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
영화의 오프닝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초월적인 능력들을 한꺼번에 지녔던 불멸의 존재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득히 먼 고대부터 살아오며 여러 역사들에 결부되어 온듯한 그. 정말로 지상에 강림한 신이었던걸까. 하지만 그 신은 불멸의 삶에 지독히도 이골이 났던 것 같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죽음에 직면한 이후 자신의 능력들을 다섯사람에게 전이시키고 사라졌다.
기초 설정만 들으면 어마어마하게 거창한 이야기고, 그 분위기 또한 심히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위대한 신의 엄청난 능력들을 골라 나눠받은 건 놀랍게도 심각하리만큼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과거의 실수에 발목잡혀 아직까지도 억지로 미소짓고 사는 야구르트 아줌마, 친구의 글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사 바로 업계에서 퇴출 당한 시나리오 작가, 각막 이식으로 얻어낸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겨우 도박놀음하는 데에만 쓰고 있는 비호감 백수, 사람은 좋은데 얼은 또 빠져있어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있던 신자, 그리고 할 줄 아는 건 태권도 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약한 심장으로 포기하게 생긴 태권 소녀까지. 이 다섯명은 우월한 초능력을 얻었지만 여전히 그 자체로 하찮다. 세상에 마상에 하필 신의 능력을 얻은 게 이런 루저들이라니, 아이고 이제 대한민국은 다 망했어!
초능력자들이 한데 모여 팀을 이뤘다는 점에선 당연히 <어벤져스>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걸 또 한국적으로 이식했다는 측면에서는 <무빙>이 연상된다. 하지만 상술했듯 <하이파이브>의 가장 큰 가치는 그 다섯명이 모두 루저라는 데에 있다. 세상을 구해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심지어 결말은 그들의 활약을 칭송하는 무대 위 따위가 아니라 평범하고 딱딱한 계단 위에 쭈그려앉으며 매듭 지어진다. 여기에 모두 우월하다곤 했지만 강한 힘과 빠른 속도를 얻은 태권 소녀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들의 초능력들 대부분이 멋없게 그려진다. 초월적 폐활량으로 강풍을 선보이는 지성은 그 능력을 선보일 때마다 더럽게 침을 튀기고, 전자기파를 조작할 수 있게 된 기동은 특유의 손가락 튕기기를 남발하며 흡사 각설이처럼 표현된다. 여기에 모든 능력을 아우르며 강화시키기도 하는 선녀는 그 초능력의 발현이 심히 밋밋하고.
내홍은 있지만 수퍼히어로 팀의 모범이라 할 수 있을 어벤져스나 저스티스 리그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바로 그래서 <하이파이브>의 하이파이브는 곧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상시킨다. 이미 <스윙키즈>를 통해 B급 요소를 키치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노하우를 쌓았던 강형철은 이 가디언즈 오브 코리아, 하이파이브에 주성치식 코드를 첨가해냄으로써 그 폭발력을 강화시켰다. 루저들의 그 이합집산 오월동주는 꽤 잘 된 로컬라이징을 통해 다분히 한국적 정서와 상황으로 변주됨으로써 액션과 코미디를 성공시킨다. 야구르트 카트 추격씬은 그 방면에서 정말 잘 조율된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태권 소녀와 그 아버지의 막무가내 콤비 플레이 액션 장면도 아이디어와 묘사 측면에서 훌륭했고.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이다보니 배우들의 연기력과 매력이 자연스레 중요해지는데, 그 방면에서 <하이파이브>엔 그냥 버리고 넘어갈 배우들이 하나도 없다. 뚱한 표정으로 발차기를 연이어 해대는 이재인의 태권 소녀는 말그대로 이 영화의 심장이고, 여기에 그냥 지나갈 법한 대사도 재미난 톤으로 다 살려버리는 안재홍이 즐겁다. 라미란과 김희원, 오정세는 안정적으로 받쳐주며 영화에 감정적 결을 더하고 유아인은 스스로의 기존 이미지를 재활용하며 극을 이끈다. 그리고 여기에 신구와 박진영이 있다. 아마도 그의 필모그래피 중 <하이파이브>가 가장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 되지 않을까 싶은 신구는 나이를 잊은채 훌륭한 명연을 펼치고, 기대치 않았던 박진영은 2인 1역 중 한 부분으로서 적절하면서도 꽤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하이파이브>에는 배우들 보는 맛이 확실하게 존재한다.
앞서 루저들이 주인공이란 측면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상시킨다 했는데, 다른 측면에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떠올리게끔 만드는 구석이 있다. 뭐랄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하이파이브>에는 모두 순진한 구석이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엔 자칫 우주 전체가 멸망하게 생긴 상황 속에서도 우정과 의리 따위의 가치를 마치 당연한 것인양 대하는 주인공들이 있었다. 그리고 <하이파이브>도 마찬가지다. <하이파이브>의 하이파이브는 여차하면 자신의 능력과 목숨 모두를 잃을 수 있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걱정을 잊지 않는다. 엄청난 전투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도 약선은 능력을 과용함에 따라 자신의 머리칼이 하얗게 세는 것을 걱정하고, 이에 선녀는 오히려 보기 좋고 멋있다며 위로한다. 위압적인 수퍼 빌런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자기 스스로를 소개할 때에도 태권 소녀 완서는 그의 잘생긴 외모를 보고 오빠라 부르며, 이에 그 옆의 지성은 왜 저 사람은 오빠인데 자기는 아저씨라고 부르냐며 징징댄다. 심지어는 악당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로난은 잔인한 지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전에서 뜬금없이 춤을 추는 스타로드를 보며 넋빠진 표정을 지었고, <하이파이브>의 영춘 또한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하이파이브 멤버들을 보며 투정을 부렸지 않은가.
그 나이브한 태도가 나는 좋았나보다. 세상을 모조리 삼키려는 악당에 맞서면서도 서로 친구가 되었음을 더 기뻐하는 그 다섯 사람을 나는 계속 더 보고 싶어졌다. 주성치 코드를 곁들여 사랑스러움을 배가시킨 한국의 가디언즈 오브 코리아. 미즈 마블인 카밀라 칸이 어벤져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처럼, 나도 하이파이브의 열렬한 팬이자 응원자가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