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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롱 Oct 21. 2020

찰리 카우프만 기묘한 신작, ‘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우선 영화 이야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유머로 시작해볼까 한다. 리뷰를 쓰기 전에 인터넷 반응을 살펴봤는데 영화를 본 지 30분 만에 '이제 이 영화를 그만 끝낼까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해할만하다. 이 영화는 절대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장면의 대부분이 대화로 채워지고 있다. 만화로 비유하자면 말풍선이 꽉 차다 못해 인물을 삼켜버릴 지경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이터널 선샤인>,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연출을 맡았던 '찰리 카우프만'감독의 신작으로, 예고편 공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초반에는 호러 스릴러로 홍보되어서 그의 첫 호러물이라는 것에 아마 더 기대를 모았을 것 같다. 또, 제시 버클리, 제시 플레먼스 그리고 토니 콜렛까지 연기 한가락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더 주목을 끌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 제이크와 함께 눈보라를 헤치며 그의 부모님을 계신 외딴 농장의 집으로 간다는 것이 영화의 주요 사건이다. 내 나름대로 해석해 봤는데 절대 정답은 아니니까 참고용/재미용으로만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해석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길.


주인공과 제이크 그리고 할아버지 3명은 동일 인물이다.

우선 이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야 해석이 쉬워질 것 같다. 집에 도착해 부모님에게 루이사라고 소개되는 여자 주인공은 IMDB를 보면 그냥 ‘Young Woman’으로 적혀있다. 그럼 루이사는 루이사가 아니었던 걸까? 이상한 장면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 번째, 첫 식사 자리에서 그녀는 분명 제이크를 바에서 게임을 하다가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영화가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웨이트리스 일을 하다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했다가 노인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루치아'로 바꿔 부르는데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실제 인물인 걸까?


두 번째, 그녀는 제이크에 집에 걸려있는 그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제이크의 부모님 집에 오면서 읊었던 자신의 시 '본도그'를 제이크의 어릴 적 방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지하실에 있는 그녀의 물건들. 특히 이상한 점은 세탁기 안 유니폼(청소부 할아버지의 것)을 어쩐지 '내 물건이 왜 여기 있지?'라는 식으로 혼란스럽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에 서명이 제이크로 되어있다.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 그녀와 제이크는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세 번째, 그녀는 제이크와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면서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거 있죠. 얼마 전인지 기억도 안 나요"라고 하면서 회상한다. 그 뒤에 혼자 식탁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온다. 마치 노인이 혼자 남은 집에 앉아 먼 과거를 회상하는 것처럼. 그다음 바로 할아버지가 로맨스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그녀=제이크=할아버지가 아닐까?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에 나오는 이들의 관계는 이렇다. 학교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현재의 제이크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집으로 떠나는 제이크는 과거의 그다.


부모님의 집으로 향하는 이 상황과 집은 제이크의 기억과 상상의 세계이다. 부모님은 아마 현재 그의 나이로 보아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은 집에만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젊었다가 늙었다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여자 친구인 그녀는 누구인가?

여자 주인공은 제이크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존재로 그녀는 제이크 자신이자 후회의 결정체다. 내가 과거에 이렇게 했다면... 내가 과거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집을 떠났다면 하는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의 결정체인 것이다. *여자 주인공을 과거의 짝사랑 상대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봐도 재미있다. (둘 다 후회와 관련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정리하자면 영화는 제이크라는 학교 관리인 할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아버지 장면만 묶어서 봤을 때 그는 사는 게 매우 무료하고 외로운 것 같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농장에 있던 죽어있던 양은 사회적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꾸역꾸역 차가운 겨울 같은 현실을 죽지 못해 사는 그의 현재 상태를 상징한다. 구더기가 들끓던 돼지는 그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후회로 점철된 삶이지만 견뎌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인생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것. 그는 이제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이다. 추측하건대 아마 그는 이제 삶에 지쳐 ‘이제 이 삶을 그만 끝낼까 해’라고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자꾸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와 상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이 영화는 호러물이다.

이 영화를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첫 호러 영화로 소개하고 있다. 영화 내에서 토니 콜렛의 공포스러운 연기와 기묘한 상황을 빼면 호러 영화의 요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확실히 호러 영화다. 찰리 카우프만은 죽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생은 누구나 늙어서 혼자가 되어 죽어가는 비극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지나간 과거를 꺼내 후회하고 오지 않을 미래를 찾아내는 시간과 두려움. 사실 삶에 희극이라는 희망은 없다는 것. 이것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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