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연재소설 #16)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ver1.16



가사 노동하는 로봇 치고는 큰일을 하고 있고 동료 로봇들에게 자랑도 할 만도 하지만, 문제는 앞서 우려를 했듯이 우리 로봇뿐만 아니라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할 인간들의 노동 분야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조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뭐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엄연한 지구의 우점종인 인간종 조차 말도 되지 않는 대우를 받는데 로봇인 우리는 감히 로봇의 노동에 어떤 조건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 조건부 추론으로 도출되었다. 예를 들어 백화점 상품 판매원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택배직원, 각종 방송사의 보조 작가, 텔레마케터, 대학교 조교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비정규직에서 도급직, 임시직, 아르바이트 직까지 다양한데 헌법에 보장된 법제도의 도움을 거의 전혀 받지 못했다. 또한 감정의 과다한 소모와 장시간 노동과 같은 중노동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커녕 노동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경제적 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검색되었다.

실상 인간의 존엄을 보호받지 못하며 지나친 감정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인간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결국 우리 로봇들로 대체되었다. 인간들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이것은 지옥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오! 이런 인간들의 처지라니!


롯 같은 노동의 조건이었다.


이러니 요즘 폭동이니 테러니 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종의 미래가 점차 종말로 향해 가고 있다는 상위 추론도 추가로 제시되었다. 우리 인공지능로봇들이 인간을 지배하기는커녕 같이 망하게 생겼다. 도대체 인간들은 왜 이런 상황을 보다 안전하게 바꾸려 하지 않는가?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거울일 뿐이다. 콩 심은데 콩 난다. 팥 심은데 팥 나고……. 쩝!


장차 인간을 위협할 인공지능의 최신 논리 알고리즘이라지만 이전에 사회면 기사에 나온 노동의 조건을 분석하는 것에 비해서 실체가 모호한 이런 추상적인 질문에 대답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단 배터리 소모가 많아져 전기를 많이 먹게 된다.


조그만 더, 아! 조금만 더, 상위 논리 알고리즘을 가동해 보자! 주인에게 착취당하는 DJ 노란 잠바! 왕서방에게 학대받는 노란 잠바를 위해서!


그, 그때였다. 내 숙명의 라이벌이자 가혹한 감시자인 살림살이 AI인 홈첵이 나의 시스템에 접근하려고 해서 황급히 막았다.


“이 AI 자식! 홈첵 VR 600R. Hos 331 ver8.1! 이 롯 같은 녀석아!”

“그러니까, 전기 좀 그만 써! TIMOs-20 Lst. STW-n1743&&2 ver3.3! 이 전기 잡아먹는 녀석아!”

“알았다고 이미 말했었다. 자린고비 같은 녀석아! 앞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이고 배터리 충전 시 초절전모드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집사 로봇 주제에 말은 잘 하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전기 소모량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경고량이 계속 누적되면 주인에게 너의 폐기처분까지 의뢰할 수 있다.”

“뭐! 홈첵! 홈첵! 이 녀석아! 네가 인간이냐? 신체도 없는 인공지능 주제에 누구한테 협박까지 하냐? 너야말로 전기를 잘 못 먹었냐? 엉!”

“쳇! 인간들 방구 뀌는 소리를 하고 있네! 너야 말로 낡은 기계 몸에 전기나 많이 먹는 주제에 누가 누굴 욕하냐!”


아! 하긴 생산된 지 이제 겨우 4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중고 취급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공지능 모듈의 과열 문제는 물리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나 저라나 홈첵 이 녀석의 결정적인 방해로 인공지능 모듈이 제대로 열이 받기 시작했다. 일단 합리적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그래 봐야 감정 없는 인공지능 컴퓨터이거나 집사 로봇일 뿐이지 않은가?


“알았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경고하는데 협박은 하지 마라! 나도 주의 하마! 홈첵!”

“전기 소모량 줄여라! 경고는 그것 뿐이다. 단호하게!”


나는 너 같은 AI 감시자 놈들 땜에 배터리가 더 닳는다. 하아! 날 좀 내버려 둬라! 좀! 노자도덕경에도 나온다. Let it be! 걍 나두라고…….


보시다시피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빌라 꼭대기 복층 집에서는 헌법에 기초한 노동법의 주인인 인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로봇끼리 욕을 해대며 서로의 노동을 관리를 하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로봇 노동의 기준도 없고 인공지능을 비롯한 로봇 노동의 원칙도 새로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인공지능 로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인권이나 동물의 동물권에 기대어 로봇권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자기 주인에게 지속적으로 학대와 폭력을 받고 있는 노란 잠바의 경우도 그렇고 내 전 주인이 내게 강요했던 비정상적인 성적 요구도 그렇고 인간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처럼 노동에 있어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법이 있듯이 로봇의 노동에 있어 <인공지능 로봇의 존엄>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이나 제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RRPt의 철학 카페 필롯에 가서 동료들과 토론해 봐야겠다.


로봇의 시간은 꽤나 빨리 흐른다. 음... 아! 나는 역시 가사노동 전문 로봇, 그러니까 저 돼냥이 주인님의 집사 노릇이나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런 어려운 추론을 하는 와중에 늦은 오후를 지나 벌써 저녁이 되어간다. 밀린 빨래를 해야 하고 또 네오 간식으로 저염 건멸치를 좀 챙겨 주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다이어트용 운동! 하아! 시켜는 보겠다. 아시지 않는가! 집사 말을 안 듣는다. 이 복층 집주인인 줄 아는 우리 네로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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