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트래시의 조건 : 절연 못하기

<이니 미니>

by CINEKOON


그 옛날, 이형기 시인은 읊조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근데 그 수동태에 가까운 표현은 능동태로 바꿔 표현해도 여전히 유효성을 지닌다.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다른 누군가의 뒷모습에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그 가야할 때를 깨닫고 분명히 알고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거지. 원래 넘치기 보다는 모자란 게 차라리 더 낫다고 하지 않은가. 인연도 바로 그렇다. 살다보면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동료든 분명 누군가를 떠나보내야할 때가 온다. 악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은 애저녁에 끊어내는게 맞지. 헌데 이형기 시인의 말과는 반대로 그 끊어내야할 때를 모르고 계속 그 인연을 지고 가다보면... 언젠간 스스로가 그 굴레 안에서 파멸을 맞이할 수도. <이니 미니>는 그걸 딱 잘 보여준다. 전남친을 구해내기 위해 최후의 범죄를 계획하는 주인공 이디. 거기까지만 보면 <베이비 드라이버> 같은 영화인가 싶거든. 결국엔 전남친 구해내고 재결합 하겠거니. 하지만 정작 이디는 베이비완 정반대의 결말에 가닿는다.


설정은 간결하고 확실하다. 겟어웨이 드라이버로서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는 이디. 자동차 핸들을 잡을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앞으로 전력질주하는 그녀이건만, 정작 이디가 꿈꾸는 모든 것들은 다 앞이 아닌 뒤에 있다. 그녀는 과거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꿈꿨고, 그 아버지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길 바랐다. 전남친 존이 현남친이던 시절, 둘이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것도 꿈꿔봤지.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시궁창일 따름이었고. 그렇게 예전의 모든 것들을 포기한채 다시금 지금의 삶에 집중하려는 이디. 그러나 그런 이디를 붙잡는 건 여지없이 또 과거다. 3개월 전쯤, 전남친 존과 홧김에 했던 섹스. 그로인해 이디 뱃속엔 또 하나의 작은 심장이 새로 뛰게 되었으니...


이어지는 전개들도 뻔하다면 뻔하다. 이디는 존과 좌충우돌 해후하고, 이어 그가 벌여놓은 짓거리들을 수습하기 위해 일부러 오래도록 멀리해온 자신의 범죄 경력에 다시금 시동을 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디와 존의 관계 변화가 다소 뭉툭하고, 하이스트 영화로 장르를 표기하기엔 범죄 계획이 별 거 없었던데다 전형적이었다. 뭔가 극 흐름에 예외성을 돋구기 위해 추가한 인물 아니었을까 싶은 양아치 펌 또한 생각보다 빠르게 퇴장해 실망스러웠고 말이지.


하지만 영화가 갑자기 끝자락에 가서 일순간 대담해진다. 웃음과 눈물로 얼기설기 포장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디 입장에서 존은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설령 그의 의도는 선하고 순진했을지언정, 전체 큰 그림을 보지 못한채 계속 작은 부분들에만 집착하는 존은 결국 끝에가서도 또 사고를 친다. 기껏 고생해서 갚을 돈 구해왔는데, 존이 채권자측 인력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것. 그리고 사고치자마자 또 곧바로 후회하며 눈물 흘리는 존. 아-, 불쌍한 이디. 설마 여기서도 존을 받아주진 않겠지- 싶었다. 그런데도 이디는 또 존을 안아주네. 참으로 대단한 커플 나셨어. 헌데 갑자기 울려퍼지는 총소리. 그렇게 이디는 흐느끼며 제품 안에서 존을 죽였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리고 자기 뱃속 아기의 친부가 되는 남자를.


이디와 존의 개인사적 입장에서 보자면 크나큰 비극이지. 그러나 애시당초 이디가 존을 다시 찾아간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뱃속 아기를 무조건 포기하란 건 아니다. 허나 적어도 이디는 존이 어떤 남자인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았는가. 게다가 다시 찾아간 존이 벌써 사고치고 죽기 직전이었던 것 또한 알았잖나. 이걸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냥 두고 가냐 묻는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거기서는 존을 구해줬더라도 최소한 함께 새 범죄에 가담하진 말았어야 했다.


끊어낼 때를 알지 못한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여자는 결국 그렇게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혔다. 그토록 사람 죽이기 싫어하더니,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죽이게 되는 아이러니라니. 인생사는 어쩜 이리도 비극인가. 그래도 꼰대 같지만 한 번 더 말해줘야겠다. 이디,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잖아. 존이 이런 결말을 맞게 될지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럼 이걸 그냥 인생사의 비극으로만 매도할 건 또 아니지 않겠니? 이 비극에 너도 어느정도의 지분은 있는 거 아니겠니?


tempImagegDoWvE.heic <이니 미니> / 숀 시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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