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타코 한 조각쯤은 남겨두기를

<굿 포츈>

by CINEKOON


철물점 업무에 음식 배달, 심지어는 남들 대신해 맛집 줄 서 있는 아르바이트까지. 아지는 요즘 말로 진정한 N잡러라 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금수저 물고 태어난 이는 탱자탱자 시간을 죽이더라도 자신의 대저택에 누워 빈둥거리고, 은수저는커녕 흙수저조차 물고 태어나지 못한 이는 하루 24시간을 바쁘게 쪼개 살아도 그 몸 제대로 뉘일 곳을 찾지 못한다. 아지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하루종일 일을 하건만, 결국 오늘밤도 자신의 이동수단이자 집이기도 한 작은 자동차 안에서 노숙을 하는 수밖에. 그리고 이런 아지에게, 자신을 천사라 소개하는 웬 작자가 나타나 인생을 바꿔줘보겠다 제안한다. 그 천사란 남자의 얼굴이 왜인지 사람 잘 죽이게 생겼기는 한데, 그래도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렇게 아지는 천사 가브리엘의 권한으로 LA 부촌 라이프를 즐기고 있던 금수저 제프와 인생을 바꾸게 되고.


기본적으로 왕자와 거지 플롯이다. 왕자는 하루동안 거지의 삶을, 또 거지는 하루동안 그 왕자의 삶을 대리체험해본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왕자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가난한 이들의 삶에 연민을 갖게 되고, 반대로 거지 역시 부와 명예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진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토록 왕자와 거지 이야기는 오래되고 뻔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굿 포츈> 역시 짐짓 뻔해보였다. 하지만 <굿 포츈>은 감히 대단한 코미디였다. 사실 그간 영화관에서 코미디 영화들을 보며 실제로 웃음을 터뜨리는 경험이 개인적으론 무척이나 적었는데, 의외로 <굿 포츈>을 보면서는 시종일관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전복의 묘미다. 왕자와 거지 이야기에서 왕자, 그리고 거지는 서로의 삶을 대리체험해보며 인생의 진리에 대해 깨닫게 된다. 어쩌면 원래의 자기 위치가 가장 편할 수도 있다는 것. 헌데 <굿 포츈>은 그걸 꺾었다. 아지가 제프와 삶을 교환해보니, 실제로 인생 대부분의 문제들이 죄다 저절로 해결되어버린 것. 까놓고 말해 차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채광 좋은 대저택에서 잠을 청하는 게 낫지 않나. 또, 연애와 사랑에 있어 당연히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연인에게 비싼 선물과 좋은 음식을 아무 걱정 없이 사줄 수 있는 형편을 마다할 이가 과연 세상에 있을까. <굿 포츈>을 보기 전, 나는 이 영화 역시 교훈적인 메시지를 교조적으로 내뱉을 거라 예상했었다. 물론 어쩔 수 없게도, <굿 포츈>의 결말이 그 방향으로 가닿긴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 있어 <굿 포츈>은 대단히 솔직한 영화였다. 오히려 그렇게 보여주니까 좋은 의미에서 메시지가 더 비릿하게 다가오더라.


코미디 포인트를 진짜 잘 잡았다. 상술한 왕자와 거지 사이 신분 전복 외에도 그렇다. 가브리엘, 그 이름만은 거창하건만 결국 하는 일이라곤 운전 중 문자 메시지 쓰다가 사고날 뻔한 인간들을 살며시 구해주는 것. 물론 그 역시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가브리엘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천사가 할 법한 일로는 좀 소소하잖아. 그 설정 자체가 너무 웃겼다. 심지어 그 가브리엘의 얼굴은 근 10년간 다른 영화 시리즈로 수많은 인간들을 골로 보내온 키아누 리브스. 제작진이 배우개그를 좀 안다.


가브리엘이 아지를 찾아와 앞으로 그가 겪게 될 미래들을 보여주며 희망을 북돋아주려는 장면 역시 코미디로써 제대로 작동한다. 가브리엘 딴에는 미랠 보여주기만 해도 아지가 제풀에 감동해 스스로의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길 줄 알았던 거지. 허나 아지 입장에서 가브리엘이 보여주는 미래는 떠오르는 족족 다 불행하다. 그 장면 전체가 코미디로써 꽤 재미있었고, 덩달아 자본주의가 만연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써도 적합하더라고. 이어 기억을 되찾은 제프와 엮이게 되면서 발생하는 말장난과 상황 코미디들도 거진 다 먹혔고.


주요 인물로 세 캐릭터를 상정해두고, 관객들이 그 모두에게 정들 수 있도록 연출한 점 역시 실로 대단하다. 그저 재수없는 부자처럼 보였던 제프는 상황이 꼬일수록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가 재수없는 부자인 건 사실이나, 그게 그의 잘못은 아니니까. 여기에 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가난한 건 그의 죄가 아니다. 더더군다나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그가 보이는 태도, 이제는 진짜 친구가 된 가브리엘과 시간을 보내며 나누는 대화 등은 그의 진짜 가치를 제대로 조명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브리엘. 키아누 리브스 특유의 뻣뻣한 연기로 조형된 이 천사는 그 뻣뻣하고 우직한 사랑스러움으로 결말을 완벽하게 빚어낸다. 실로 꽤 괜찮은 삼각편대였다고 본다.


어쩌다보니 영화의 코미디적 가치 위주로만 이야기하게 됐는데, 영화를 보면서 씁쓸하기도 했다. 비록 코미디로 부드럽게 포장되어 있긴 하나, 그 한꺼풀 아래 도사리고 있는 사포마냥 거친 우리네 현실이 자꾸만 폐부를 깊숙히 찌르는 느낌이었다. <언브레이커블> 속 미스터 글래스의 논리대로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삶이 존재할 경우 그 반대편엔 제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 역시 존재하게 되는 법. 그리고 그 직접적인 두 부류 사이 비교가, 그 사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가파른 고도 차이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마음만 아파하고 있으면 무얼 하겠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과 그 속 우리네 삶엔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 위정자들은 정책과 법률을 가다듬어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그 시스템 속 개개인인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삶에서 열심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 교과서적으로 당연한 교훈들을 넘어 <굿 포츈>은 그 결말을 통해 삶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따스한 노하우로 이야기를 마무리해낸다. 언제나, 타코 한 조각 정도는 남겨둘 것. 그리고 그 타코 한 조각을 기꺼이 남겨줄 친구를 사귈 것. 마지막 그 타코의 또띠아가 살며시 오므라드는 결말을 보며, 그래도 우리 삶에 일말의 희망 정도는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tempImageVBvpZD.heic <굿 포츈> / 아지즈 안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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