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한극장옆골목 Apr 28. 2021

재택근무에도 출퇴근은 필요해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재택근무도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이 새로운 근무 방식이 마냥 좋아 보였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출근하지 되니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교통비를 아끼는 건 덤. 점심시간이면 침대에 편하게 누워 폰을 보는 달달한 상상도 해본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길 지하철을 타는 대신, 컴퓨터만 끄면 바로 집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뭐든지 실제로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다. 재택근무는 분명 좋았지만, 그만큼 안 좋은 점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정신이 멍해서 업무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면 회사 시스템부터 접속을 했는데, 그 피곤한 상태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능률이 떨어졌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사무실에 출근해 야근을 하기도 했다.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에겐 여러 '페르소나'가 있다. 집에서의 나, 사회의 나, 부모님과의 나, 친구들과의 나. 이는 모두 '나'지만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출퇴근'은 단순히 집과 사무실 사이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페르소나를 오가는 '의식'이다. 아침에 현관문을 나와 회사로 가면서 우리는 점차 '사회의 나'로 변해간다. 오늘 일정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회사에 가면 만날 사람들은 누구인지 떠올리며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회사의 일을 한편에 잘 정리해놓고 집에서의 나로 돌아온다. 하지만 재택근무에는 이런 의식을 치를 겨를이 없다. 그저 클릭 한 번이면 집과 사무실이 바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만의 '출퇴근 의식'을 만들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샤워를 하고 운동복 차림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몸에 상쾌한 기분을 가득 채운 후에, 이제 내 몸에 채울 카페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나서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을 하면, 훨씬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로그아웃 후에 요가 매트에서 명상과 스트레칭을 한다. 그렇게 천천히 집에서의 나로 돌아오는 시간을 갖는다. 멀기만 했던 출퇴근길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도 나름의 역할이 있었던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교할 사람 거수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