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사실 이야기는 무척이나 단순한 영화다. 배경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망이 끊어진 상태에서, 대공격을 준비중인 아군의 연대에 편지 한 장을 부쳐야 한다. 그 편지 한 장을 전해야만 하는 한 병사의 이야기. 뭐, 이런 극한 상황 속의 이야기일수록 단순함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왜 좋았냐... 바로 주인공의 태도 변화와 그로인한 후반부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스코필드는 이 임무에 그야말로 차출되었다. 그것도 상관의 강압적인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전우이자 친구인 블레이크의 선택으로. 그래서 그가 중반부에 묻는다, 블레이크에게. '왜 하필 나였냐'고. 거기에 블레이크는 아무 이유 없었다고 대답한다. 별 것 아닌 임무일 줄 알았다고. 그래서 너를 고른 거라고.
상관이 블레이크를 고른 이유는 일견 이해가 된다. 지도에 능통하니 찾아가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겠고, 무엇보다 찾아가야할 그 곳에 친형이 복무하고 있으니 중간에 탈영하거나 다른 곳으로 샐 염려도 없다. 친형 목숨이 걸렸는데 도망가겠어? 그야말로 능력과 동기 면에서 출중했던 거지. 허나 스코필드가 선택된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었다. 그냥 블레이크가 골랐으니까, 블레이크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까 같이 보낸 거다.
때문에 스코필드는 언제든지 임무를 그만둘 수도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었지. 허나 스코필드는 중반부의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블레이크 보다 더 강한 의지로 달린다. 그리고 바로 나는 거기에서 이 영화에 감복했다.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샘 멘데즈는 삶의 약동까지 묘사해 내었다. 익사해 퉁퉁 불은 시체들이 강 하류를 범람할 때, 스코필드는 그 시체들 위를 지나며 일견 끔찍한 듯 자지러지게 몸을 떤다. 그게 나는 죽지 않으려는, 죽음과 구별 되려는 삶의 처절한 태동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이 한데 모여 분출되는 곳. 그게 바로 저 사진 속의 장면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울 수 밖에 없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이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뛰는 스코필드에게서 삶의 약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기에 <1917>은 그냥 촬영이 뛰어난 영화, '우와, 이 영화는 두 시간 내내 한 테이크로 촬영 됐대!'라는 칭찬 이상의 것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촬영과 조명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버리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 <1917>은 그래서 좋은 영화이지, 단순히 멋있게 잘 찍었기 때문에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삶에 대한 숭고한 의지로 시간을 내달리는 영화. <1917>은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