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인가?"

<엘리오>

by CINEKOON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어스름하게 물든 저녁놀이 놀이터의 그네와 미끄럼틀에게 길다란 그림자를 꼬리표로 붙여 드리우고 있었다. 입에서는 모래 맛이 났다. 돌이켜보면 웃긴 일이다. 그 날의 나는 놀이터 모래밭에 딱히 넘어지지도, 그렇다고 더 어릴 적 소꿉놀이마냥 모래들을 잔뜩 퍼담아 밥이랍시고 들이킨 적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을 다 마친 뒤의 나는 그렇게 텅 빈 집을 앞두고 그못지 않게 텅 비어있던 놀이터에서 잠깐이나마 시간을 죽였다. 아직도 왜 입에서 모래 맛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당시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아주 큰 불만은 없다. 있다고 해봤자 다들 으레 갖고 있을 정도의 자잘한 것들이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었던 건 더더욱 아니다. 그냥... 어릴적 나랑은 잘 맞지 않는단 느낌뿐이었다. 나는 다른 이의 생일선물을 고를 때에도 얄궂은 푼돈으로 어떤 걸 사야할지 오래도록 고민하는 아이였다. 상상력도 풍부해서, 선물 받은 상대의 표정과 말투가 얼마나 기쁨에 젖어있을지를 어마어마하게 기대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날 제외한 가족 구성원의 다른 모든 이들은 하나같이 다 나와 반대되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고마워하긴 했지만 그 반응이 거대하진 않은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MBTI로 따지면 그들은 하나같이 다 S와 T 같았다. 차라리 그 때도 MBTI가 유행이었더라면 그 어렸던 나 역시 상대가 S고 또 T이겠거니 하며 넘어갔을 텐데. 하지만 그 때엔 MBTI가 뭔지 몰랐고 그 덕에 난 나 스스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밑도 끝도 없는 미스테리'처럼 알쏭달쏭하게 느껴졌었다.


픽사의 29번째 장편 영화이자, 굳이 따지자면 그들의 평작 정도에 불과할 <엘리오>가 내 맘을 사로잡은 건 바로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잃고 고모와 함께 살지만, 그녀를 포함해 이 지구상의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줄리 없다 서둘러 판단해버린 소년. 엘리오는 바로 그래서 우주행을 꿈꾼다. 저 높은 하늘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는 우주란 곳이 그렇게 넓고 또 넓다며? 그렇다면 저 광대한 곳 어딘가 적어도 한 구석쯤은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이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칼 세이건의 말마따나 이 얼마나 큰 공간의 낭비란 말이냐. 그래서 엘리오는 생김새도 모르는 외계인들이 지구로 와 자신을 데려가주길 희망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바람은 그들에 의해 접수되었고.


앞서 이미 말했던 것처럼, <엘리오>는 기존 픽사의 훌륭한 필모그래피 안에선 비교적 평작에 가까운 만듦새를 보인다. 화려하게 수놓여진 외계인들의 사교 모임, 커뮤니버스는 그 자체론 예쁘고 멋진 구경거리지만 기존의 픽사가 선사해온 다른 매혹적 이세계들에 비해선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래도 왕도적인 전개를 취하고 있다보니 거시적인 스토리라인부터 미시적인 플롯에서까지 계속해 예측가능해지는 상황이 생겨 신선함을 잃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사는 우주 관찰과 우주 탐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철학적이고 또 실존적인 질문들 중 하나였던 "우리는 혼자인가?(Are we alone?)"를 지극히 인간사적 관점에서 훌륭하게 번안해낸다.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말에서 '우리'란 인류 전체를 일컫는 지시대명사다. 그러니까 이를 토대로 다시 번역하면 이 질문은 곧 "(이 넓은 우주에서) 인류는 혼자인가?"라는 말이 된다. 허나 어쨌든 "우리는 혼자인가?"란 말은 "우리는 혼자인가?"로 들린다.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인가? 아니잖아. 사실 따지고보면 이미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가 70억일진대, 당신이 혼자일리가 없지 않은가?!


<엘리오>는 그렇게, 이 지구별 위를 유랑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껴지겠지만 실은 아니라는 것.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 엘리오는 그렇게 숱한 모험의 고개들을 넘고 넘어 글로든이란 우주적 새 친구를 사귀고, 그로써 커뮤니버스를 구해내 비로소 다른 외계인들과의 친목을 다져낸다. 그리고 마지막은 당연히 올가 고모의 차례. 조카가 없었다면 꿈을 이뤄냈을 고모는 어느덧 조카를 위해 꿈까지 포기해낸 고모로 엘리오에게 재인식된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달라는 전언. 이는 가족뿐만 아니라 연인, 친구 등 모든 인간 관계에서 통용된다. 그리고 <엘리오>에선 엘리오와 그의 고모 올가, 그리고 글로든과 그의 아빠 그라이곤이 곧 그를 깨닫고 서로를 껴안아준다. 부모이자 보호자로서, 올가와 그라이곤이 각각 엘리오와 글로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장면은 뻔했지만 또 그만큼 강력하게 마음을 때렸다. 여기에 하나 더. 친구가 없어 외롭기만 했던 엘리오와 글로든이 마침내 서로를 만나 서서히 친구가 되는 과정이 극중에선 마치 <아노라>의 라스베가스 몽타주 장면을 어린이 버전으로 변환한 것처럼 바꿔 묘사된다. 이 역시 그 자체로 굉장히 뻔한 장면이었지만, 외롭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고이 접어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 있던 두 어린이가 한껏 신나하며 친구가 된다는 점에 있어서 내겐 또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아-, 정말이지 순수한 사랑과 우정이란 이 광대한 우주 속 유일한 공용어라 할만 하구나.


다른 영화 속 이야기처럼, 만약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로또 번호를 알아내러 과거로 먼저 다녀올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정도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나는 그 때 그 시절의 어린 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 어스름하게 물든 저녁놀로 그네와 미끄럼틀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시간, 입 안에서 감도는 의문의 모래 맛에 아마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을 그 어린아이에게로 다가가고 싶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그 아이에겐 웬 모르는 아저씨가 다가오는 꼴이 무섭고 긴장될 테지만. 그래도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로 조심스레 다가가 그게 무엇이든 앞으로 괜찮아질 테니까 걱정말라 속삭이곤 살며시 안아주고 싶다. 세상 모든 게 어색해 식당 식탁 아래 쪼그리고 앉아 괜시리 신발의 설포만 매만지고 있던 엘리오처럼, 이유모를 외로움에 놀이터 한 켠을 그저 멍하니 기웃거렸을 어린시절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tempImagee7kl5I.heic <엘리오> / 매들린 섀러피언 & 도미 시 & 아드리안 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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