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보편적 선을 추구하고, 항상 옳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며, 그것이 설령 악당 범죄자라 할지라도 직접 단죄하기 보다 사법 체계에 대신 그 처벌을 맡기려드는. 매사 친절한데다 부드럽고, 적과 싸우다가도 누군가가 위기에 빠지면 모든 걸 다 제쳐두고 날아가 그를 구하는. 모든 수퍼히어로들의 조상이라 할 수 있음에도, 21세기 들어 슈퍼맨을 촌스럽게 느껴지게 했던 이유들이 다 거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다크 히어로들에 더 열광해왔다. 복수라는 강한 개인적 동기로 움직이며 적들을 스스로 처벌했던 다크 히어로들 말이다. 아무래도 슈퍼맨보단 그쪽이 더 재밌었던게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에 보편적 선을 믿는 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을지도. 심지어는 잭 스나이더의 손에서 새롭게 리부트 되었던 슈퍼맨조차 민간인 피해를 경시하고 그 데뷔전에서부터 상대 악당을 직접 목 꺾어 죽였으니 말 다 했다.
'착하기만한 주인공은 재미없다'라는 대전제가 21세기의 첫 25년동안 명백하게 존재해왔다 생각한다. 그래서 말초적이고 극단적인 주인공들이 우리를 연이어 찾아왔었지. 그런데 또 그런 상황이 되다보니, 이제는 착하기만한 주인공이 그리워지는 거다. 예컨대 정반합의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수레바퀴라고 해야할까.
DCU를 장편 영화로써 새롭게 개국하는 <슈퍼맨>. 그 연출을 맡은 제임스 건의 제 1원칙은 아무래도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던 듯하다. 고민하고 갈등하는 존재이되, 슈퍼맨 그 자체는 절대 선의 가치를 믿는 인물로서 복권시키는 것. 그런 제임스 건을 통해 빚어진 우리 세대의 새 슈퍼맨은 기본으로 돌아가 보편적 선을 바라보고, 방법론에 있어 최선의 가치를 추구하며, 무엇보다 친절하다. 슈퍼맨은 왜 다시 기본으로 돌아온 걸까. 그에 대한 답도 이미 나와있다. 어쩌면 우리네 삶에 보편적 선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을지도.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단추를 꿰는 영화임에도, <슈퍼맨>이 담아내는 세계관은 다소 거대해보인다. 메타휴먼들이 등장한지 이미 300년이나 된 세계이고, 주인공인 슈퍼맨 역시 활동한지 벌써 3년으로 묘사된다. 그러다보니 별다른 설명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저스티스 갱의 멤버들은 원작을 잘 모를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 심히 당황스러울만도. 만약 원작을 모르는데다 지금까지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를 단 한 편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있다면, 가이 가드너의 그린 랜턴은 잘 이해되지 않을 거다. 호크걸, 미스터 테리픽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여기에 렉스 루터 또한 왜 그리 슈퍼맨에 집착하는지 의문스러워질 뿐이겠지.
하지만 스튜디오의 새 수장으로서 제임스 건의 고민과 전략은 꽤 현실적이었단 생각이다. 어쨌든 수퍼히어로 장르는 지난 1978년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 이래 약 50여년의 역사를 맞이했다. 좋든 싫든 이미 영화 역사에 하나의 퇴적층을 이룬 것이다. 거기다 많은 이들이 수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피로감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뻔하디 뻔한 슈퍼맨의 기원을 또 재설명할 자신은 없었을 테다. 여기에 그린 랜턴이나 호크걸 등에 대한 설명도 생략한 건, 그 퇴적층이 이미 있기 때문에 또 가능한 것이었을 터. 요즘의 일반 관객들이 캐릭터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없다해도 그 내용과 맥락을 아주 이해 못하진 않을 거니까.
때때로 과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액션 연출이 좋고 플롯 또한 구조적으로 잘 짰단 인상. 슈퍼맨의 모험과 클락 켄트 & 로이스 레인의 연애담 둘 사이의 균형이 괜찮다. 무엇보다 로이스 레인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클락 켄트의 애인으로서도 괜찮지만 능력있는 기자로서도 분명히 강조되고 있다. 기자임에도 영단어 철자를 헷갈려하고 그저 슈퍼맨만 바라볼 뿐이었던 마곳 키더의 로이스 레인이나, 스스로 퓰리처상 받은 기자란 걸 자랑하다 결국엔 또 슈퍼맨이 구해줘야할 인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에이미 아담스의 로이스 레인에 비해 레이첼 브로스나한의 로이스 레인은 정말로 기자같다. 물론 이 영화가 <스포트라이트>나 <더 포스트> 같은 본격 기자 영화는 당연히 아니기에, 그 묘사가 아주 심도 깊다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허나 <슈퍼맨> 속 로이스 레인은 피상적일지언정 정말로 기자처럼 표현되고, 슈퍼맨을 떠나 자기 스스로만의 힘으로 사건에 맞서고 또 해결한다. 심지어 슈퍼맨을 구하러 직접 발로 뛰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단순한 트로피걸은 넘어섰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성 안에서 저스티스 갱은 페스티발의 서브라이너 밴드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캐릭터 중 유일하게 아쉬운 건 렉스 루터 정도다. 제임스 건과 니콜라스 홀트의 해석을 존중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작 속의 다양한 모습들 중 보다 더 진지하고, 인간 능력의 첨병으로써 묘사됐던 렉스 루터를 좋아하기에 <슈퍼맨> 속 그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어느정도 재미있고 충분히 괜찮기는 했지만, 그냥 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해야할까. 막판에 크립토에게 물려 공중에서 패대기쳐지는 그의 모습에서 언뜻 <어벤져스>의 로키가 떠올랐거든. 근데 로키는 그렇게 당해도 모양이 크게 빠지는 캐릭터가 아니지만, 렉스 루터는 그러기엔 너무 진지한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보라비아와 자한푸르의 분쟁과 관련된 설정은 꽤 흥미로웠다. 슈퍼맨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딜레마 정도를 최근 DC영화들이 풀어왔지만, 진짜 흥미로운 건 이쪽이라고. 슈퍼맨이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현실에 등장했을 때, 과연 정치적으로는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말이다. 그리고 이쪽에서부터 시작해야 나중에 신과 인간 사이의 딜레마로 더 잘 연결될 수도 있는 거고. 그럼에도 렉스 루터가 자신의 나라까지 세우려했단 설정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좀 깨긴 했다. 하긴, 어느 모 기업가는 화성 가서 자신만의 제국을 세울 거라더라는 농담도 있는 현실이니 아주 비현실적인 건 아닐지도.
극중 로이스는 클락에게 말한다. 우리 둘은 서로 너무 다르다고. 자신은 펑크 록 스타일의 반항아였지만, 당신은 그 반대이지 않냐고. 그러자 클락이 대꾸하지, "나도 펑크 록이예요." 이어 고독의 요새에 누워있는 슈퍼맨을 비추며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곡은 테디베어스의 'Punkrocker'로, 그 후렴이 이렇다. "그래, 나는 펑크로커야."
영화 바깥 실제 우리의 삶에 분쟁이 속출하고 있다. 나라가 나라를 침략하고, 그에 따라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들은 보수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워 이민자들을 내쫓고, 국경에 높은 벽을 쌓고 있다. 남녀와 세대가 갈라지고 부익부 빈익빈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우리네 삶에는 선과 친절함이 깃들기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없는 것을 추구하고 또 욕망하지 않던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는 보편적 선과 타인에 대한 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이 순간에 이토록 선하고 이처럼 친절한 수퍼히어로가 도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뻔하고 낯간지러워 격하시켜오던 선과 친절함의 가치. 선과 친절함은 이토록 멋지고 쿨한 것이다. 좋은 마음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 그러니까 선과 친절함은 새로운 펑크 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