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겁을 쓰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얼굴>

by CINEKOON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굴의 노력으로 끝끝내 전각 장인의 자리에까지 오른 영규. 그런 아버지를 보며 동환은 내심 존경심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40년 전 실종되어 동환은 그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백골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다. 하필 방송국에서 전각 장인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던 시점이라, 어머니의 미스테리와 관련된 동환의 수사 아닌 수사는 방송PD 수진과 함께 진행되고...


동환과 수진이 차례로 만나는 과거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꺼내놓지만, 그럼에도 그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는 있었다. 바로 동환의 어머니 영희가 마치 괴물의 생김새마냥 추했었다는 것. 심지어 과거 그녀가 일했던 공장의 사람들이 영희를 부르는 별명도 '똥걸레'였다. <얼굴>은 스스로의 제목과 함께 그러한 묘사들을 맞물려내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써 인식된다. 실제로 영화가 내내 외모 지상주의의 서글프면서도 저질스런 단면을 제대로 묘사해내는 게 사실이다. 허나 영화를 마지막까지 다 보고나면, 이 모든 비극에 있어 외모 지상주의는 그저 방아쇠 정도의 역할만 했을 뿐. 결국 그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은 못생긴 얼굴보다도 더 추잡한 한 인간의 피해의식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태어날 적부터 앞을 보지 못한 영규. 그 때문에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인 그가 미추를 구분해내지 못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에 대해 항변이라도 하듯, 방송국에서 온 다큐멘터리 제작진 앞에서 영규는 스스로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미추에 예민하고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내뱉는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선천적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본 경험이 없기에 이러한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허나 조심스럽게 반문해본다. 객관적으로, 정말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태어나서 다른 이들의 얼굴은커녕 스스로의 얼굴조차 목도해본 적이 없다면, 잘생긴 얼굴과 못생긴 얼굴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립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나?


결국 영규가 토해내는 고백에서 그러한 의심이 선명해진다. 그는 선천적인 장애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갖은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인해 삶을 살아가며 모나지 않게 굴려고, 남들 보기에 평범한 축 안에 들려고 수없이 노력해왔다. 아내 영희를 살해한 영규의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튀어나왔다. 영희가 어떻게 못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남들 보기에 평범치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까딱하다간 그녀가 자신의 혹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영규는 바로 그래서 영희를 죽였다. 그녀가 어떻게, 얼만큼 못생긴지는 모르지만 잘못해선 그녀가 자신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또 그런 괴롭힘과 따돌림을 경험하기 싫으니까. 다름아닌 영규의 그 피해의식이 이 40년의 비극을 묵히게끔 만들었다.


<얼굴>은 피해의식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의 추함도 다룬다. 동환이 어머니와 관련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 무례하다. 못생겼다는 소리를 뒤에서도 아니고 당사자 앞에서 뻔뻔스럽게 자꾸 반복해 발화하고, 이미 죽은 고인의 백골 시체를 두고 냄새가 역해 얼른 나가자며 보챈다. 그런 자기들은 또 얼마나 잘생겼는지 끼리끼리 뭉쳐 시시덕거리고, 속절없는 타인의 비극 앞에서 그저 비웃기에 바쁘다. 진짜 보는내내 복받쳐서 혼났다.


영화에 아쉬운 구석도 있다. 미스테리 장르물로써 생각보다 핵심 미스테리가 빨리 진상을 드러내는 편이고, 더불어 끝까지 잘 숨겨냈어야 했던 사건의 진범은 사실 영화 초반에서부터 그 냄새를 흩뿌린다. 여기에 그 미스테리를 드러내는 방식도 지나치게 설명적이라 두고두고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보며 나는 새삼 '인면수심'이란 말을 다시 곱씹어볼 수밖에 없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간에, 인두겁을 썼다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과 당연히 하지 말아야할 일이 있는 법. 반면 <얼굴>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 당연한 인지상정을 지키고 행하지 못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점에 놓여있던 건 영희의 못생긴 얼굴이 아니라, 바로 그 얼굴 앞에서 인면수심으로 행동했던 자들의 마음이다. 거기서 똬리를 틀고 앉아있던 그 마음들이 이 비극을 만들었다. 참으로 분통터지는 인과율이다. 


tempImagetvvFiF.heic <얼굴> / 연상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제나 타코 한 조각쯤은 남겨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