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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n 13. 2024

늦은 듯 늦지 않은 듯 도착한 영화

<원더랜드>


이젠 떠나 보내야할 사람을 차마 보내지 못하고 끝까지 붙잡고 있겠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죽은 사람, 또는 죽음에 준하는 상태에 빠진 사람을 대신할 가상 세계 원더랜드 속 AI 대체품. 그 시뮬라크르의 굴레에 빠져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앞에서 감정의 위기에 몰리는 사람들. 그렇게 <원더랜드>는 AI가 우리네 삶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이 현재의 시점즈음에, 한 번쯤은 미리 예습해 보아야할 문제들을 선명하게 남겨낸다. 


죽은 사람을 원더랜드 속에 복제해내 소통한다는 바이리의 에피소드도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아무래도 정인과 태주의 에피소드가 조금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긴 했다. 어떤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태주, 그리고 그런 그를 그리워하며 원더랜드 속 태주와 하루하루를 공유하는 정인. 그러나 이후 병상에 누워있던 진짜 태주가 정신을 되찾으면서, 정인은 자연스레 그와 원더랜드 속 가짜 태주를 비교하기에 이른다. 따지자면 당연히 현실 세계 속 태주가 진짜 태주이겠지만, 정인이 조금 더 원하는 것은 거짓이긴 해도 자신에게 온전히 모든 것을 다 맞춰주는 원더랜드 속 가짜 태주. 사실 이 진짜와 가짜 사이 딜레마는 비단 AI로 빚어질 미래의 것만은 아닐 터다. 그게 연인이든 친구든, 아니면 하다못해 직장 동료이든 간에. 우리는 모두 상대가 그의 진짜를 내보일 때보다 나에게 맞춰줄 때를 더 원하지 않는가. 그의 진짜를 보고 싶기 보다는, 설령 그것이 가짜이더라도 내가 원하는대로 나를 대해주는 모습을 조금 더 추구하지 않는가. 


이처럼 <원더랜드>는 분명 흥미로운 지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전체가 <블랙 미러>의 어느 시즌 어느 에피소드에선가 이미 다 봤음직한 소재와 주제들로 채워져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2020년에 제작을 완료했으나 2024년인 올해가 되어서야 뒤늦게 개봉된, 이른바 타이밍 놓친 '창고 영화'라 하더라도 그 소재와 주제들이 이미 여러 선배 SF 작품들에서 많이 다뤄졌던 요소들이란 건 부인할 수 없을 테니까. 거기다 자신이 인위적으로 빚어진 AI란 걸 전혀 몰랐던 바이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눈을 뜨고 바깥의 현실 세계와 직접 소통하려고 하는 장면. 여기서 원더랜드 사의 해리가 결부되기도 하는데, 전반적으로 <소스 코드>의 결말부와 유사한 감성을 재현해보려 했던 건 아닌가 의심하게 되기도. 


하지만 다른 걸 다 떠나, 바이리의 에피소드와 정인 & 태주 에피소드 외에 왜 해리와 현수 이야기가 들어갔는지 잘 모르겠다. 원더랜드 사측 관점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러려면 이 서비스의 제작자이자 운영자로서 해리가 겪는 여러 사회적 윤리적 딜레마들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재미적 측면에서 역시 해리와 현수의 에피소드는 무척이나 아쉽다. 초반에 복선처럼 깔아두었던 두 사람의 로맨스는 결국 이후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고, 그렇다고 현수가 가진 출생의 비밀이 영화 전체와 잘 어우러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아니할 수는 없었다. 과연 나는 저 서비스를 신청할 것인가. 나만 살아남았을 경우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만약 내가 죽는 경우라면... 아마 홀로 남아있을 상대의 매해 생일마다만 작동되는 조건이라면 신청해볼 법도 한 것 같다. 나 자신을 남기고 싶단 욕심보다는, 그렇게라도 얼굴 한 번씩 비춰주며 상대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기에. 


<원더랜드> / 김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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