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또 그 소설은 실제로 벌어졌던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고 한다. 참고로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은 20세기 초부터 말까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젊은 여성들을 강제 노역 시키고 착취 하는 등 인권유린을 자행했던 사건이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삶이 얹어놓은 무게에 시종일관 짓눌리고 있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킬리언 머피가 표현해내고 있는 빌 펄롱은 석탄 판매업자로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다. 그를 그토록 성실히 일하게 만든 건 아내와 네 딸들. 반대로 그 하루하루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주는 것 역시 아내와 네 딸들이다. 그러니까 빌에게 있어 가족은 자기 삶의 근거이자 고통인 동시에, 또 목표이자 책임이다.
그런 빌을 괴롭히는 것은 비단 노동 뿐만이 아니다. 그의 과거와 그 기억이 자꾸만 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넘어진다. 어린 시절 아버지 없이 자랐던 기억. 그나마 있던 어머니도 자신의 눈앞에서 돌연 쓰러져 사망한 기억. 산타에게 그토록 원하던 직쏘 퍼즐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지 못했던 기억. 아무 연고도 없는, 그의 아내 말에 따르면 그저 팔자 좋았던 귀부인에게 간택되어 어색하게 성장했던 기억 등등. 그 모든 기억들이 빌을 괴롭히고, 끝내는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의 진실을 목도하고 그 앞에서 번민하던 빌을 잠시나마 무릎 꿇리려 한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따지고 드니, 빌의 과거 기억 속에 꼭 나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없었지만 잠시나마 어머니가 있었고. 또 그 아버지의 역할을 일정부분 대신해준 이웃 아저씨가 있었다. 그리고 그 팔자 좋았던 귀부인은 어쨌거나 조실부모한 빌을 굳이 후원해 성장시켜주지 않았던가. 동전에도 양면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역시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각자의 인생이니 본인이 마냥 괴롭게만 생각하겠다면 굳이 말릴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그 반대편에 움트고 있는 기쁨의 해석에 대한 여지 역시 분명히 있다는 것.
과거 기억 속 자신을 붙잡아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빌은 주위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격하할 수도 있겠지만, 빌은 길을 잃은 듯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굳이 차를 멈춰 주머니 속에 맴돌고 있던 잔돈들을 건넸다. 그리고 그 사소한 행위는 결국 막달레나 수녀원내에서 고통받고 있던 한 소녀의 인생을 구해낸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 이후 이야기들을 굳이 보여주지 않고 있다. 술집 주인의 말마따나, 그 이후 빌은 분명히 고통받았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자신의 딸들 역시 수녀원에게 밉보여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영화는 굳이 거기까지 보여주진 않는다. 그 이후에 벌어질 게 자명한 엄청난 일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엔 이처럼 사소한 행위 하나를 소중히 보여주는 마음씨.
특유의 검은색으로 만지는 우리들 손을 더럽히지만, 동시에 우리가 따뜻하게 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는 석탄처럼. 우리들의 과거는 언제나 양가적이다. 괴로운 면과 편안한 면, 슬픈 면과 기쁜 면, 나쁜 면과 좋은 면. 그 둘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각자 자신의 몫이다. 다만 그 사소해 보일 선택이 인생 전체에 대한 우리네 태도를 좌지우지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