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했다. 그리고 난감했다. 요즘 들어 살이 찌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내가 제일 아끼는 옷이 맞질 않는다. 나는 숨을 가슴 쪽으로 한껏 올리고 배를 잔뜩 조인 후에야 가까스로 바지 단추를 잠갔다. 왜 살은 꼭 배부터 찌는 건지. 이제 이 옷을 다시는 못 입는 걸까? 이 상실과 두려움이 미쳐 날뛰던 내 식욕에 제동을 걸었다.
요즘 열심히 필라테스를 하긴 했지만, 역시 먹는 게 문제였다. 사무실에서는 오후 4시만 되면 당이 떨어져서 단 것을 집어먹었고, 야근이 끝나고 밤 9시에 먹는 저녁은 야식이나 다름없었다. 운동을 한답시고 좀 더 먹어도 괜찮겠지 하면서 방심한 탓도 있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누가 그랬나.
내 최애 옷을 다시 입겠다는 일념 하나로,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평소엔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라서 입에 대지 않던 채소들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허기질 땐 과자 대신 두유나 우유를 마셨다. 그 옷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몸무게는 거의 그대로였지만, 분명 변화는 있었다. 속이 편해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으며, 치킨, 떡볶이, 피자, 햄버거 등 자극적인 음식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가벼운 기분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졌다.
한 달 뒤,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서 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긴장한 상태로 옷을 입어보았다. 급격한 변화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훨씬 수월했다. 확실히 살이 빠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 나름 스트레스였던 걸까. 안 그래도 까탈스러운 성격이 한껏 예민해진 것이다. 날카롭게 깎인 연필처럼 글은 잘 써졌지만, 주변 사람들을 찌르고 있었다. 닭 가슴살과 샐러드를 씹으며 생각해 본다. 조금 뭉툭해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연필이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