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인간이 되는 방법

<프리키 프라이데이>

by CINEKOON


역지사지보다 더 유명한 사자성어가 또 있을까. 상대의 입장에서 살펴보라는 이 옛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진 않거든, 또. 누구나 자기만의 입장, 자기가 처한 상황 속으로 매몰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였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디 체인지는 오래도록 사랑받아왔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디즈니는 <프리키 프라이데이>를 통해 그 바디 체인지물의 대중화를 이끌어냈지.


매사 깐깐하고 잔소리 하기 바쁜 40대 워킹맘 엄마, 그리고 근신이 일상인 반항적 면모의 10대 딸. 엄마의 재혼을 앞두고 모녀는 썩 오리엔탈리즘스러운 아메리칸 차이나식 저주를 통해 역지사지의 상황에 놓인다. 엄마는 딸이 되고, 딸은 또 엄마가 된 것. 하지만 이 사실을 말하고 다닌다한들 세상의 그 누가 믿어주랴. 그것도 무슨 진시황릉 도굴하다 고대의 저주에 걸렸다는 식으로 거창한 상황도 아니고, 그냥 LA 차이나타운에 있던 중식당의 포춘쿠키 속 헛소리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걸 대체 누가 믿겠냐고. 아마 말하자마자 모녀 둘 다 정신병동 신세를 지지 않았을지.


하지만 이 썩 디즈니 가족 영화스러운 황당한 도입부를 이겨내고 나면, <프리키 프라이데이>는 생각외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건네준다. 딸이 마냥 반항아가 아녔다는 사실, 심지어는 선생이든 동급생이든 학교가 불합리한 이유로 딸을 옭아맸고 있었단 사실은 엄마에게 깨우침을 준다. 세상 누구나 여러가지 탈을 쓰고 살아가지 않느냔 말이다. 하물며 그건 내 배로 낳은 내 자식도 마찬가지다. 집에서는 좀 까칠하고 게으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 딸의 본질은 아니란 말씀. 반대로 딸 또한 엄마의 몸으로 살아가며 그녀가 처해있던 복잡한 현실 상황들을 목도하고 직접 체험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세상에 두 자식을 혼자 키우면서 자기 일까지 잘해내기란 쉽지 않다는 처연한 진실 말이다.


물론 그 깨우침과 깨달음은 즉각적이지 않다. 딸이 된 엄마는 처음엔 당황하지만, 이내 학교 시험쯤이야 껌이겠지 싶어 자신만만해한다. 하지만 십대의 삶이란 그 자신만만함대로 가지 않는 법이니... 반대로 딸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가 된 딸은 갑자기 성인이 되어 신이 난다. 신용카드로 쇼핑도 마음껏 하고, 엄마의 운전면허로 운전도 실컷 해본다. 그러나 딸 또한 법적 성인으로서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잠깐이나마 헤매여보고...


그렇게 딸이 된 엄마와 엄마가 된 딸. 그 두 사람을 깨닫게 만들어주는 이들이 모두 두 모녀의 주변인들이란 사실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딸이 된 엄마는 딸의 친구들을 통해 평소 딸이 꿈꿔온 것들을 알게 된다. 여기에 평소 딸이 엄마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도. 반대편에서 엄마가 된 딸도 곧 엄마와 재혼할 계부를 통해 엄마가 자신을 아껴왔다는 걸 듣는다. 그리고 평소 죽도록 싸우기만 했던 어린 남동생 역시 실은 누나인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단 걸 느끼게 되고.


그러니까 단순히 몸만 바뀐 게 아니다. 엄마와 딸을 감싸 안고 있던 그들 각자의 세계, 그들 각자의 커뮤니티는 그 두 사람을 한 번 더 받아주며 일종의 에어백으로써 가족의 진심을 보호하고 또 이어준다.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역지사지. 유명한 만큼 어찌보면 굉장히 뻔한 사자성어지만, 적어도 <프리키 프라이데이>의 두 주인공인 테스와 애나에게는 그 교훈이 값지고 귀하게 느껴졌을 테다.


공자는 말했다. 타인을 진심으로 아끼는 게 인간다움의 길이고, 또 타인을 진정 이해하려드는 게 슬기라고. 공자 선생님의 오래된 그 옛말을, 나는 역지사지라는 짧은 네 글자로 이해한다. 슬기롭게 인간다워지는 길. 진실된 역지사지라는 게 이토록 아름답다. 


tempImage4UfHLz.heic <프리키 프라이데이> / 마크 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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