모습과 정반대의 이미지로 승부수를 띄웠는데, 이 역시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어울렸다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란>은 그 묵직한 비극을 작위적으로 도출해낸 것 같단 생각을 계속 하게끔 만드는 영화다. 영화가 빚어낸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의 파탄을 맞이하는 인물들의 묘사는 납득이 된다. 하지만 흡사 그 '빚어낸' 듯한 비극의 작위성이 자꾸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조금 심하게 말해 영화가 비극 포르노, 불행 포르노 같단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친구 또는 형제 같았던 두 사람이 모종의 사건을 통해서로 등을 돌리고 멀어진다-라는 전개를 평소의 나는 좋아해왔다. <화란>의 연규와 치건도 딱 그 구도인데, 마지막에 서로 뒤엉키는 장면이 힘을 얻기 위해선 그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마음을 주었었는지가 더 잘 표현됐어야 했다고 본다. <화란>이 그걸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지금 수준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텅 빈 도로 사거리에서 방황조차 못한채 멈춰선 불행한 젊은 청춘. 그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으나, 아무래도 영화 전체가 억지 비극 같은 생각은 피할 수 없었다. 


<화란> / 김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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